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전환사채 등 책임 박 전무에 떠넘겨
특검 “이학수에 ‘진전된 진술’ 받아냈다”
특검 “이학수에 ‘진전된 진술’ 받아냈다”
삼성 특별검사팀은 지난 20일 이학수 삼성 부회장한테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대해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차원의 기획안이 있었다’는 진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특검팀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진술한 구조본의 기획안이 경영상 필요에 따라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발행하자는 내용인지, 전환사채 발행부터 실권, 그리고 배당까지 에버랜드 사건의 전 과정을 담은 내용인지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에버랜드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구조본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았던 삼성의 태도에 비쳐보면 이 부회장의 진술은 진전됐다. 이에 대해 특검팀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구조본 개입을 인정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버티는 단계도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난관도 남아있다. 삼성은 결정적일 때마다 2005년 숨진 박재중 구조본 전무한테 떠넘기는 태도를 보인 바 있어, 이번에도 ‘박재중 넘어서기’가 수사의 관건으로 보인다. 삼성의 각종 의혹과 관련해 수사기관 처지에서 박 전무는 일종의 ‘블랙홀’이었다. 삼성은 그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수사는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실제 특검 수사에 앞서 지난해 12월 김석 삼성증권 부사장은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 조사에서 에버랜드 사건 검찰 조사(2003년) 때 거짓 진술을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책임은 박 전무에게 떠넘겼다. 당시 특본 관계자는 “김 부사장이 ‘박 전무 부탁으로, 1996년 에버랜드 실권 전환사채 인수 의사를 이재용 전무한테 전화해 확인한 적도 없는데 확인했다고 거짓 진술’한 것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에버랜드 재판에서도 박 전무는 ‘블랙홀’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는 검찰에 낸 서면진술서에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 절차는 박 전무가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2005년 엑스파일 사건 수사 때도 삼성은 정치권에 건넨 자금의 정확한 내역은 박 전무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며 빠져나갔다. 특검팀의 이(e)삼성 조사 때도 삼성은 이삼성의 설립 자금이 박 전무가 관리한 자금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에버랜드 사건 당시 구조본 공식 서열은 ‘이학수 본부장-유석렬 재무팀 전무-박재중 상무’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삼성이 박 전무에게 핵심 의혹을 떠넘길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고제규 기자 unj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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