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매매 피해여성들, 업주 상대 손해배상소송
바지사장이거나 재산빼돌려 무일푼
승소확정 5건중 한건도 집행못해
필리핀 여성 아날리사는 지난해 1월 예술흥행비자(E-6)로 한국에 들어왔다. 이어 월급 57만원을 받고 단지 서빙 일을 하는 조건으로 동두천의 한 클럽에 취직했다. 그러나 어느날 클럽 주인에 의해 2층 ‘방’으로 떼밀려 들어갔다. “싫다”고 하면 곧바로 맥주병과 욕설이 날아왔다. 생리하는 날이라도 예외 없이 ‘외박’을 해야 했다. 그는 결국 필리핀 여성들을 돌보는 글린 신부가 경찰을 데려와 구해줄 때까지 넉달 동안 그곳에 갇혀 있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재판장 김건수)는 아날리사 등 3명이 클럽 주인 박아무개(44)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성매매를 강요해 정신적 고통을 끼친 데 대해 각각 1천만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고 20일 밝혔다. 그러나 이들이 당장 돈을 받게 될 확률은 희박하다. 업주 박씨가 실소유주가 아닌 ‘바지 사장’인데다 본인 이름으로 된 재산도 없다. 또 현재 박씨의 소재조차 찾을 수 없다. 성매매 피해 여성 대부분은 아날리사처럼 재판에 이기고도 돈을 받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업주를 상대로 승소 판결이 확정된 5건 중 실제로 돈이 집행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 100만~5천만원의 위자료가 인정됐지만, 정작 업주들은 한푼도 내놓지 않았다. 2003년 400만~600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필리핀 여성 11명은, 업주가 ‘빈털터리’ 신세여서 결국 빈손으로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는 성매매 업주들이 대부분 ‘바지 사장’이거나 소송에 앞서 미리 재산을 빼돌리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뺏길 재산이 없다고 판단한 업주들이 재판에 대응하지 않아, 무변론으로 싱겁게 끝나는 재판도 많다. 수원지법에서 7천만원 배상 판결을 끌어낸 이은희 변호사는 “소송을 낼 때 이미 업주가 폐업신청을 한 뒤라, 아직 돈을 받지 못했다”며 “재산명시 신청이나 파산신청 등 업주의 재산을 찾아낼 모든 방법을 궁리 중”이라고 밝혔다.
본안소송을 내기 전 업주의 재산을 찾아내 가압류를 신청하는 것도 돈을 받아낼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다. 강지원 변호사는 “일단 재산을 가압류당하면 업주 쪽에서 먼저 화해를 요청해 온다”며 “피해 여성들에게 2천만~5천만원씩을 주는 대가로 합의한 사례가 2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 업주 본인 이름의 재산이 확인됐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이런 소송을 맡은 변호사들은 “업주를 상대로 한 손배소가 성매매 근절을 위해 필요한 방법 중 하나”라면서도 “실제로 업주한테 돈을 받아내려면 국가의 단속 소홀과 경찰의 비호로 법의 테두리를 피해 다니는 성매매 업주들에 대한 적극적인 처벌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날리사의 변호를 맡은 김인숙 변호사는 “주로 ‘바지 사장’을 내세워 장사를 하는 성매매 업소의 특수성을 감안해, 업주의 직계 가족이나 친인척으로까지 재산 조회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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