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포함한 경영진 쇄신을 검토하겠다.” 4월11일 삼성특검에 출두한 이건희 삼성 회장. 사진 한겨레 강재훈 기자
조준웅 특검 수사발표 임박
등기임원 아니어도 ‘사실상의 이사’…배임혐의 기소 가능
‘경영권 승계’ 의혹속 재계 ‘드러내놓고’ 상속세 폐지 주장 이건희 삼성 회장이 4월11일 삼성 특검에서 두번째 조사를 받은 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나를 포함한 경영진과 그룹경영체제의 쇄신을 깊이 생각해 보겠다”면서 기소가 되면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생각이냐는 질문에 “생각해 보겠다”고 돌발적인 말을 던졌다. 과연 이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퇴진할 것인가?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제 폭풍 속에 들어간 것일까? ‘은둔의 제왕’ 이 회장의 이날 깜짝 발언을 계기로 이 회장과 삼성의 향후 진로를 둘러싼 논의가 분출하고 있다. 특검 수사를 계기로 삼성에 비상한 지각변동이 일고 있는 건 분명하다. 삼성을 둘러싼 모든 불확실성은 수사 결과가 발표된 뒤에야 걷힐 것이다. 잠적했던 삼성 쪽 참고인들 자진 출석 100여 일 동안 진행된 조준웅 삼성특별검사팀의 수사 결과 발표가 임박했다. 특검은 이건희 삼성 회장을 재소환하고 삼성 본사를 또 한 번 압수수색하는 등 막판 보강 조사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4월5일 첫 소환 당시 이 회장이 ‘비자금 조성 의혹 등 책임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건수에 따라… 100% 다 인정은 안 되고”라고 말한 뒤부터 모든 것이 빠르게 ‘정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잠적했던 삼성 쪽 참고인들이 자진 출석하는 등 삼성 쪽에서도 수사를 털려는 분위기다. 현명관 전 삼성그룹 비서실장도 4월10일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고 “내가 갖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 28만 주도 실제 소유주는 이건희 회장”이라며 차명주식 보유를 고백했다.
사실 100여 일간의 수사 과정에서 특검이 밝혀낸 ‘진실’ 또는 ‘사실관계’는 대부분 언론에 이미 공개됐다. 수사가 너무 오래(?) 진행된 탓인지 이제 새롭다거나 놀라울 것도 별로 없다. 1996년 12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과 1999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사건, 2001년 e삼성 주식매입 사건 등에 삼성 전략기획실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확인됐고, 삼성 전·현직 임원들이 보유했거나 보유 중인 삼성생명·삼성전자 주식 등도 대부분 차명주식으로 밝혀졌다. 삼성 쪽은 “이병철 선대 회장한테서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 돈”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특검도 삼성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세인의 눈과 귀는 이제 형사처벌 수위에 쏠리고 있다. 특검 안팎의 말을 종합할 때, 현재 시점에서 이 회장과 이학수 삼성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 부회장,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은 기소되고,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불기소 처분될 공산이 커 보인다. 남은 건 전격적인 구속 기소냐, 불구속 기소냐 여부다. 이를 엿볼 만한 몇 가지 정황을 따져보자. 우선 특검은 삼성SDS BW 헐값 발행 사건도 처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사건은 그동안 검찰이 6차례나 불기소 처분했던 사건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검은 삼성 전략기획실이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뿐 아니라 삼성SDS BW 헐값 발행 사건에도 깊이 개입했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이 회장이 삼성에버랜드 CB와 삼성SDS BW 발행 과정 등을 알고 있었다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죄(계열회사 재산에 손실을 끼친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 비록 전체적인 모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도, 또 직접 지시하거나 실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해도 ‘보고받아 알고 있었다면’ 공모한 것으로 간주해 배임 혐의로 기소할 수 있다. 배임의 경우 계열사에 끼친 손실의 규모가 처벌 수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수조원대 조세포탈 추가 검토 중 통상적으로 배임은 회사의 이사회 구성원(등기임원)이었느냐 여부가 관건이다.