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OMR 카드. 이름 쓰는 곳에 주목 ! / 한겨레 블로그 혹성탈출
※ 이 이야기는 거짓과 과장이 없는 100% 실화임.
노태우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계실 때의 일이다. 서울의 한 고3 교실에서는 11월의 마지막 모의고사가 실시되고 있었다. 매달 전국규모의 모의고사를 거쳐 가을부터 시행되는 대여섯번의 '배치고사'중 대입시험 직전의 마지막 모의고사가 실시되고 있던 것이었다. 그시절의 시험을 쳐 본 사람은 알겠지만 '모의고사'는 OMR카드라는 컴퓨터 용지에 컴퓨터 싸인펜이나 컴퓨터용 연필로 체크를 하는 형식이었다.
그런데,위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름 쓰는 란이 4문자. 즉 네 칸으로 되어 있었다. 남궁옥분이나 선우은숙같은 두 글자 성을 가진 사람이나 박마리아,김베드로 같은 세글자 이름을 가진 사람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된다. 모의고사를 주최하는 기관에 따라 세 글자만 입력하는 곳도 있었지만, 난 네 글자를 입력하게 하는 것이 다양성을 고려한 배려라고 생각되었다. 마지막 모의고사의 이름을 쓰는 란은 4 글자를 입력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난 '마지막'이란 것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이제 마지막인데...젊은 시절 이렇게 보낼수 있나!" 하는 생각에 난 한글자 성과 두글자 이름을 가졌지만 네 칸을 전부 채우고 말았다.
(몇 시간이 흐른 후...)
3교시 마지막 시간. 놀랍게도 담임이 우리 반의 감독으로 들어왔는데,담임교사는 1,2교시때 제출한 답안지를 들고 들어왔다. 당시 수험번호나 학교번호를 잘못 써서 성적 자체가 나오지 않았던 사례가 몇 번 있었는데,담임은 성적에 자신이 없는 누군가 일부러 잘못 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연필과 지우개를 들고 반 전체의 OMR카드를 체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예상치 못했던 나는 겁이 덜컥 났다. 석자의 이름을 가졌는데 네칸을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의 담임은 파란색 야구 방망이로 교실을 지배하며,지배원리를 거스르는 세력은 가차없이 엉덩이에 불벼락을 내려주시던 분이기 때문에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당시 42번이었는데 담임이 한장한장 넘기는 OMR카드가 내 번호에 가까워 질 수록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그러던 가운데 담임이 적막을 깨고 어이가 없다는 피식 쓴 웃음을 짓더니 내쪽을 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야! 너 미쳤냐? 누가 답안지 가지고 장난치래? 엉? 너 시험이 장난이냐?"
난 이제 죽었구나...하고 고개를 책상에 쳐박고 있었는데 담임의 그 다음 말을 듣는 순간 난 잠시 멍해졌다.
"41번 최명박 !! 너 맞을래? "
난 42번이었는데 담임이 부른 건, 내 앞에 앉아있는 우리반의 모범생 41번 최명박(가명.이니셜만 같음) 이었다.
"뭐?? 최명박님 ?? 누가 임마 이름 뒤에 '님'자 붙이래? 너 쫌 있다 보자..."
최명박이는 이름쓰는 곳에 한칸이 남자 '님'자를 붙였던 것이었다. 난 순간 머릿속이 텅 빈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어서 터지는 담임의 호통소리.
"어쭈? 이것들이 짰구만?? 아주 맞고 싶어서 환장을 했네...42번 김혹성 !! (내 이름. 가명) "
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진땀만 흘리며 책상에 코를 박고 있었다.
"야 임마 ! 니가 산신령이냐? 니가 무슨 도사야?? 김혹성옹 ?? (翁:어르신네 옹. 필자 주) 임마 이름에 '옹'은 왜 붙여?? 왜 이름가지고 장난질이냐고!! 너희 두 놈 이따가 보자... 어디서 지금 장난질이야?? 첨부터 너희 짰지? " 나와 내 앞에 앉은 최명박이가 정말로 짠게 아니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전혀 믿어주지 않았다. 이제 나와 최명박이를 기다리고 있는 건 파란색 몽둥이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번 비극이 일어나면 연달아 일어나는 법.
