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특검에 출두한 4일 오후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에서 중앙일보 조인스 영상취재팀 이아무개 기자가 삼성에스디아이(SDI) 해고노동자 전순선씨를 건물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중앙일보 기자의 카메라는 홍 회장 대신 전씨를 찍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주 보호’ 논란부른 중앙일보 ‘과잉취재’는 지면에 어떻게 나타났나
‘사회의 목탁’ 또는 ‘권력을 감시하는 파수견(watch dog)’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기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한국사회에서 기자와 언론사의 존재이유와 정체성을 심하게 의심하게 만드는 한 장면이 4일 발생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언론사와 기자에게 위임된 ‘특별한 권리’가 엉뚱한 방향으로 쓰이는 일이 일어났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취재를 빙자한 사주 보호’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중앙일보 소속 기자가 5일 오후 삼성 특검 사무실에 출석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과잉 보호’하며 현장에서 시위를 벌이던 노동자를 가로막고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한 일이 발생했다.
중앙일보 소속 기자, ‘회장님 출두’에 시위노동자 장비로 막아
이날 오후 2시20분. 특검 사무실 건물 1층 로비엔 중앙일보 기자들을 포함한 수십여명의 취재진과 삼성 SDI 하청업체 해고노동자들이 함께 홍석현 회장의 출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취재진은 취재를 위해, 해고노동자들은 피켓 시위를 하기 위해 각자 준비를 하며 대기중이었다. 그런데 막상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도착하자 대기중이던 중앙일보 기자들 일부가 피켓 시위를 시작하려던 노동자들을 촬영장비를 이용해 구석으로 몰며 시위저지에 나선 것이다. 이 바람에 시위를 준비했던 노동자들은 피켓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하고 홍 회장에게 단 한마디의 질문도 하지 못했다. 노동자들이 준비한 피켓에는 ‘시급 3400원, 한달 500시간, 초일류 삼성의 현실’이라는 문구가 씌여 있었다.
몸싸움을 비롯해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자 취재기자들과 해고노동자들은 해당 중앙일보 취재기자의 신분을 밝힐 것을 요구했지만 해당 기자는 중앙일보의 다른 기자들이 만들어준 통로를 이용해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추후 이 기자는 중앙일보 조인스영상취재팀 기자임이 드러났다. 특검 현장에서 시위를 벌이다 중앙일보 기자들에게 제지당했던 전아무개(28)씨는 “문 구석 쪽에 있었는데 홍 회장이 왔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 카메라 기자가 홍 회장을 찍는 게 아니고 카메라를 내 쪽으로 돌려 나를 막았다. ‘왜 갑자기 나를 찍나’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데 이내 내 몸을 구석으로 밀었다"고 말했다. 전씨는 또 “포토라인 바깥에서 피켓만 들고 평화적으로 시위하려 했는데 억울하다” 고 말했다. 한편 전씨는 “노동자들의 시위 전에 중앙일보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시위저지 계획을 지시하는 것도 보았다”고 말했다. 같이 시위에 참여했던 박재석(39·울산 삼산동)씨는 “기자가 기자정신을 버리고 사주를 위해서 카메라를 무기 삼아 연약한 여성 해고노동자의 의사표현을 막은 것은 심각한 문제다” 고 말했다. 사진기자·동영상취재 동원됐지만 정작 결과물인 ‘사진’과 ‘동영상’은 찾아볼 수 없어 비슷한 장면은 홍 회장이 저녁 9시50분께 조사를 마치고 귀가할 때 다시한번 벌어졌다. 이들은 다른 취재진의 취재를 물리적으로 가로 막고 현장 기자들이 동의하지 않은 포토라인을 설치하며 취재를 저지하고 한 방송사의 카메라를 파손시켰다. 또 < MBC >와 < OBS > 의 두 기자가 홍 회장이 탄 차량에 다가서 질문을 하려 하자 홍 회장쪽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기자들을 끌어내며 기자들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박아무개(27) 기자는 “무슨 연락을 받은 건지 홍 회장이 나오기 10분 전부터 중앙일보 사진기자들이 상주해 있던 다른 기자들 의견도 묻지 않고 포토라인을 설치해 취재를 제한했다. 현장에는 중앙일보의 사진기자들이 있었다. 황당했다”고 말했다. 삼성특검 영상취재기자단은 이날 밤 즉각 성명을 내어, 중앙일보 기자들의 취재 방해행위를 비난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기자단은 성명에서 “기자의 본업을 망각한 중앙일보 기자들의 현장 취재 질서 문란 행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사주를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고, 해당 기자들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또 기자단은 “이번 행위를 자본과 언론의 자유가 분리되지 못한 데서 비롯한 매우 침통한 사건” 이라고 규정하며 씁쓸한 입장을 표했다. 그러면 노동자 1인시위와 다른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하면서까지 홍 회장의 특검 출석 현장을 열심히 취재한 중앙일보 기자의 결과물은 어디에 있을까. 사진기자들을 복수로 투입했지만, 정작 <중앙일보> 5일자 지면은 이날 소동을 벌인 홍 회장의 사진을 한장도 싣지 않았다. 중앙일보 사진기자들의 현장 배치의 목적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중앙일보 지면’인 것이다. 문제의 동영상도 마찬가지다. ‘취재방해’와 ‘시위방해’ 논란을 벌일 만큼 ‘과격한 취재방법’을 동원했지만, 정작 중앙일보의 홈페이지에 관련 동영상은 찾아볼 수 없다.