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의 경우 각각 10여 개 삼성 계열사들이 채권 인수를 포기(실권)하고 이를 이재용 전무한테 헐값에 몰아줬는데, 이 회장이 당시 계열사마다 등기임원으로 등재돼 있었던 건 아니다. 이 회장은 현재 삼성전자 등기임원으로만 올라 있는데, 2005년까지만 해도 삼성SDI·삼성전기·삼성물산·제일모직·호텔신라 등 몇 개 계열사의 등기임원이었다. 삼성전자를 뺀 다른 계열사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건 이재용 전무가 언제든지 등기임원 자리에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으로 분석된다. 어쨌든 사건이 벌어진 1996년과 1999년 당시 이 회장은, 이재용 전무한테 채권을 헐값에 넘겨 막대한 손실을 본 2∼3개 계열사의 등기임원으로 있었다. 또 김영희 경제개혁연대 변호사는 “법리상 배임행위의 주체(예컨대 등기임원)뿐 아니라 공범에게도 배임죄가 성립된다. 상법 401조는 그룹 회장 등 업무를 집행·지시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등기임원이 아니라 해도 ‘사실상의 이사’로서 배임행위의 직접적인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이 회장이 계열사에 끼친 손실액은 수백∼수천억원대에 이르게 되고, 배임 혐의도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차명계좌·주식에 대해서는 조세포탈죄가 적용될 수 있다. 삼성증권에 개설된 1300개 계좌(대부분 삼성전자 주식으로, 주식규모 약 2조∼3조원대)의 경우 이름을 빌려준 임원에게 증여세(약 1조원대)가 부과되며, 삼성전자 차명주식 거래에 대한 연간 20%의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가 성립된다. 포탈 세액이 10억원 이상이면 일반 형법보다 형량이 더 높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죄로 기소될 수 있다. 특검은 수조원대 재산을 차명소유해 증여·양도세를 탈루한 혐의(조세포탈)를 추가할 것인지 검토 중이다. 이렇듯 배임에 따른 회사 손실액과 탈세 규모를 종합해볼 때 이 회장은 과연 전격 ‘구속’ 기소될까? 물론 가능성은 낮다. 특검이 이 회장 ‘기소’ 자체를 이번 수사의 꽃으로 자부하는 듯한 발언을 자꾸 흘리고 있고, 이 회장도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 나를 포함한 경영진 쇄신을 생각해보겠다”며 ‘불구속’ 기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특검을 계기로 이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을 비롯한 전략기획실 임원들이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비자금·로비를 둘러싼 온갖 민·형사상 책임을 지고, 이재용 전무는 모든 짐을 털어버린 상태에서 이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게 되는 것일까? 이재용, 안 다쳤지만 ‘경영권 승계’ 남아 이재용 전무는 e삼성 사건과 삼성에버랜드 CB 사건의 피고발인이다. 특검은 이미 e삼성 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삼성에버랜드 사건 당시에 이 전무는 나이 어린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공모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삼성SDS 사건도 그룹 전략기획실이 주도한 점을 확인했을 뿐 이 전무가 개입했다는 증거는 사실상 밝혀내기 어렵다. 특히 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뤄지더라도 이 전무가 CB를 헐값에 인수한 사실 자체가 무효화되는 건 아니다. 이 전무는 이번에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을 게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 회장으로부터 이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 혹은 상속이 완전히 마무리된 건 아니다. 차명계좌·주식 등을 비롯해 이 회장이 갖고 있는 수십조원대의 재산을 이 전무한테 넘겨주는 일이 남아 있다. 지난 4월7일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느닷없는 ‘상속세 폐지’ 발언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손 회장은 “이제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며 “상속세는 미실현 이익에 대해 과세하기 때문에 기업을 승계할 경우 상속받은 주식이나 부동산을 팔아야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경영권이 위협받게 된다”고 말했다. 상속 재산을 나중에 파는 시점에서 자본이득세(양도소득세)를 물리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재계에서 ‘드러내놓고’ 상속세 폐지를 언급한 건 전례없는 일이다. 기획재정부도 “상속·증여세 제도에 대한 합리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즉각 화답했다. 