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4일 오후 서울 한남동 조준웅 특검 사무실로 출석해 “글로벌 기업인 삼성이 범죄집단으로 몰리는 상황에 누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 기자를 쳐다보며 “범죄집단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고, 옮긴 여러분들이 문제가 있지 않으냐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1995년엔 서초동, 2008년엔 한남동
1995년 11월8일 오전 이건희 회장이 재계에서 ‘서초호텔’로 불리던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에 모습을 나타났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던 대검 중앙수사부는 전날 이 회장 등 재벌 총수 6명에게 출석을 통보했다. 현명관 당시 비서실장을 대동한 이 회장은 기자들의 질문엔 입을 닫았지만 표정에는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이번엔 혼자였다. 13년 전 함께 소환 통보를 받은 대우와 동아그룹은 그 사이 재계 목록에서 사라졌다. 삼성은 국내를 넘어 세계로 무섭게 성장했지만, 제대로 털어내지 못한 비리의 그늘도 그만큼 깊어졌다. ‘의혹의 정점’인 이 회장의 얼굴은, 13년 전과 달리 굳어 있었지만 작정한듯 불만을 토해냈다.
삼성 쪽은 이 회장 소환 시기를 특검 쪽과 조율하는 한편으로, 소환에 대비해 이미 조사를 받은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과 진술 요령 등을 논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 삼성은 ‘이 회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직접 돈을 건넨 적은 없고 사후 보고만 받았다’며 뇌물 제공과 이 회장을 철저히 분리했다.
1995년 첫 소환 당시 삼성은 ‘재계의 안기부’로 불리던 비서실의 정보망과 인맥을 총동원해 이 회장의 소환 여부를 가늠했다. ‘소환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고, 외국에 머물며 수사 상황을 지켜보던 이 회장은 귀국했다. 곧이어 검찰의 전격적인 소환 통보가 뒤따랐다. 당시 비서실 관계자들이 심한 질책을 받았다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1995년 이 회장을 11시간 가량 조사했던 수사팀 관계자는 “이 회장이 말을 짧게 하지만 잡아떼거나 힘들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조사가 끝난 뒤에는 자신의 조서도 꼼꼼하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 이후 삼성에서는 “다시는 회장이 검찰청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이 회장이 검찰 조사를 극도로 꺼리게 됐다는 것이다. 삼성은 그룹 자체의 법무 능력을 키우는데 힘을 쏟았다. 검찰 중수부·특수부 출신이나 주요 보직에 있던 판사 등을 집중적으로 영입했다. 먼저 검찰 특수부 출신의 김용철 변호사가 법무팀장으로 왔고, 대검 수사기획관을 지낸 이종왕 전 법무실장처럼 ‘거물’도 스카우트했다.
그 뒤 이 회장은 세풍, 에버랜드, 엑스파일 사건때마다 번번히 검찰 수사를 비껴갔다. 이번에도 삼성은 법무실과 전략기획실 등이 중심이 돼 ‘왕의 소환’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수임을 하지 않았는데도 조준웅 특검이나 특검보 등과 사시 동기나 학연·지연으로 연결되는 변호사들이 수시로 특검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특검보 1인당 삼성 쪽 변호사 3명이 붙었다”는 말도 나돌았다.
그러나 결국 부인과 아들에 이어 이 회장이 13년 만에 수사기관의 포토라인에 서자, 법조계 안팎에선 “막강한 삼성 법무실로도 결국 막지 못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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