"48번 박의천 !! 이건 또 뭐야?? 넌 뭐야 ? 뭐하는 놈이야 ?!! " (이름은 실제로 '의천'이고 , 프라이버시를 위해 '박'은 임의로 변경했음)
(48번 박의천은 이름이 '의천'인 덕에 별명이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승려인 '대각국사 의천' 에서 따온 '대각국사'로 불리고 있었다)
"대각국사?? 넌 임마 이름이 대각국사냐? 아니 이것들이 시험을 진짜 뭘로 아는거야?? "
한 명쯤 장난을 쳤으면 담임도 허허 웃으며 봐줄 수도 있었을 텐데, 장난을 치는 사람이 계속해서 발견되자 안그래도 저승사자 같은 얼굴은 점점 자비심 없는 얼굴로 변해가고 있었다. 난 시험이 끝나고 몇 대나 맞게될까 하는 생각에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고 왜 하필이면 저 녀석들이 오늘 저런 장난을 쳤을까 원망만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반에선 그런 장난을 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로 또 적막을 깨는 담임의 고함 소리.
"56번 김성오 !! (가명) "
드디어 담임도 인내심을 잃었는지 교탁을 쾅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56번 김성오는 키가 크고 영화를 좋아하던 친구였는데, 당시 한창 인기이던 멜깁슨 주연의 영화 리썰 웨폰(Lethal Weapon:치명적인 무기.영화에선 인간병기의 의미) 에 푹 빠져 있었다.
"김성오 이자식아...넌 뭐야?? 니 이름이 '인간병기'야 ?? 너 미쳤냐?? 니가 병기야? 아주 이것들이 때려달라고 애원을 하는구만?? "
다른 친구들은 여기 저기서 배를 잡으며 킥킥 웃고 난리가 났는데, 나와 최명박님,대각국사,인간병기 네 사람은 앞으로 맞을 생각에 창백한 얼굴로 진땀만 흘리고 있었다. 어떻게 시험을 쳤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는 가운데 시험은 끝났는데 담임은 마지막 답안지를 거두어 교무실로 가면서 "1열로 나란히 시험대형으로 배치했던 책상을 원래대로 해놓고 기다리도록" 이라는 지시를 내렸고, 원래대로 책상 배치를 끝내자 금방 교실로 되돌아 왔다. "아까 답안지에 장난친 네 명...일어나"
일어나 보니 이게 또 왠 우연의 일치인지...최명박님은 내 앞자리,인간병기는 내 짝,그리고 그 뒷자리는 대각국사가 아닌가. 즉, 네 명의 자리가 몰려있었던 것이다. "너희 솔직히 말해...네 명이서 짰지?그치?" 우리는 짠게 아니라고 절대 사전 모의한적이 없으며,100% 우연이라고 설명을 했는데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그것을 믿는 사람은 우리 넷 밖에 없었다. "너희 네 녀석은 능지처참에 처해 마땅하나 마지막 시험이고 해서 특별히 선처를 내린다. 너희 네 명이서 교실청소 다하고,난로 청소까지 다 하고 집에 가도록" 덕분에 보통 15명 정도가 하던 청소를 4명이서 다 하게 됐고, 시간도 3배 이상걸려 저녁해가 질때나 되서야 집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네 명은 학교의 언덕길을 내려오며
"야...이거 진짜 우연의 일치라는거 아무도 안 믿겠지?" "응...누가 믿겠냐...근데 니들이 쓴건 좀 센스가 없다야..." "웃기지마~니가 쓴게 제일 유치해!" 하고 남들은 답 맞춰 볼 시간에 서로의 '작명센스'에 대해 토론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수험생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인데, 나는 주위에 괴짜들이 많았던 덕에 그나마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요즘 고3들도 비슷한 장난을 하고 놀까? 갑자기 그때의 추억과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때 그런 '발칙한' 장난을 하던 내 친구들이여...지금은 어디에들 있느냐!!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몇 시간이 흐른 후...)
