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대통령 겨눈 저격수’ 이미지를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
지난 16일 인터넷 매체인 <독립신문>이 한 독자의 만평이라며 실은 ‘스나이퍼’(저격수)라는 이름의 이미지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에 이어 18일엔 국무총리까지 나섰다. 이들은 이 이미지를 패러디의 영역을 벗어난 ‘사이버 저격’으로 규정하고, 법적인 처벌까지 주문했다.
독립신문은 “문제없다”는 애초의 입장을 번복하고 꼬리를 내렸다. 이 사이트는 18일 이 ‘패러디’를 삭제했다. 독립신문쪽은 여전히 과격한 표현 이외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표현의 자유는 폭 넓게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된 스나이퍼 패러디는 표현의 자유를 이해하지 못한 열린우리당과 국무총리의 과잉반응인가? 아니면 패러디 형식을 빌린 독립신문의 명예훼손인가?
전문가들 “패러디라기보다 질 나쁜 협박물” “욕을 그림을 표현한 것일뿐”
전문가들은 이 이미지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했다. 일부는 이 이미지를 패러디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고경일 상명대 만화학과 교수는 “이것은 작품으로 보기에는 조형미가 떨어지고 만화적 구성으로 봤을 때 만화적인 유머나 풍자가 아니라 일방적인 협박이다”며 “그것도 (노 대통령)사진에 총알을 박아버리겠다는 것은 질이 나쁜 협박성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내현 <미디어몹> 편집장은 “이것은 패러디가 아니라 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꼬집었고,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패러디나 만평을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를 통해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인데, 이 패러디의 표현이나 사진이나 이미지를 보면 ‘공개적으로 죽여버리겠다’는 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는 “표현수위가 과격하다는 지적은 받아들인다”면서도 “내용상의 문제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반론을 폈다. 김도균 전 <딴지일보> 편집장은 “일반적으로 찍은 사진이 아닐 뿐이지 어떤 합성을 하거나 기술적인 메시지를 넣은 것이니까 패러디로 볼 수 있다”며 패러디로 인정해준 반면 “표현의 수위에는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한 목소리 “표현의 수위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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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독립신문'이 초기화면에 건 문제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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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 이미지의 표현 수위에 문제가 있다는 데는 의견일치였다. 특히 “니 머리에 총알을 박아버리겠다”는 문구는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유식 디시인사이드 대표는 “표현의 자유와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가 상충한다”며 “노 대통령에 대해 ‘니 머리’라든지 표현의 과격성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용석 건국대 교수는 “독립신문은 스스로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곳이기 때문에 개정된 신문법에도 언론중재위 대상으로 포함돼 있고, 표현의 자유는 맘대로 얘기하라는 자유가 아니다”며 “살인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는 있지만, 표현의 자유는 법적인 개념을 넘어서까지 독립신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독립신문의 패러디는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이재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극단적 표현도 인정돼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적당히 표현의 수위 조절을 해야 한다”며 “(스나이퍼 패러디는) 명예훼손에 적용은 되지만, 적용되는 법리 부분은 명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패러디에 대한 법적인 처벌은?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표현의 자유 보호에는 일치된 의견이었지만, 처벌과 책임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견해를 보였다. 일부는 법적인 규제보다는 인터넷 자체의 정화작용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패러디에 대한 판단의 잣대는 사법적 판단에 의존하기보다 네티즌들의 독자적인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 뒤, “패러디로 인해 명예훼손을 입은 사람이 고발하면 사법적인 처벌을 할 수 있지만, 패러디를 정치적인 쟁점으로 가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재진 한양대 교수도 “지금 우리 사회는 허위사실이나 과격한 표현은 법으로 처벌하지 않더라도 논리적으로 잘못된 것은 인터넷 속에서 자체적인 자정작용을 거쳐 걸러지는 단계로 진입했다고 생각한다”며 “잘못된 부분이 많은 패러디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호응하지 않게 되고 있기 때문에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도균 전 <딴지일보> 편집장은 “어디까지나 법적으로 허용된 패러디, 허용되지 않은 패러디로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패러디의 표현에 따른 책임은 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전 편집장은 “표현의 방식이 과격하거나 표현방식이 옳지 않았을 때, 법적인 잣대보다는 우리가 스스로 정화하고 거를 수 있는 문화적인 기반들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도 “인터넷매체나 패러디는 자율정화야 맡겨야 한다”며 “하지만 패러디 논란이 계속 제기되는 만큼 인터넷매체나 포털사이트, 시민단체가 정치적인 당파성을 떠나 자율정화를 할 수 있는 기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을 넘어선 주장에 대해서는 법적인 책임 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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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나이퍼' 패러디가 문제되자, 독립신문은 18일 해당 이미지를 삭제하고 '총대신 낫으로'라는 패러디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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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충분히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황 교수는 표현의 자유라는 것도 “사실을 넘어선 주장”까지도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패러디가 풍자로서 인정받으려면 사실을 지적해야 하는데, 이것은 김정일을 동맹자처럼 만들어버렸다. 이처럼 부정적인 것까지 표현의 자유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언론으로서 기본적인 자질이 의심스럽다. 독자만평이라도 독립신문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을 저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패러디 논란은 표현의 자유와 책임감이라는 두 가지 큰 주제를 어떻게 조율할 것이냐의 문제를 낳았다. 논란만큼이나 패러디의 책임 문제는 아직까지 정해진 기준은 없다. 단지 지난 총선 과정에서 라이브이즈닷컴 및 ‘하얀쪽배’ 등 네티즌들의 정치 패러디에 대해 법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한 사례는 있다.
패러디 논란과 관련해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얘기하는 것은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해주는 대신 그에 따른 ‘책임’에서는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이승경 기자 yam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