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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거 혈흔인지 아닌지…좀 이상해”

등록 2008-03-20 15:35수정 2008-03-20 15:57

지난 18일 오후 어린이의 토막 난 오른팔이 발견된 경기 시흥시 군자천 군자8교 상류 200m 지점에서 경찰이 주변 조사를 하고 있다. 시흥/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8일 오후 어린이의 토막 난 오른팔이 발견된 경기 시흥시 군자천 군자8교 상류 200m 지점에서 경찰이 주변 조사를 하고 있다. 시흥/사진공동취재단
정씨 범인입증 일등공신 과학수사계 형사들 ‘한국판 CSI’
화장실 ‘루미놀 검사’ 실패하자 ‘맨 눈’으로 2-3㎜ 마른 얼룩 발견

80일이 넘게 사건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이혜진(11).우예슬(9)양 유괴.살해사건의 용의자를 특정하게 된 것이 범인이 빌린 렌터카에서 찾아낸 피해자 혈흔이라면 범인임을 입증한 결정적인 증거가 된 '화장실의 예슬양 혈흔'을 찾아낸 것은 첨단 과학수사기법이 아닌 '한국판 CSI' 과학수사계 형사들의 '맨 눈'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의 피의자 정모(39)씨가 지난 16일 밤 충남 보령에서 체포되고 이틀 뒤인 18일 경기경찰청 과학수사계 형사 6명과 안양경찰서 과학수사 형사 2명은 정씨의 집에 모여 정밀 현장 감식을 벌였다.

이날은 체포 직후 범행 자체를 부인하던 정씨가 "집 근처에서 렌터카를 몰고 가다 두 어린이를 치어 숨지게 했고 시신을 화장실에서 처리했다"고 진술한 날이었다.


정씨가 계속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술을 번복하고 있고 정씨가 범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갖지 못한 경찰로서는 정씨가 범인임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미 지난 13일 용의자로 선정해 수사를 해 오던 정씨의 집에서 혈흔 반응검사인 루미놀(Luminol) 테스트를 했지만 혈흔을 찾는데 실패했던 과학수사계 형사들이 두번째 감식에서 택한 방법은 첨단 수사기법이 아닌 바로 형사들의 '육안'이었다.

과학수사계 형사들은 가로 2m 세로 3m 크기의 화장실에 들어가 바닥과 벽, 천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핏자국으로 의심되는 것들을 찾는데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정씨가 이미 핏자국을 완벽하게 없애버린 터라 화장실은 그 어느 호텔 화장실보다 깨끗했지만 루미놀 테스트에서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해 내심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있던 그들의 두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 거렸다.

그러기를 두시간째. 오전 11시 40분께 한 형사가 "이거 혈흔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좀 이상하다"고 소리쳤다. 화장실 벽에 물이 튀겼다 마른 것처럼 보이는 얼룩이 있었다. 얼룩의 크기는 고작 2-3㎜ 가량.

자세히 쳐다보지 않고는 발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핏자국으로 보기도 어려웠지만 오랫동안 현장에서 감식업무를 담당해온 형사의 본능은 "어쩌면 피해자의 혈흔일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과학수사계 형사들은 이 자국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급히 보냈고 다음날 이 얼룩이 핏자국이며 숨진 예슬양의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피의자 정씨의 집에서 피해자의 피가 확인된 것은 정씨가 범인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고 19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도 정씨의 구속 여부를 판단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씨가 범행 당일 빌린 렌터카 트렁크에서 루미놀 테스트를 통해 혈흔을 채취, DNA 대조를 통해 피해 어린이들의 것임을 확인함으로써 정씨를 잡는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했던 과학수사계 형사들이 또 다시 '한 건'을 한 것이다.

경기경찰청 과학수사계 관계자는 "최근 'CSI'로 대표되는 외국의 인기 범죄드라마 또는 인터넷 등을 통해 경찰의 증거확보 방법이 많이 노출되면서 사건현장에서 증거확보가 쉽지만은 않다"며 "그러나 범인이 실수한 작은 부분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 우리 감식형사들의 역할이고 이번에 그 역할을 충실히 이뤄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인유 기자 hedgehog@yna.co.kr (안양=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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