재계가 겉으로야 상속세 폐지를 요구했지만, 사실상 목적은 상속세율(10∼50%·과표 30억원 초과분은 최고 50% 적용)의 대폭 인하에 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이 발언을 상속세 문제로만 다뤘지만 사실은 ‘증여세’와 밀접하게 연동돼 있고, 더 깊이 들어가면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도 맥락이 닿아 있다. 왜 그럴까? 물론 상속세는 피상속인의 사망을 원인으로 발생한다. 생전 상속은 불가능하다. 이럴 경우에는 ‘증여’가 된다.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이재용 전무한테 수십조원대의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증여세 문제를 낳는다. 현재 상속세법과 증여세법은 단일통합법(‘상속세 및 증여세법’)이다. 이 법 제56조(증여세 세율)는 ‘증여세는 과세표준에 제26조에 규정된 세율(상속세 세율)을 적용하여 계산한 금액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현행 법을 그대로 따를 경우 상속세율을 인하하면 자동적으로 증여세율도 인하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쪽은 “현행 법으로 보면 상속세율을 조정하면 자동적으로 증여세율도 조정된다. 하지만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제56조를 손질하면 증여세율은 현행대로 묶어두고 상속세율만 조정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했기 때문에 상속세율과 증여세율이 동시에 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재계의 상속세 폐지 주장 저의는? 이 회장의 재산을 보면, 현재 보유 중인 삼성생명 주식 324만 주(16.2%)를 실명으로 전환하면 물어야 할 증여세만 1조2천억원(주당 70만원 간주)에 이른다. 특히 실명 전환하면 이 회장이 삼성생명 최대주주가 되는데, 최대주주가 주식을 상속·증여할 때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최대 30%까지 할증 과세된다. 삼성이 계열사 돈을 이용해 불법으로 경영권을 물려주는 행태가 더는 통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이 회장이 세금 폭탄마저 맞게 되면 이재용 전무한테 넘겨줄 재산이 크게 줄어들고 이씨의 그룹 장악 지분율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최근의 상속세 발언 밑자리에는 슬그머니 증여세율까지 대폭 낮추겠다는 재계의 계산이 숨어 있고, 결국 궁지에 몰린 이 회장 부자의 경영권 승계를 합법적으로 돕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는 건 아닐까? <한겨레21>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삼성특검 수사와 공소시효 재깍대는 시계 앞에 멈춘 ‘수사의지’ 2000년 6월 법학자 43명이 삼성그룹 경영진 3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1996년 10월30일 삼성에버랜드가 전환사채(CB) 125만여 주를 주당 7700원의 헐값으로 이건희 회장의 자녀에게 배정했다는 이유에서다. 총수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검찰은 2003년 12월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두고 기소했다.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은 삼성특검이 수사 중인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의 핵심 사안이다. 당시 법학교수들이 고발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배임죄의 공소시효는 형법상 7년이기 때문이다.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삼성특검 수사도 공소시효와 싸워야 한다. 조세포탈죄: 공소시효 10년. 이 회장은 전·현직 임원 11명 이름으로 삼성생명 주식 328만여 주(16.2%)를 차명으로 분산 소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주당 70만원으로 환산하면 주식 가치는 2조3천억원에 이른다. 이병철 선대 회장 지분이라면 증여 또는 상속을 한 것이어서 이 회장은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이 된다. 하지만 삼성생명 주식은 지난 1988년 유상증자했다. 당시 차명 증여가 이뤄졌다면 공소시효 기간을 넘긴 게 된다. 형사처벌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배임죄와 횡령죄: 공소시효 7년.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 5억원 이상일 경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이 적용되는데 이때는 공소시효가 10년이다. 삼성화재가 고객에게 지급하지 않은 미지급 보험금을 비자금으로 조성했다는 의혹이다. 전 삼성직원의 제보로 수사가 시작됐다. 증거자료 확보가 관건이다. 특검팀은 제보자가 비자금 조성 업무를 맡았다고 밝힌 1999~2002년 사이의 전산자료를 복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만약 비자금이 전략기획실의 지시로 만들어졌다는 물증을 특검팀이 확보한다면 이 회장은 횡령과 배임 혐의를 적용받게 된다. 행위 시점에 따라 공소시효가 끝났을 수도, 남아있을 수도 있다. 뇌물죄: 공소시효 5년. 