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초등학생을 때려 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친 용의자의 수배 전단이 붙어 있는 경기 고양시 대화동의 사건 현장에서, 31일 오전 보도진이 당시 상황을 취재하고 있다.
고양/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시국치안’에 밀린 ‘민생치안’
수뇌부 ‘새정부 공안코드’ 몰두…하위직들 “5공때로 돌아가는듯”
그럴싸한 대책도 인원 없어 말뿐…일선경찰 “위에선 현실 몰라”
수뇌부 ‘새정부 공안코드’ 몰두…하위직들 “5공때로 돌아가는듯”
그럴싸한 대책도 인원 없어 말뿐…일선경찰 “위에선 현실 몰라”
지난 3월26일 발생한 경기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폭행 사건이 안양 초등생 납치·살해 사건의 불안감을 되살리고 있다. 삶의 현장에서 가장 절실한 ‘민생 치안’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기 때문이다.
경찰이 안양 초등학생 유괴·살해 사건 이후 종합대책을 내놨음에도 일선 현장에서 똑같은 실수가 반복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찰 안팎에서는 “겉으로만 민생 치안을 강조하고, 실제로는 조직 전체가 법과 질서를 앞세우는 이명박 정권의 방향에 따라 ‘시국 치안’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졌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서울의 한 간부급 경찰관은 “경위 이하 하위직들 사이에선 ‘5공 때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의견들이 많다”며 “다들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검찰과 달리 우리같이 힘없는 조직이야 정권이 바뀌면 윗선 눈치 보느라 워낙 휘둘려서 그런 게 아니겠느냐”고 토로했다.
공교롭게도 일산에서 초등생 납치미수 사건이 일어난 지난 26일은, 경찰이 ‘아동·부녀자 납치실종사건 종합대책’을 발표한 날이다. 경찰은 실종사건 전담반을 꾸리고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강화하는 등의 백화점식 대책을 총망라해 내놨다. 이어 어청수 경찰청장은 이날 오후 ‘경제 살리기와 법질서 확립’이라는 경찰 주최 세미나에 참석했다. 경찰 총수가 “법과 질서를 잘 지키면 국민총생산이 1% 올라간다”며 폭력집회 엄단을 강조한 그 시간에, 일선 현장의 경찰관들은 수사의 기본조차 지키지 못하고 허둥댔다. 경찰 수뇌부와 현장의 괴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 지방경찰청의 경정급 간부는 “불법 집회 엄단 방침 등은 사실 일선 현장에선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수뇌부가) 정부의 지침을 충실히 따르는 데만 너무 골몰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더구나 일산 초등생 폭행·납치미수 사건이 보도된 이후 경찰 수뇌부는 전형적인 ‘윗선 눈치보기’ 행보를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31일 오전 ‘경찰 책임론’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자, 경찰은 예전에 없던 전국 지방경찰청장 화상회의를 갑작스레 열었다. 오후 들어 이 대통령이 일산 사건 현장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경찰청은 어이없게도 “일선 수사팀을 격려하기 위해 경찰청장이 일산을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이날 오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부실 수사’를 사과했다.
경찰 수뇌부의 이런 움직임과 달리 민생 치안을 담당하는 일선에서는 “열악한 수사 환경이 달라진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최근 국회의원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민생 치안 업무는 상대적으로 뒷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마포경찰서 관계자는 “한나라당 돈선거 문제가 터지고 나서 근무자들만 쪼고 있어 정신이 없을 정도”라며 “위에서 ‘제대로 안 하니까 그런 일이 터지는 거 아니냐’며 시키니까 우리야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경찰 수뇌부에서 그럴싸한 범죄예방 대책을 발표해도 이를 뒷받침할 인원은 한정돼 있어 말뿐인 대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강남 지역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선거 관련 업무도 늘고, 이런저런 경호 업무나 집회에도 동원되지만 인원은 그대로다.일선 지구대에서는 술취한 사람들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인데, 위에서는 이런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모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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