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신임 국정원장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이명박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돈 직접 건넸다’는 김용철 변호사만 세차례 조사
‘봐주기’ 비판 피하려 형식적 서면조사 가능성도
‘봐주기’ 비판 피하려 형식적 서면조사 가능성도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6일 임명장을 받고 공식 업무를 시작해, 삼성 금품로비 의혹의 꼬리표를 떼지 못한 인사가 주요 국가기관의 수장을 맡게 되는 상황이 현실화됐다.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어떤 형식의 본인 조사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특검팀은 26일 ‘(김 원장을 포함해) 삼성의 로비 대상자들을 소환하거나 서면조사할 계획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말씀드릴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국정원 관계자는 “아직까지 김 원장에 대한 소환조사 통보나 서면조사 질의서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동안 김 원장 조사 여부를 놓고 “기다려 보라”는 말만 되풀이하던 특검팀이 어물쩍거리며 그의 임명을 ‘방조’한 셈이 됐다.
지난 5일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김성호씨가 검찰 재직 당시 삼성한테서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법조계에선 소환조사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김용철 변호사가 “내가 직접 돈을 건넸다”며 구체적 수사 단서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김 원장이 몸담았던 검찰 쪽에서도 “정황만 드러난 다른 로비 대상자들과는 달리 ‘직접증거’로서의 증거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소환이 불가피할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특검팀 역시 사제단 발표 다음날 “제기된 의혹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특검팀은 지난 11일 김 변호사한테서 김 원장 관련 상황을 기록한 진술서를 제출받은 데 이어, 김 변호사를 세 차례나 소환해 관련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가장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이 건에 대해 뇌물을 줬다는 쪽만 조사하고, 정작 수수 혐의를 받는 쪽은 조사하지 않은 것이다.
수사팀의 이런 행태에 ‘후보자’ 신분 때도 조사를 안했는데, 현직 국정원장을 조사할 수 있겠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다른 로비 의혹 대상자들에 대한 특검팀의 태도와 판단을 엿보게 하는 대목으로도 읽힌다. 사제단의 김인국 신부는 “양심에 따라 호소했는데, 결과는 예정된 대로 가는 것 같다”며 실망감을 표현했다.
특검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돈을 받은 사람들은 삼성 쪽 사람들이 아니라서 (삼성처럼) 부르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로비 대상으로 지목된 이들이 모두 쟁쟁한 인물들이라 그렇다는 말로도 풀이된다. 기껏해야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을 비껴가기 위해 형식적 서면조사 선에서 ‘떡값’ 조사를 끝낼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김 원장에 대해서는 그가 검찰에 있을 때 삼성으로부터 주상복합 아파트를 특혜분양 받아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의혹이 추가로 불거지기도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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