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가족관계등록제의 허점 사례
재혼여성, 새남편 아이는 ‘등록불가’
고아출신 버젓이 ‘버려진 아이’ 표시
고아출신 버젓이 ‘버려진 아이’ 표시
#1. 아들 하나를 둔 이혼남과 재혼한 박아무개씨는 지난 13일 자신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떼 보고 깜짝 놀랐다. 가족으로 남편만 기재돼 있을 뿐 함께 살고 있는 아들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궁금한 마음에 아들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떼 본 박씨는 다시 한번 놀랐다. 아들의 가족관계증명서의 ‘모’ 항목에 자기가 아니라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생모의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나와 아들의 가족관계증명서만 보면 우리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이인 셈”이라며 “이 서류를 학교에 제출했는데 내가 새엄마인 사실이 알려져 아이가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2. 서아무개씨는 최근 자신의 가족관계증명서에 딸 둘과 함께 전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까지 자녀로 등록돼 있어 가슴이 철렁했다. 동사무소 직원한테 “지금은 가족이 아니니 아이 이름은 빼줄 수 없냐”고 말했지만 “안된다”는 대답을 들어야했다. 서씨는 “재혼 사실을 아는 남편이야 상관없지만, 시댁 식구들과 남편 직장 동료들, 두 딸에게까지 이런 사실이 알려질까 밤잠도 안온다. 가족은 지금 함께 살고있는 사람들이 아니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호적제도를 페지하고 올해 초 도입된 가족관계등록제가 또다른 피해를 낳고 있다. 호적등·초본을 대신하는 가족관계증명서와 개인증명서가 ‘친부모의 혈통’ 위주로 작성되는 바람에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들’은 배제되기 때문이다.
‘재혼 가정’ 뿐 아니라 고아·입양아들도 고통을 겪고 있다. 고아 출신의 경우, 개인증명서에 ‘기아 발견일’(버려진 채로 발견된 날짜)이 기재된다. 입양아의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친부모와 양부모가 나란히 기록돼 있다. 김홍미리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는 “입양 기록은 따로 입양관계증명서를 떼 확인할 수 있는데 가족관계증명서에 ‘기아발견’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기록할 이유가 없다”며 “호주제 폐지로 다양한 가족의 존중과 포용이라는 기대가 높지만 실제는 또다른 혈통주의의 강화가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배현태 대법원 홍보심의관은 “가족관계등록제에서는 개인별로 가족증명서를 발급하다보니 문제가 부각됐을 뿐, 원래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새엄마와 전처가 낳은 아이 사이를 모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새엄마가 법적인 엄마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재판을 거쳐 친양자 입양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입양 내역과 기아발견일 표시 문제는 법률 제정 때는 미처 논의되지 않았던 문제 같다”면서 “여론이 형성된다면 요청이 있을 때만 공개하는 쪽으로 개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의전화 김홍미리씨는 “생일과 출생지 등 간단한 개인정보를 담은 숏폼(단순 양식)과 당사자가 별도 신청한 정보들이 추가로 기재되는 롱폼(서술 양식)으로 나눠 증명서를 발급하는 미국의 출생증명서 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순혁 대구/박주희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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