김용철 변호사는 1997~2004년 삼성에 근무할 때 정·관계 인사에게 정기적으로 금품 로비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특검팀은 공소시효가 완료됐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일부 인사에 건넨 돈 가운데는 “형법상 단순뇌물죄를 적용해도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것도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검찰과 국세청, 금융감독당국이 제 역할을 제대로 했더라면 공소시효 논란이 일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기관들이 자신의 임무를 계속 미루다 보니 뒤늦게 수사가 이뤄지면서 공소시효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21>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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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임원 아니어도 ‘사실상의 이사’…배임혐의 기소 가능
‘경영권 승계’ 의혹속 재계 ‘드러내놓고’ 상속세 폐지 주장 이건희 삼성 회장이 4월11일 삼성 특검에서 두번째 조사를 받은 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나를 포함한 경영진과 그룹경영체제의 쇄신을 깊이 생각해 보겠다”면서 기소가 되면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생각이냐는 질문에 “생각해 보겠다”고 돌발적인 말을 던졌다. 과연 이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퇴진할 것인가?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제 폭풍 속에 들어간 것일까? ‘은둔의 제왕’ 이 회장의 이날 깜짝 발언을 계기로 이 회장과 삼성의 향후 진로를 둘러싼 논의가 분출하고 있다. 특검 수사를 계기로 삼성에 비상한 지각변동이 일고 있는 건 분명하다. 삼성을 둘러싼 모든 불확실성은 수사 결과가 발표된 뒤에야 걷힐 것이다. 잠적했던 삼성 쪽 참고인들 자진 출석 100여 일 동안 진행된 조준웅 삼성특별검사팀의 수사 결과 발표가 임박했다. 특검은 이건희 삼성 회장을 재소환하고 삼성 본사를 또 한 번 압수수색하는 등 막판 보강 조사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4월5일 첫 소환 당시 이 회장이 ‘비자금 조성 의혹 등 책임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건수에 따라… 100% 다 인정은 안 되고”라고 말한 뒤부터 모든 것이 빠르게 ‘정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잠적했던 삼성 쪽 참고인들이 자진 출석하는 등 삼성 쪽에서도 수사를 털려는 분위기다. 현명관 전 삼성그룹 비서실장도 4월10일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고 “내가 갖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 28만 주도 실제 소유주는 이건희 회장”이라며 차명주식 보유를 고백했다.
사실 100여 일간의 수사 과정에서 특검이 밝혀낸 ‘진실’ 또는 ‘사실관계’는 대부분 언론에 이미 공개됐다. 수사가 너무 오래(?) 진행된 탓인지 이제 새롭다거나 놀라울 것도 별로 없다. 1996년 12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과 1999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사건, 2001년 e삼성 주식매입 사건 등에 삼성 전략기획실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확인됐고, 삼성 전·현직 임원들이 보유했거나 보유 중인 삼성생명·삼성전자 주식 등도 대부분 차명주식으로 밝혀졌다. 삼성 쪽은 “이병철 선대 회장한테서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 돈”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특검도 삼성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세인의 눈과 귀는 이제 형사처벌 수위에 쏠리고 있다. 특검 안팎의 말을 종합할 때, 현재 시점에서 이 회장과 이학수 삼성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 부회장,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은 기소되고,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불기소 처분될 공산이 커 보인다. 남은 건 전격적인 구속 기소냐, 불구속 기소냐 여부다. 이를 엿볼 만한 몇 가지 정황을 따져보자. 