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 직원들이 18일 오전 철도공사 러시아유전 의혹 사건과 관련해 서울 용산구 봉래동 철도교통진흥재단에서 압수한 서류를 차로 옮기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서울지검 박상조 사업본부장 소환 철도재단 이사회가 지난해 9월 러시아 유전 인수를 위해 설립한 코리아크루드오일(KCO)에 3억5천만원을 출자하기로 의결했으나, 이 돈은 실제로 주식대금으로 납입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조사한 감사원은 물론 당시 철도재단 관계자들도 이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가 17일 입수한 철도재단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이사회는 지난해 9월9일 경기도 의왕시 철도대학에서 회의를 열고 코리아크루드오일의 지분 35%에 해당하는 3억5천만원을 출자하기로 의결했다. 철도재단은 이보다 20여일 앞선 8월17일 전대월(43), 권광진(52)씨와 코리아크루드오일을 설립하기로 합의하면서 35%의 지분을 확보했다. 하지만 감사원 조사 결과, 코리아크루드오일에는 단 한푼도 출자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대월 하이앤드 사장이 회사 설립 당일에 10억원을 주식대금으로 냈다가 다음날 모두 빼낸 사실만 확인됐을 뿐이다. 당시 회의록에는 신광순(54) 철도공사 사장과 왕영용(49) 사업개발본부장 등 4명의 이사가 모두 참석해 출자에 찬성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신씨는 17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사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보고받았지만 다른 일로 바빠서 참석하지 못했다. 재단 일은 왕 본부장이 다 알아서 했다”며 “나중에 감사원 조사에서 3억5천만원이 출자되지 않은 사실을 알았다”고 해명했다. 이는 유전개발 사업을 주도한 왕 본부장이 3억5천만원의 ‘증발’에도 깊숙이 관련돼 있음을 내비치는 대목이다. 당시 이사회에 참석한 한 이사도 “왕 본부장이 ‘출자를 승인해주지 않으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게 돼 (유전개발) 사업을 망친다’고 압박했다”며 “그날 회의 이후로는 유전사업에 대한 보고가 단 한차례도 없었다”고 밝혔다. 철도재단 이사회가 출자를 의결한 이 돈이 실제로 집행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신씨는 “이사회가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형식적으로 출자를 의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공기업이 단순히 은행 대출을 위해 공문서를 위조했다는 설명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공기업의 경우 이사회 결의 사항은 거의 예외 없이 집행된다”며 “철도재단이 출자를 결의했다면 그 즉시 집행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재단은 또 지난해 9월17일 전씨와 권씨의 지분을 인수하는 주식 양도·양수 계약을 체결하면서 비밀 유지 조건을 포함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박상조 당시 철도재단 본부장이 서명한 이 계약서에는 전씨 등이 이 계약의 내용과 계약 체결 과정에서 알게 된 재단에 관한 모든 정보를 비밀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이를 두고 철도재단이 전씨와 권씨에게 120억원의 사례금을 지급하기로 한 사실을 철도공사에 숨기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춘재 김태규, 대전/송인걸 기자 cjlee@hani.co.kr
러 유전사업 책임자 왕영용씨
계약파기뒤 되레 이상장 승진
“철도공사, 사업내용 외부공개 막으려 조처” 분석 철도재단이 지난해 러시아 회사와 유전사업 계약을 파기한 뒤 재단 이사이자 사업 책임자인 왕영용 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을 오히려 이사장으로 ‘승진’시킨 사실이 드러나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철도재단 이사회는 지난해 12월10일 철도청 본부에서 회의를 열어 철도재단 당연직 이사장을 철도청 차장에서 사업개발본부장으로 바꾸는 내용의 정관 변경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철도재단은 이보다 20여일 앞선 11월15일 유전사업 계약 당사자인 알파에코사가 러시아 정부의 사업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계약을 파기했다. 철도재단 이사장은 이사회에서 찬반 의견이 똑같이 나왔을 때 직권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리다. 유전사업 계약 파기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할 왕 본부장을 더욱 권한이 커진 이사장으로 승진시킨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당시 철도재단은 유전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을 모두 철도공사에 넘긴 상태였기 때문에 유전사업이 철도재단의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당시 회의는 신광순 철도청장이 이사장 자격으로 소집했고, 왕 본부장은 조아무개 재단 부이사장과 함께 이사로 참석했다. 나머지 2명의 이사는 철도청 외부 인사였다. 회의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1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철도공사 쪽에서 당연직 이사장 조항의 변경을 제안해 논쟁을 벌인 끝에 승인해줬다”며 “계약금 반환 협상을 위해 왕 본부장이 맡아야 한다는 게 철도공사 쪽의 설명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관 변경은 왕 본부장 등이 유전사업의 상세한 내용이 이사회를 통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라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이사는 “유전사업이 이사회에 보고된 것은 단 한차례뿐”이라며 “모든 것을 왕 본부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철도재단이 전대월·권광진씨와 지분 인수 계약을 맺을 때 재단 이사장의 위임장을 위조한 박상조 인터내셔널패스앤드커머스 대표(당시 철도재단 본부장)의 구실도 관심을 끈다. 박씨는 왕 본부장에 의해 철도재단 본부장으로 발탁된, 왕 본부장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유전사업 계약 파기 직전 은행을 상대로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