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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블로그] 최악의 중앙정부 건물, 과천청사

등록 2008-03-03 13:42

정면에서 본 정부과천청사의 본관 모습 ⓒ 한겨레 블로그 도시인
정면에서 본 정부과천청사의 본관 모습 ⓒ 한겨레 블로그 도시인
제가 기자로 일하다보니 정부청사나 국회 등 공공기관들을 다니게 되는데요. 정부청사를 출입하면서 느낀 문제점이 있어서 이번 글에서 한번 다뤄보려고 합니다. 다름 아닌 접근성의 문제입니다.

정부 청사라는 것은 두 가지의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입니다. 첫째로 정부청사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가장 많이,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둘째로는 공무원 외의 관계자를, 이를테면 기자들이나 기업의 임직원들, 또 일반 민원인들일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기자들은 공무원 다음으로 정부청사를 자주,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청사를 다니다 보면 저같은 게으름뱅이는 매우 힘이 듭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볼 때 한국의 중앙정부 청사들은 사람들이 그곳에 오가는 것을 별로 배려하지 않아 매우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다른 공간과 뚝 떨어뜨려서 시민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쉽게 오가면 귀찮을 것 같아서 그런 것인지, 또는 정부 건물은 구중궁궐 같은 입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확실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볼 때 한국의 중앙정부 청사 가운데 최악의 접근성을 가진 곳은 과천의 정부 청사입니다. 과천은 두 가지 면에서 최악입니다. 한 가지는 입법·사법·행정 기능이 집중된 수도 서울에서 애매하게 떨어져 있어서 공공 업무를 보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시간적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도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사는 곳이 서울 용산구 용마루고개 부근 도원동이라는 곳인데요. 이 곳은 서울 전체로 보면 거의 중앙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제 집에서 과천 정부 청사 기자실까지 가는데, 지하철을 갈아타고 평균 5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립니다. 버스로는 1시간 이상 걸립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서울 시민들이 과천을 이용하는 데 이 정도나 이 이상 걸릴 것입니다.

서울 북부 지역이나 일산쪽 주민들은 1시간30분이 족히 걸릴 것이고, 청와대나 광화문의 정부 청사에서도 지하철로 최소 한 시간 정도 걸릴 것입니다. 자동차로는 교통 상황에 따라 들쭉날쭉 하겠지만, 지하철 수준일 것입니다. 물론 서울 남쪽의 지하철 4호선 부근이나 강남쪽에 사는 분들, 또는 아예 과천에 사는 분들은 그보다 적게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서울 시민을 1천만명 가운데 과천 청사 접근이 편리한 사람은 상당히 소수일 것입니다.

이렇게 애매한 곳에 정부 청사의 절반가량을 옮기도록 결정한 것은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었고, 실제 옮긴 것은 1982년 전두환 때였습니다. 과천 청사를 지은 것은 두 가지 이유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는 남북간에 전쟁이 일어나서 북쪽이 장사정포로 공격할 때 이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정부 청사를 짓는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서울의 인구집중을 분산하기 위해 정부 청사 일부를 서울 이외 지역으로 옮긴다는 것입니다.

첫째, 정부청사에 대한 장사정포 공격을 막겠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축소됐습니다. 일단 과천 정부 청사 뒤쪽에는 629m의 관악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북쪽의 장사정포로는 포물선의 각도상 정부 청사를 맞추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요사이 개발된 각종 미사일로는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을 것이고, 폭격기로 공격하는 것 또한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더욱이 남북간의 화해·협력으로 전쟁 가능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로서는 이런 입지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정부 청사의 입지를 산 가까이 해서 전쟁 때 포격의 피해를 줄이겠다는 생각은 19세기에나 통할 일이지 전투기, 폭격기, 미사일이 등장한 20세기 이후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부과천청사를 관악산 남쪽에 지은 이유는 북의 장사정포를 피하기 위해서다 ⓒ 한겨레 블로그 도시인
정부과천청사를 관악산 남쪽에 지은 이유는 북의 장사정포를 피하기 위해서다 ⓒ 한겨레 블로그 도시인

둘째로 과천에 정부청사를 옮긴 둘째 목적이라고 할 지역균형 발전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과천은 물론 좌우의 광명, 성남(분당), 아래쪽인 안양, 군포, 의왕까지 서울 생활권에 포함된 것이 오래 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과천은 서울의 인구를 분산하고 지역균형 발전을 추구했으나, 결과적으로 서울의 광역화를 선도한 결과를 낳았을 뿐입니다. 심지어 현재 과천의 아파트값은 서울의 웬만한 지역의 값을 능가해서 아파트값을 올리는 데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고급 관료와 공무원들이 많이 살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후약방문일 수도 있고,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2008년 살고 있는 제가 보기에 과천청사를 지은 판단은 애초부터 문제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최대 사격거리가 70㎞라는 북쪽의 장사정포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최소한 휴전선으로부터의 거리가 70㎞ 떨어진 수원의 남쪽으로 정부청사를 옮겼어야 했습니다. 또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서라면 최소한 수도권에서는 벗어난 충청 지역으로 옮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정부가 과천 정부청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보통 석유 위기로 인해 백지계획(임시수도 건설계획)이 무산됐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는데요. 저는 그때 정부청사를 현재 제3정부청사가 있는 대전쯤으로 옮겼거나(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은 “6.25사변 때 수도를 대전쯤으로 옮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어려웠다면 서울에 도심에 그냥 뒀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중앙정부 청사는 과천으로 애매하게 옮길 일이 아니라, 서울 세종로와 종로 일대에 집중시키거나 아예 대전쯤으로 옮기는 것이 바람직했다. 세종로의 정부중앙청사 ⓒ 한겨레 블로그 도시인
중앙정부 청사는 과천으로 애매하게 옮길 일이 아니라, 서울 세종로와 종로 일대에 집중시키거나 아예 대전쯤으로 옮기는 것이 바람직했다. 세종로의 정부중앙청사 ⓒ 한겨레 블로그 도시인

