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양 초등생 이혜진, 우예슬양을 유괴·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정아무개씨가 19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수원지법에 들어서고 있다.수원/연합뉴스
정씨, 말 바꿔 ‘우발적 상황’ 핑계
경기 안양시 초등생 유괴·살해 사건 피의자 정아무개(39)씨와 2000년대 초·중반 서울지역 연쇄 살해 사건의 범인들 사이에 닮은 점과 다른 점이 비교되고 있다.
2003년 9월부터 10개월 동안 서울 지역에서 부유층 노인과 출장 마사지 여성 등 21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유아무개(당시 34살)씨는 경찰에 붙잡히자마자 ‘사람을 많이 죽였다’고 진술했다. 당시 유씨는 범행 횟수는 물론 방법, 범행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자백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어린이 두 명을 숨지게 하고 주검을 참혹하게 훼손한 혐의로 80여일 만에 붙잡힌 안양 초등생 살해사건의 용의자인 정씨는 틈만 나면 말바꾸기를 반복하며 수사를 혼선에 빠뜨렸다. 처음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고, 몇 시간 뒤엔 “두 아이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교통사고를 내 두 어린이를 죽였다”고 번복했다. 구속영장 실질심사 직전인 19일 오전에는 ‘술을 마시고 운전해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또다시 말을 바꾸었다.
2004년 2월부터 2년 동안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부녀자와 어린이 등 13명을 살해한 범인 정아무개(당시 37살)씨는 자신의 범행을 공격적으로 인정하면서 법정에서조차 반성을 못하겠다고 밝혀 온 국민을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안양 초등생 살해 용의자인 정씨는 살해 혐의를 부인하면서도 연신 “죽을죄를 지었다. 그저 (주검을) 안 보이게 하려고 (훼손)했다. 후회한다”며 ‘용서와 동정’을 구하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연쇄 살인범 유씨 등은 자신들의 범행을 거침없이 털어놓으며 심증만 있던 수사에 ‘활기’까지 불어넣는 모습을 보였지만, 정씨는 진술을 번복해 가며 두 어린이 살해·주검 훼손·암매장 등 거의 모든 혐의를 ‘과실’ 또는 ‘우발적 상황’으로 돌려, 다른 엽기 살해범들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씨는 앞서 두 연쇄 살인범들과 ‘닮은꼴’도 보였다. 모두 가난하고 어두운 배경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유씨와 피의자 정씨는 각각 아버지와의 사별과 부모의 이혼으로 결손 가정에서 자라났다.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범 정씨의 경우엔 부모가 모두 있었지만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고 변태적인 남성한테서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안양/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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