우선 특검은 삼성SDS BW 헐값 발행 사건도 처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사건은 그동안 검찰이 6차례나 불기소 처분했던 사건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검은 삼성 전략기획실이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뿐 아니라 삼성SDS BW 헐값 발행 사건에도 깊이 개입했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이 회장이 삼성에버랜드 CB와 삼성SDS BW 발행 과정 등을 알고 있었다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죄(계열회사 재산에 손실을 끼친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 비록 전체적인 모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도, 또 직접 지시하거나 실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해도 ‘보고받아 알고 있었다면’ 공모한 것으로 간주해 배임 혐의로 기소할 수 있다. 배임의 경우 계열사에 끼친 손실의 규모가 처벌 수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수조원대 조세포탈 추가 검토 중 통상적으로 배임은 회사의 이사회 구성원(등기임원)이었느냐 여부가 관건이다.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의 경우 각각 10여 개 삼성 계열사들이 채권 인수를 포기(실권)하고 이를 이재용 전무한테 헐값에 몰아줬는데, 이 회장이 당시 계열사마다 등기임원으로 등재돼 있었던 건 아니다. 이 회장은 현재 삼성전자 등기임원으로만 올라 있는데, 2005년까지만 해도 삼성SDI·삼성전기·삼성물산·제일모직·호텔신라 등 몇 개 계열사의 등기임원이었다. 삼성전자를 뺀 다른 계열사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건 이재용 전무가 언제든지 등기임원 자리에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으로 분석된다. 어쨌든 사건이 벌어진 1996년과 1999년 당시 이 회장은, 이재용 전무한테 채권을 헐값에 넘겨 막대한 손실을 본 2∼3개 계열사의 등기임원으로 있었다. 또 김영희 경제개혁연대 변호사는 “법리상 배임행위의 주체(예컨대 등기임원)뿐 아니라 공범에게도 배임죄가 성립된다. 상법 401조는 그룹 회장 등 업무를 집행·지시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등기임원이 아니라 해도 ‘사실상의 이사’로서 배임행위의 직접적인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이 회장이 계열사에 끼친 손실액은 수백∼수천억원대에 이르게 되고, 배임 혐의도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차명계좌·주식에 대해서는 조세포탈죄가 적용될 수 있다. 삼성증권에 개설된 1300개 계좌(대부분 삼성전자 주식으로, 주식규모 약 2조∼3조원대)의 경우 이름을 빌려준 임원에게 증여세(약 1조원대)가 부과되며, 삼성전자 차명주식 거래에 대한 연간 20%의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가 성립된다. 포탈 세액이 10억원 이상이면 일반 형법보다 형량이 더 높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죄로 기소될 수 있다. 특검은 수조원대 재산을 차명소유해 증여·양도세를 탈루한 혐의(조세포탈)를 추가할 것인지 검토 중이다. 이렇듯 배임에 따른 회사 손실액과 탈세 규모를 종합해볼 때 이 회장은 과연 전격 ‘구속’ 기소될까? 물론 가능성은 낮다. 특검이 이 회장 ‘기소’ 자체를 이번 수사의 꽃으로 자부하는 듯한 발언을 자꾸 흘리고 있고, 이 회장도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 나를 포함한 경영진 쇄신을 생각해보겠다”며 ‘불구속’ 기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특검을 계기로 이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을 비롯한 전략기획실 임원들이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비자금·로비를 둘러싼 온갖 민·형사상 책임을 지고, 이재용 전무는 모든 짐을 털어버린 상태에서 이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게 되는 것일까? 이재용, 안 다쳤지만 ‘경영권 승계’ 남아 이재용 전무는 e삼성 사건과 삼성에버랜드 CB 사건의 피고발인이다. 특검은 이미 e삼성 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삼성에버랜드 사건 당시에 이 전무는 나이 어린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공모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삼성SDS 사건도 그룹 전략기획실이 주도한 점을 확인했을 뿐 이 전무가 개입했다는 증거는 사실상 밝혀내기 어렵다. 특히 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뤄지더라도 이 전무가 CB를 헐값에 인수한 사실 자체가 무효화되는 건 아니다. 이 전무는 이번에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을 게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 회장으로부터 이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 혹은 상속이 완전히 마무리된 건 아니다. 차명계좌·주식 등을 비롯해 이 회장이 갖고 있는 수십조원대의 재산을 이 전무한테 넘겨주는 일이 남아 있다. 