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을 수사하는 조준웅 특별검사가 13일 오전 서울 한남동 특검사무실로 출근하려고 승강기를 탄 채 문이 닫히길 기다리고 있다.(왼쪽 사진) 이날 오후 특검사무실에 나온 이학수 삼성 부회장이 승강기 안에서 보도진이 묻는데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김명진 신소영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구조본 개입 했으나 계열사들 정상적 의사결정”
이건희 삼성 회장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을 수사하는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13일 이(e)삼성 관련 주식매입 사건의 피고발인 이재용(40) 삼성전자 전무 등 28명 모두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경제개혁연대와 참여연대는 “면죄부 수사”라고 강력히 비난하면서 항고하겠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이날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삼성 쪽 주장과 달리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가 이삼성 등 4개 회사의 설립·운영 및 이재용 전무의 지분 처분에 관여하거나 계열사에 지분 인수를 지시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검팀은 “구조본의 지시에 따라 계열사 9곳이 이 전무의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고 하더라도, 계열사들이 적정한 주식가치 평가와 투자 필요성 검토 등 정상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거쳐 인수했기 때문에 특정인의 지분을 인수한 것만으로 배임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배임혐의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특검팀은 이 전무가 대주주로,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함께 주주로 참가했고, 이 전무가 최대주주로 있는 에버랜드와 삼성에스디에스가 주주로 참여한 점, 이삼성 관련 네 회사 대표·이사·감사 대부분이 모두 삼성 임직원들인 점 등을 근거로 들며 “삼성 쪽의 조직적인 계획에 따라 지분 매입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검팀은 “고발인의 주장처럼 계열사들의 이삼성 지분 매입이 ‘오로지 이재용씨가 부담해야 할 경제적 손실을 대신 부담하고 사업 실패로 이씨의 사회적 명성이 훼손될 것을 막기 위해 매입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특검팀은 이 전무 등의 혐의가 형법상 배임죄에 해당해 공소시효(7년)가 오는 26일 끝나므로 참여연대 등 고발인에게 항고 등 불복 기회를 주고자 이 사건을 우선 처리했다고 덧붙였다.
특검팀은 삼성에버랜드 사건 등 삼성의 경영권 불법 승계와 관련한 나머지 세 가지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서도 곧 결론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와 참여연대는 이날 오후 서울 한남동 삼성 특검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구조본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각 계열사의 자발적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 주장”이라며 “이 발표가 향후 삼성 특검 수사대상 전체에 관한 수사결과를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삼성 사건은 이재용 전무가 2000년 인터넷 벤처기업 바람을 타고 이삼성을 설립했으나 200억원 이상의 적자가 나자, 2001년 3월 제일기획 등 계열사 9곳에서 이 전무의 이삼성 지분을 전부 매입해 손실을 보전해줘 주요 임원들이 고발당한 사건이다.
한편, 특검팀은 이날 이학수 부회장을 세번째로 불러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와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정기적으로 ‘떡값’을 건넸다는 의혹 등을 조사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