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한 ‘연금제도 정상화를 위한 연대회의’가 지난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가족부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한 회원이 청와대의 ‘뉴 스타트 2008 프로젝트’를 “서민 노후 파탄낼 절망 스타트!”라고 비꼬는 내용의 피킷을 들고 서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연금담보 신불자 대출’ 그대로 추인
친정부 위원 다수…독립성 한계 드러나
친정부 위원 다수…독립성 한계 드러나
국민연금을 담보로 신용불량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안이 11일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안은 청와대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이른바 ‘뉴 스타트 2008 프로젝트’의 일부다. ‘기금 운용 독립성’을 위해 구성된 정부 위원회가 청와대의 안을 뒤늦게 추인함으로써,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복지부는 이날 서울 소공동 한 호텔에서 산하 국민연금기금 운용위원회(위원장 김성이 복지부 장관)를 열어 ‘국민연금 가입 이력이 있는 금융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채무 상환금 대여계획안’을 심의·의결했다. 위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고 표 대결을 벌이는 진통 끝에 원안대로 통과됐다. 표결 처리는 1999년 이후 처음이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대개는 합의를 거쳐 수정 의결한다”며 “찬반이 워낙 첨예해서 표결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중요 사안을 사전에 심의하는 실무평가위원회조차 건너뛰었다.
이에 따라 기금운용위가 찬반 논란이 큰 민생 사안을 사회적 합의 없이 밀어붙인 것을 두고 우려와 반발이 크다. 현행 기금운용위는 복지부 산하 비상설 기구로 정부 편향 위원들이 다수여서,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지키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때문에 기금운용위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이날 기금운용위 의결로, 복지부는 이르면 다음달부터 신용불량자한테서 기금 대여 신청을 받아 7월부터 돈을 빌려줄 방침이다. 신청 자격자는 납부보험료 총액의 50%로써 채무 조정액을 모두 갚을 수 있는 이들이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신용불량자 142만명 가운데 29만명 가량이다. 이들이 신청하면 신용회복위원회와 금융기관의 협의를 거쳐 빚의 3분의 2 가량을 탕감받는다. 국민연금공단이 빌려준 돈은 곧바로 금융기관으로 넘어가 빚을 터는 데 쓰인다. 정부는 취업·창업을 지원해 경제적 재기를 도울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대책의 실효성을 두고 비판이 거세다. 이들이 고리 사채 같은 악성 채무에 발목이 잡혀 있다면 신용을 회복해도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빈곤층의 노후 대책에까지 손을 대어 채권자인 금융기관의 채무 회수만 도와줄 뿐이라는 지적이다. 국민연금 수급권은 원래 차압·양도가 불가능하다. 실제로 1998년 국민연금을 담보로 빌려준 생계자금의 상환율은 9.5%에 그쳤다.
‘연금제도 정상화를 위한 연대회의’를 꾸린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기금운용위 회의가 열린 서울 소공동 한 호텔 앞에서 “국민 노후를 담보로 한 부실 신용회복 대책을 폐기하고, 신용회복 지원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며 피킷 시위를 벌였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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