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음악을 좋아하고 편식위주의 음악감상은 안하지만 그래도 흑인음악을 주로 듣는편인데 또 거기서 더 들어가면 힙합을 가장 깊게 듣는 편이다. 일반인들에게 비춰지는 힙합이 조금 왜곡되어진 면이 있고 지금도 그런것 같아서 아쉬운 측면이 있지만 힙합만큼 진솔하고 다양한 음악을 선보일수 있는 장르는 없다. 무엇보다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MC들의 울림은 주목할만 하다. 서두에 힙합에 대해 이토록 거창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지금 내가 말하려는 주인공이 힙합음악을 깊게 듣는 분들이라면 알만한 이름 "Deegie(김원종)이고 그가 국회의원 출마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예전에 J N P (좆선 뉴스 페이퍼)라는 "안티조선"을 주제로 곡을 만들었고 조선일보 당사 앞에서 시위성 공연을 한 것은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일이다. 그래서 인지, 그가 국회의원 출마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의외라는 반응의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정치를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의 출마관련 글을 보게 되면 그는 자신의 행보를 "블랙 코미디"로 진단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출마하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자신과 같은 돌아이가 없길 바란다."며 "20대들이 자신의 행동을 보고 정치, 역사에 관해서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런 부분에서 조금은 그의 진심이 보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정책에 대해서도 "조력자들과 같이 대표적인 공약과 실천 가능한 공약 생활 공약을 검토와 토의를 거쳐서 만들어 선거운동 기간에 배포할 예정이다."라며 말했고 "자신만의 생각보다는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공약이 될 것이며 당선 후에도 실효성이 있는 공약이라며" 자신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정치를 잘할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20대로써 그가 이와 같은 출발점에 서게 된 문제의식이나, 철학은 지금 현실 정치의 구태의연한 모습의 그것은 아닐 것 같다. 무엇보다 정치인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는 차원에서도 "골프 치는 정치인" 혹은 "성추행 하는 정치인" 보다는 "노래하는 정치인"이 훨씬 아름답지 않은가. 국민들이 왜 정치를 불신하게 되었는가. 혹은 왜 정치를 멀리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후진정치를 선보이는 악행과 친근하지 못한 정치인의 이미지가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당선이 되든 안 되든 그는 노래를 할 것이며 책임감 있는 예술가의 삶을 살 것이다. 애초에 "노래하는 정치인"이 탄생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한 일 일수 있다. 그만큼 정치세계가 온전치 못하다는 것의 반증한다. 그의 소망 중 이런 내용이 있다. "내 노래를 듣고 복잡한 정치색 보다는 즐거움, 슬픔 등의 예술적 다양성을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이말 인즉, 좀 더 희망찬 세상이 펼쳐진다면 자신이 예술을 빌려 정치색깔을 내지 않아도 되고 좀 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색깔을 다양하게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일 것이다. 나 또한 힙합 팬으로써, 또 이 사회를 살아가는 20대로써, 그의 소망이 이루어 질수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당선이 되든 안 되든 그는 노래를 할 것이며 책임감 있는 예술가의 삶을 살 것이다. 애초에 "노래하는 정치인"이 탄생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한 일 일수 있다. 그만큼 정치세계가 온전치 못하다는 것의 반증한다. 그의 소망 중 이런 내용이 있다. "내 노래를 듣고 복잡한 정치색 보다는 즐거움, 슬픔 등의 예술적 다양성을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이말 인즉, 좀 더 희망찬 세상이 펼쳐진다면 자신이 예술을 빌려 정치색깔을 내지 않아도 되고 좀 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색깔을 다양하게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일 것이다. 나 또한 힙합 팬으로써, 또 이 사회를 살아가는 20대로써, 그의 소망이 이루어 질수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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