3교시 마지막 시간. 놀랍게도 담임이 우리 반의 감독으로 들어왔는데,담임교사는 1,2교시때 제출한 답안지를 들고 들어왔다. 당시 수험번호나 학교번호를 잘못 써서 성적 자체가 나오지 않았던 사례가 몇 번 있었는데,담임은 성적에 자신이 없는 누군가 일부러 잘못 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연필과 지우개를 들고 반 전체의 OMR카드를 체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예상치 못했던 나는 겁이 덜컥 났다. 석자의 이름을 가졌는데 네칸을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의 담임은 파란색 야구 방망이로 교실을 지배하며,지배원리를 거스르는 세력은 가차없이 엉덩이에 불벼락을 내려주시던 분이기 때문에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당시 42번이었는데 담임이 한장한장 넘기는 OMR카드가 내 번호에 가까워 질 수록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그러던 가운데 담임이 적막을 깨고 어이가 없다는 피식 쓴 웃음을 짓더니 내쪽을 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야! 너 미쳤냐? 누가 답안지 가지고 장난치래? 엉? 너 시험이 장난이냐?"
난 이제 죽었구나...하고 고개를 책상에 쳐박고 있었는데 담임의 그 다음 말을 듣는 순간 난 잠시 멍해졌다.
"41번 최명박 !! 너 맞을래? "
난 42번이었는데 담임이 부른 건, 내 앞에 앉아있는 우리반의 모범생 41번 최명박(가명.이니셜만 같음) 이었다.
"뭐?? 최명박님 ?? 누가 임마 이름 뒤에 '님'자 붙이래? 너 쫌 있다 보자..."
최명박이는 이름쓰는 곳에 한칸이 남자 '님'자를 붙였던 것이었다. 난 순간 머릿속이 텅 빈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어서 터지는 담임의 호통소리.
"어쭈? 이것들이 짰구만?? 아주 맞고 싶어서 환장을 했네...42번 김혹성 !! (내 이름. 가명) "
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진땀만 흘리며 책상에 코를 박고 있었다.
"야 임마 ! 니가 산신령이냐? 니가 무슨 도사야?? 김혹성옹 ?? (翁:어르신네 옹. 필자 주) 임마 이름에 '옹'은 왜 붙여?? 왜 이름가지고 장난질이냐고!! 너희 두 놈 이따가 보자... 어디서 지금 장난질이야?? 첨부터 너희 짰지? " 나와 내 앞에 앉은 최명박이가 정말로 짠게 아니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전혀 믿어주지 않았다. 이제 나와 최명박이를 기다리고 있는 건 파란색 몽둥이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번 비극이 일어나면 연달아 일어나는 법.
"48번 박의천 !! 이건 또 뭐야?? 넌 뭐야 ? 뭐하는 놈이야 ?!! " (이름은 실제로 '의천'이고 , 프라이버시를 위해 '박'은 임의로 변경했음)
(48번 박의천은 이름이 '의천'인 덕에 별명이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승려인 '대각국사 의천' 에서 따온 '대각국사'로 불리고 있었다)
"대각국사?? 넌 임마 이름이 대각국사냐? 아니 이것들이 시험을 진짜 뭘로 아는거야?? "
대각국사 의천. 욕보여서 죄송합니다 / 한겨레 블로그 혹성탈출
"56번 김성오 !! (가명) "
드디어 담임도 인내심을 잃었는지 교탁을 쾅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56번 김성오는 키가 크고 영화를 좋아하던 친구였는데, 당시 한창 인기이던 멜깁슨 주연의 영화 리썰 웨폰(Lethal Weapon:치명적인 무기.영화에선 인간병기의 의미) 에 푹 빠져 있었다.
"김성오 이자식아...넌 뭐야?? 니 이름이 '인간병기'야 ?? 너 미쳤냐?? 니가 병기야? 아주 이것들이 때려달라고 애원을 하는구만?? "
내가 바로 ‘인간병기’ / 한겨레 블로그 혹성탈출
"야...이거 진짜 우연의 일치라는거 아무도 안 믿겠지?" "응...누가 믿겠냐...근데 니들이 쓴건 좀 센스가 없다야..." "웃기지마~니가 쓴게 제일 유치해!" 하고 남들은 답 맞춰 볼 시간에 서로의 '작명센스'에 대해 토론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수험생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인데, 나는 주위에 괴짜들이 많았던 덕에 그나마 재미있는 추억을 많이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요즘 고3들도 비슷한 장난을 하고 놀까? 갑자기 그때의 추억과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때 그런 '발칙한' 장난을 하던 내 친구들이여...지금은 어디에들 있느냐!!
친구야...우리 빠따맞을거 같지 않니? / 한겨레 블로그 혹성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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