왜냐하면 중앙정부의 통합성이나 효율, 상징성을 생각했더라면 중앙정부 청사는 서울 도심의 세종로와 종로 일대에 입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처럼 일부는 세종로, 일부는 과천, 일부는 대전에 입지한 것은 중앙정부의 통합과 효율성, 또는 지역균형발전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으로 중앙정부 청사를 서울이나 행정도시, 대전 가운데 한군데를 정해서 모두 모아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과천 정부 청사의 입지는 과천시 안에서도 애매하기 그지없습니다. 과천 정부청사역에서 과천정부 청사 정문까지 가는 데 길로는 340m, 운동장을 가로지르면 240m가 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역에서 나와서 정문까지 걸어가는 데 5분가량 걸립니다. 이상한 것은 과천 도심의 지하철역에서 내렸는데, 지하철역과 정부청사 사이에는 상당히 넓은 운동장 말고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출퇴근 때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이 넓은 운동장을 돌아서 가지 않고, 가로질러서 가는 모습을 쉽게 봅니다.

정부과천청사는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한참을 걸어가야 닿을 수 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출근하는 공무원들 ⓒ 한겨레 블로그 도시인
정부과천청사는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한참을 걸어가야 닿을 수 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출근하는 공무원들 ⓒ 한겨레 블로그 도시인

애초 과천 정부청사를 지을 때 지하철역이나 과천 도심과의 접근성을 고려했다면 정부청사는 과천 역에 바로 붙어있는 12만㎡(3만6천여평)의 넓은 운동장에 지었어야 할 것입니다. 정부청사가 상당한 보안을 요구하는 국가정보원이나 군사시설이 아니라, 상시로 많은 공무원들과 시민들이 드나들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했다면 말입니다.

또 과천청사의 불편함은 넓이가 33만9천㎡인 과천청사 안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340m를 걸어가서 과천 정부청사의 문으로 들어서면 또 한참을 걸어야 각 부처 건물에 닿게 됩니다. 정문에서 맨 안쪽에 있는 메인 청사까지는 240m 가량을 더 걸어가야 합니다. 부지 안에서도 각 건물이 100~200m씩 떨어져 있고, 한가운데는 이른바 선큰 가든(움푹 꺼진 정원)이 만들어져 있어 이 역시 건물 사이의 거리를 벌려놓고, 보행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정부과천청사 안의 선큰가든(우묵한 공원)은 본관을 더 권위적으로 보이게 만들고, 보행자들에게는 불편을 끼친다 ⓒ 한겨레 블로그 도시인
정부과천청사 안의 선큰가든(우묵한 공원)은 본관을 더 권위적으로 보이게 만들고, 보행자들에게는 불편을 끼친다 ⓒ 한겨레 블로그 도시인

물론 이런 이것은 저처럼 출입증이 있는 사람 기준입니다. 일반 시민들은 역에서 과천청사 문으로 들어가도 안내청사에서 신분증과 방문 목적을 제출하고 출입증 받는 데 5분은 걸릴 테니 적어도 15분 이상 걸릴 것입니다.

공공건물은 되도록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고, 공무원들이 서로 이동하기 편하도록 짓는 것이 상식일 것입니다. 그러나 과천정부청사는 이런 상식과는 정반대로 지어졌습니다. 지하철역 바로 옆에 넓은 빈땅이 있는데도 굳이 멀리 떨어진 산밑에 지었고, 부지 안에서 건물들의 위치도 모두 뚝뚝 떨어뜨려서 정부청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불편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천 공무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정부청사와 지하철역 사이에 운동장이 없고 바로 연결됐더라면 집회군중이나 시위대를 막는 데 어렵지 않았을까?” “운동장이 없었으면 시위대가 쉽게 정부청사로 들이닥치지 않았을까?” “정부청사가 부지의 안쪽이 아니라, 도로쪽에 면했더라면 각종 집회·시위대 때문에 시끄럽지 않았을까?”

12만㎡ 넓이의 이 운동장에 다시 정부청사를 지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 빈 운동장은 공공건물을 지을 때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잘 보여준다. ⓒ 한겨레 블로그 도시인
12만㎡ 넓이의 이 운동장에 다시 정부청사를 지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 빈 운동장은 공공건물을 지을 때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잘 보여준다. ⓒ 한겨레 블로그 도시인

사실 공무원들의 이런 지적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저는 공공이익과 시민들을 위한 사고는 아니라고 봅니다. 더욱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분들 가운데는 대중교통이 아니라,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대중교통 이용해보면 이런 정부청사의 입지나 구조가 일반인들에게 얼마나 불편한지 쉽게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제 와서 정부과천청사를 남동쪽의 12만㎡의 빈땅에 옮겨지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행정도시를 만든다고 하니 그럴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정부청사를 포함해 공공건물을 지을 때는 공무원들이나 시민들이 모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심에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건물도 정문과 가까운 곳에 지어 사람들이 쉽게 걸어갈 수 있게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한번 지으면 수십년 또는 수백년을 가야 하는 건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애초엔 정부과천청사와 정부중앙청사, 정부대전청사의 접근성을 서로 비교해서 쓰려고 했는데, 글이 길어져 이만 마칩니다. 다음에 한번 써보겠습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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