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오른쪽 두번째)이 서울 한남동 특검 사무실에 출두한 4일 오후, 삼성 에스디아이(SDI) 해고 노동자와 진보신당 당원 등이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길을 지나가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건희 삼성 회장 소환
“동문서답 않고 대답 잘했다” 곳곳 입맞춘 흔적
SDI 해고자들 시위…내외신 기자 300여명 몰려
자장면·물만두로 수사팀과 함께 저녁식사
“(삼성을) 범죄집단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고, 그것을 옮긴 여러분들이 문제가 있지 않으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포토라인에 선 이건희 회장은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작심하고 말을 쏟아냈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는 수준의 반응을 예상했던 취재진은 뜻밖의 발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회장은 1995년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 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뒤로 공개된 자리에서 이처럼 ‘거친’ 말을 쏟아낸 적이 없었다.
이 회장은 4일 오후 2시 검은색 벤츠 승용차를 타고 서울 한남동 특검 수사팀 입주 빌딩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삼성에스디아이 해고 노동자와 진보신당 당원 30여명이 “이건희는 반성하라” “구속하라” “각성하라”고 외쳤다. 경찰 100여명이 인간띠로 통로를 만들었고, 특검팀 수사과장 등 3명이 이 회장을 안내했다. 특검팀 건물 주변에는 관할서인 용산경찰서장이 직접 나온 가운데 경찰과 전·의경 300여명이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현장에는 내외신 취재기자 200여명과 카메라기자 100여명이 몰려들어 이 회장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와 취재진을 위해 잠시 멈춘 이 회장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미리 생각해둔 듯한 말에서는 목청이 높아지기도 했다. 이어 건물 7층으로 올라간 이 회장은 조준웅 특별검사와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눴다. 윤정석 특검보는 “예우 차원에서 만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회장은 이날 밤 11시께 귀가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5일 새벽 0시50분께까지 조사가 길어졌다. 1995년 이 회장을 11시간 가량 조사한 검찰 관계자는 “이 회장이 말을 짧게 하지만 잡아떼거나 힘들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조서도 꼼꼼하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날 특검팀 관계자도 “묻는 질문에 동문서답하지 않고 대답을 잘했다. 질문 취지를 알아듣고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결정적인 질문에는 “아니다. 기억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13년 전 소환 당시 돌솥비빔밥을 배달시켰던 이 회장은 이번에는 근처 중국음식점에서 배달한 자장면과 물만두로 수사팀과 저녁식사를 했다.
귀가 현장 / 이 회장 “100% 시인은 아니다…국민에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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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 이건희 회장 13년만에 검찰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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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가 끝난 뒤 조준웅 특검은 다시 이 회장을 따로 만나 조서 내용을 바탕으로 구두조사를 벌였다. 특검팀 관계자는 “조 특검이 기소, 불기소를 결정하기 때문에 조사 내용을 확인하는 절차”라고 말했다.
5일 새벽 다시 건물 로비에 모습을 드러낸 이 회장은 장시간 조사 탓인지 다소 지친 표정이었고, 출두 때의 날카로운 표정도 누그러졌고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이 회장은 취재진이 질문을 하려고 하자, “국민 여러분들께 오후에 나올 때 할 말씀을 못했다”며 미리 준비한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가 일부 혐의를 시인하는 듯한 표현을 쓰자, 자세하게 물으려는 기자들과 변호인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앞서 강찬우 부장검사는 “이 회장이 귀가할 때는 출석 때와는 다른 말을 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남일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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