조인스 담당팀장 “영상 어설프게 공개할 생각 없다…몸싸움에서 밀렸을 뿐”
이에 대해 조인스닷컴 담당팀장은 5일 오후 “지금 영상을 보고 있다. 공개를 어설프게 할 생각 없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생각이 각자 다 다른데 너무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것 아니냐”며 “당시 카메라 기자가 현장을 찍으려 했는데 몸싸움에서 밀리며 카메라가 돌아가 그렇게 된 것이지 시위대를 막으려 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검찰·특검 출두가 처음이 아닌 것처럼, 중앙일보 기자들의 ‘취재 방식’ 논란도 처음이 아니다. 중앙일보는 사주인 홍 회장의 검찰 출두 때마다 소속 기자들의 ‘회장님 보호 행위’로 물의를 빚어 왔다. 1999년 보광그룹 탈세 사건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두하는 홍 회장 앞에 소속 기자 40여명이 도열해 “사장, 힘내세요!”라고 외쳐 비난을 받은 바 있다. 2005년 엑스파일 사건과 관련해 또다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한 홍 회장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다가서던 민주노동당 당원을 당시 중앙일보 사진부 차장이 낚아채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비판적이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중앙일보 쪽에 “주요 일간지로 분류되는 신문인데 최소한의 사회적 사명이 있다면 언론인으로서 본분을 지키는 기자 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해주길 바란다” 고 주문했다. 신태섭 동의대 교수(언론학)는 “중앙일보 기자들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행위를 막기 위해선 독자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잘못된 점을 고치도록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 해당 기자들도 자율적으로 모여서 이런 관행을 고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몸싸움을 비롯해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자 취재기자들과 해고노동자들은 해당 중앙일보 취재기자의 신분을 밝힐 것을 요구했지만 해당 기자는 중앙일보의 다른 기자들이 만들어준 통로를 이용해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추후 이 기자는 중앙일보 조인스영상취재팀 기자임이 드러났다. 특검 현장에서 시위를 벌이다 중앙일보 기자들에게 제지당했던 전아무개(28)씨는 “문 구석 쪽에 있었는데 홍 회장이 왔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 카메라 기자가 홍 회장을 찍는 게 아니고 카메라를 내 쪽으로 돌려 나를 막았다. ‘왜 갑자기 나를 찍나’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데 이내 내 몸을 구석으로 밀었다"고 말했다. 전씨는 또 “포토라인 바깥에서 피켓만 들고 평화적으로 시위하려 했는데 억울하다” 고 말했다. 한편 전씨는 “노동자들의 시위 전에 중앙일보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시위저지 계획을 지시하는 것도 보았다”고 말했다. 같이 시위에 참여했던 박재석(39·울산 삼산동)씨는 “기자가 기자정신을 버리고 사주를 위해서 카메라를 무기 삼아 연약한 여성 해고노동자의 의사표현을 막은 것은 심각한 문제다” 고 말했다. 사진기자·동영상취재 동원됐지만 정작 결과물인 ‘사진’과 ‘동영상’은 찾아볼 수 없어 비슷한 장면은 홍 회장이 저녁 9시50분께 조사를 마치고 귀가할 때 다시한번 벌어졌다. 이들은 다른 취재진의 취재를 물리적으로 가로 막고 현장 기자들이 동의하지 않은 포토라인을 설치하며 취재를 저지하고 한 방송사의 카메라를 파손시켰다. 또 < MBC >와 < OBS > 의 두 기자가 홍 회장이 탄 차량에 다가서 질문을 하려 하자 홍 회장쪽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기자들을 끌어내며 기자들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박아무개(27) 기자는 “무슨 연락을 받은 건지 홍 회장이 나오기 10분 전부터 중앙일보 사진기자들이 상주해 있던 다른 기자들 의견도 묻지 않고 포토라인을 설치해 취재를 제한했다. 현장에는 중앙일보의 사진기자들이 있었다. 황당했다”고 말했다. 삼성특검 영상취재기자단은 이날 밤 즉각 성명을 내어, 중앙일보 기자들의 취재 방해행위를 비난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기자단은 성명에서 “기자의 본업을 망각한 중앙일보 기자들의 현장 취재 질서 문란 행위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사주를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고, 해당 기자들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또 기자단은 “이번 행위를 자본과 언론의 자유가 분리되지 못한 데서 비롯한 매우 침통한 사건” 이라고 규정하며 씁쓸한 입장을 표했다. 그러면 노동자 1인시위와 다른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하면서까지 홍 회장의 특검 출석 현장을 열심히 취재한 중앙일보 기자의 결과물은 어디에 있을까. 사진기자들을 복수로 투입했지만, 정작 <중앙일보> 5일자 지면은 이날 소동을 벌인 홍 회장의 사진을 한장도 싣지 않았다. 중앙일보 사진기자들의 현장 배치의 목적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중앙일보 지면’인 것이다. 문제의 동영상도 마찬가지다. ‘취재방해’와 ‘시위방해’ 논란을 벌일 만큼 ‘과격한 취재방법’을 동원했지만, 정작 중앙일보의 홈페이지에 관련 동영상은 찾아볼 수 없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인 조인스닷컴의 3월 5일 동영상뉴스 페이지. 홍석현 회장을 취재하러 갔던 카메라 기자들의 영상물은 전혀 올라와 있지 않고 선정적인 내용의 영상물 위주로 채워져 있다.
3월 5일자 10면. 중앙일보 사진기자들은 홍 회장 출두 현장에 출동했지만 이 기사는 사진 한장 실리지 않은 채 하단에 짤막하게 배치되었다. 다른 신문들과는 대비되는 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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