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번 봄에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봄에 함께 부르고 싶은 노래, 또는 봄 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을 새 출발하는 신랑 신부에게, 대학 새내기에게, 책과 씨름하는 수험생에게, 시장에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꽃집 총각에게, 그리고 거리에서 스치듯 만난 사람들에게도 물었습니다. # 첫번째 빈 칸 채우기, “봄은 (민들레)이다” 사람이 제각각이든, 봄에 대한 느낌도 제각각입니다. 첫번째 빈 칸을 채운 답은 다양합니다. ‘초록색, 새내기, 설렘, 미팅, 소풍, 개나리꽃, 진달래꽃…’
미용실에서 만난 대학생 이재순(27)씨는 빈 칸을 ‘봄바람’으로 채워주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여자니까요”라며 수줍게 웃었습니다. 아현동에서 국밥 집을 하는 주무화(65)씨에게 봄은 “따뜻한 여행”입니다. “봄이 오면 우울했던 마음이 활짝 피고 마음도 넉넉해져요. 따뜻한 날에는 여행도 떠나고 싶어요.”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을 타고 훨훨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것이 나이를 초월한 ‘여심’인가 봅니다. 어린이 도서관을 찾은 김혜진(9)양이 기억하는 봄은 ‘민들레’랍니다. 그 이유가 짤막한 동시처럼 예쁩니다. “민들레는 후후~ 불면 솜사탕처럼 날아가니까요. 올 봄에도 민들레 꽃씨를 후후 불어 하늘에 날려 보내고 싶어요. 호호호.” #두 번째 빈 칸 채우기, “올 봄엔 (사랑)하고 싶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남대문 시장, 그 중에서도 봄 옷들이 화사한 맵시를 뽐내는 옷가게 앞이 특히 북적거립니다. 옷을 고르던 박수옥(67)씨는 새봄과 함께 새 식구를 맞을 준비로 들떠 있습니다. “예비 며느리를 맞으러 가는 길에 예쁜 새옷을 사고 싶어요. 새 며느리가 알뜰하고 건강하게 살면서 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주었으면 좋겠네요. 하하하.” 남대문시장 꽃 도매시장은 후레지아, 튜울립 등 봄 꽃이 뿜어 내는 향기로 가득했습니다. 가게 한 편에서 후레지아를 다듬고 있던 고정필(30)씨의 ‘봄 소망’은 소박하지만 절실해 보였습니다. “장사도 잘 되었으면 좋겠고요, 무엇보다 여자 친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봄은 연인들의 계절입니다. 박상익(26)씨는 여자 친구와 즐거운 데이트를 꿈꿉니다. 박씨는 “날씨 좋은 봄에 여행도 가고 연극 구경도 하고 싶다”며 “따뜻한 봄날, 예쁘게 사랑하세요”라고 인사를 전합니다. #여대에 찾아온 봄은? 새내기 “미팅하고 싶어요”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자대학교 입학식장. 대학 새내기들의 새 출발을 알리는 학교 주변은 설렘과 생기가 넘칩니다. 후배를 맞는 선배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습니다. 김경미(21·생활과학부 2년)씨는 “선배가 된다는 것이 떨리기도 하지만, 후배들이 얄밉기도 하다”고 예쁜 눈을 살짝 흘깁니다. 그러나 김씨는 새내기들에게 “성공적이고 즐거운 대학생활이 되기 바란다”고 선배다운 의젓함을 잃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입학식에 참석한 한 새내기는 올 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으로 ‘미팅’을 꼽았습니다. “(아직)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대학가면 많이 한다고 들어서 꼭 해보고 싶어요.” 새내기 유연경(20·언론정보학부)씨는 “대학이 이렇게 신나는 곳인지 몰랐다”면서도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열심히 할 테니 걱정 하지 말고 지켜봐달라”고 말합니다. 유씨는 “새내기 파이팅”이라고 외치고 밝게 웃었습니다. #도서관에 찾아온 봄은? “공부, 공부,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서울 종로구 화동에 자리잡은 정독 도서관. 낮잠이 솔솔 밀려오는 봄날의 오후, 밀폐된 공간에서 책과 씨름해야 하는 수험생들에겐 만만치 않은 사투의 시간입니다. 그들에겐 계절이 바뀌는 것을 한가롭게 감상할 여유가 없습니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만난 김아무개군은 “새 학기에 반장이 되어 친구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고3’이라는 윤지유(19)군은 “(새 정부 들어) 입시제도가 많이 바뀌어 불안하지만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합니다. 재수생 김성훈(20)씨는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둔 김지연(25)씨는 더욱 분주합니다. “취업을 앞둔 4학년이라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여유도 없어요. 공부에 더 매달려야죠.” #마지막 빈 칸 채우기, 봄 처녀, 꽃 바람 여인, 임과 함께 봄 하면 생각나는 노래는 무엇일까요? 동요에서 가요, 트로트까지… 사람들의 선택은 다양합니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잎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떼 쫑쫑쫑 봄나들이 갑니다”(봄나들이, 김현·혜진 남매)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블라우스 입으셨네”(봄 처녀,이미희) “가슴이 터질 듯 한 당신의 그 몸짓은 날 위한 사랑일까”(꽃 바람 여인, 정해덕)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임과 한 백년 살고 싶네”(임과 함께, 최성남) 각자의 노래를 부르며 각자의 봄을 만끽합니다. 취재 중 만난 한 명동 옷가게 주인은 “올 봄은 유난히 짧을 것”이라며 “봄·여름 옷이 함께 출시되고 있다”고 귀띔합니다. 더 짧아진 봄이 아쉽게 가기 전에 마음 것 즐기라는 주문인 것 같습니다. 나른한 오후, 여러분들의 봄은 어디 만큼 와 있나요? 영상/ 박수진 은지희 피디, 글/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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