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 금융위원장(가운데)이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회의실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기에 앞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김종창 금감원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산업자본, 은행지분 10%만 확보해도 경영권 행사 가능
전문가 “금융회사 경쟁력 강화 아닌 위기 초래 우려 커”
전문가 “금융회사 경쟁력 강화 아닌 위기 초래 우려 커”
정부의 금산분리 3단계 완화 방안은 궁극적으로 국내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허용하겠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벌과 은행간에 뚜렷한 이익의 충돌이 발생하지 않고 금융시스템 자체가 흔들릴 정도의 위험이 없다면 재벌의 은행 지배를 허용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연내 시행될 산업은행 민영화 등에 재벌들이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우리 경제시스템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금산분리 완화가 금융산업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체 금융시스템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 재벌기업의 은행 지배 불가피
3단계 방안은 사실상 재벌기업에 은행 소유의 길을 터주는 절차로 보인다. 1단계 사모펀드(PEF)와 연기금의 지분 제한 완화만으로도 은행에 대한 기업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게 커진다. 사모펀드가 은행 경영을 주도하고, 사모펀드의 대주주가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2단계로 산업자본의 지분 한도를 10%까지 풀어준다면 기업의 은행 지배가 실질적으로 가능해진다. 국내 은행들은 워낙 주식 물량이 많고 지분이 분산돼 있어 10% 안팎의 지분만 확보해도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 사모펀드를 통한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도 필요없게 된다.
3단계에서는 적격성 심사만 통과하면 15%, 20%까지 은행 지분 소유가 가능해져 완전한 재벌기업 소유 은행이 탄생하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대주주의 적격성을 엄격하게 심사하겠다고 말하지만,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재벌기업의 은행업 진출 등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현 정부가 이런 기준을 얼마나 엄격하게 지킬지는 의문이다.
■ 경쟁력 아니라 리스크 키운다
정부는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금융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글로벌 금융회사를 출현시킨다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금융산업 경쟁력의 원천인 투명성, 신뢰성, 리스크 관리능력을 높이는 방안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이 ‘금융·자본시장 경쟁력 강화 플랜’을 제시하면서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를 첫번째 과제로 제시한 것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엄격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은행의 덩치를 키우면서 산업자본의 지배까지 허용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을 부풀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대주주 기업이 어려워질 경우 은행은 대출을 회수해야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하루 이틀 미루다 결국 부실을 키우고 더 큰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과거 대우증권이 대우그룹 계열사들에 돌아오는 어음을 막기 위해 매일 수천억원씩의 콜자금을 빌려 쓰려져가는 그룹을 살리려 했던 것은 금산분리가 왜 필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재벌이 은행의 모든 자금과 정보를 독점할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삼성의 요구에 따라 차명계좌를 개설해주는 것은 물론 삼성 계열사 직원 및 친인척들의 은행 거래 내역을 고스란히 알려줬다. 기업이 은행 경영권을 장악할 경우 여기에 그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지배하는 은행을 통해 경쟁 기업의 정보까지 낱낱이 얻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은행이 그런 상황에서도 금융위로부터 경고를 받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현재의 금융감독시스템으로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확대가 재벌기업의 사금고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남기 선임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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