지난 4월7일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느닷없는 ‘상속세 폐지’ 발언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손 회장은 “이제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며 “상속세는 미실현 이익에 대해 과세하기 때문에 기업을 승계할 경우 상속받은 주식이나 부동산을 팔아야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경영권이 위협받게 된다”고 말했다. 상속 재산을 나중에 파는 시점에서 자본이득세(양도소득세)를 물리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재계에서 ‘드러내놓고’ 상속세 폐지를 언급한 건 전례없는 일이다. 기획재정부도 “상속·증여세 제도에 대한 합리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즉각 화답했다. 재계가 겉으로야 상속세 폐지를 요구했지만, 사실상 목적은 상속세율(10∼50%·과표 30억원 초과분은 최고 50% 적용)의 대폭 인하에 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이 발언을 상속세 문제로만 다뤘지만 사실은 ‘증여세’와 밀접하게 연동돼 있고, 더 깊이 들어가면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도 맥락이 닿아 있다. 왜 그럴까? 물론 상속세는 피상속인의 사망을 원인으로 발생한다. 생전 상속은 불가능하다. 이럴 경우에는 ‘증여’가 된다.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이재용 전무한테 수십조원대의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증여세 문제를 낳는다. 현재 상속세법과 증여세법은 단일통합법(‘상속세 및 증여세법’)이다. 이 법 제56조(증여세 세율)는 ‘증여세는 과세표준에 제26조에 규정된 세율(상속세 세율)을 적용하여 계산한 금액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현행 법을 그대로 따를 경우 상속세율을 인하하면 자동적으로 증여세율도 인하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쪽은 “현행 법으로 보면 상속세율을 조정하면 자동적으로 증여세율도 조정된다. 하지만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제56조를 손질하면 증여세율은 현행대로 묶어두고 상속세율만 조정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했기 때문에 상속세율과 증여세율이 동시에 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재계의 상속세 폐지 주장 저의는? 이 회장의 재산을 보면, 현재 보유 중인 삼성생명 주식 324만 주(16.2%)를 실명으로 전환하면 물어야 할 증여세만 1조2천억원(주당 70만원 간주)에 이른다. 특히 실명 전환하면 이 회장이 삼성생명 최대주주가 되는데, 최대주주가 주식을 상속·증여할 때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 최대 30%까지 할증 과세된다. 삼성이 계열사 돈을 이용해 불법으로 경영권을 물려주는 행태가 더는 통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이 회장이 세금 폭탄마저 맞게 되면 이재용 전무한테 넘겨줄 재산이 크게 줄어들고 이씨의 그룹 장악 지분율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최근의 상속세 발언 밑자리에는 슬그머니 증여세율까지 대폭 낮추겠다는 재계의 계산이 숨어 있고, 결국 궁지에 몰린 이 회장 부자의 경영권 승계를 합법적으로 돕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는 건 아닐까? <한겨레21>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삼성특검 수사와 공소시효 재깍대는 시계 앞에 멈춘 ‘수사의지’ 2000년 6월 법학자 43명이 삼성그룹 경영진 3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1996년 10월30일 삼성에버랜드가 전환사채(CB) 125만여 주를 주당 7700원의 헐값으로 이건희 회장의 자녀에게 배정했다는 이유에서다. 총수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검찰은 2003년 12월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두고 기소했다.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은 삼성특검이 수사 중인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의 핵심 사안이다. 당시 법학교수들이 고발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배임죄의 공소시효는 형법상 7년이기 때문이다.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삼성특검 수사도 공소시효와 싸워야 한다. 조세포탈죄: 공소시효 10년. 이 회장은 전·현직 임원 11명 이름으로 삼성생명 주식 328만여 주(16.2%)를 차명으로 분산 소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주당 70만원으로 환산하면 주식 가치는 2조3천억원에 이른다. 이병철 선대 회장 지분이라면 증여 또는 상속을 한 것이어서 이 회장은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이 된다. 하지만 삼성생명 주식은 지난 1988년 유상증자했다. 당시 차명 증여가 이뤄졌다면 공소시효 기간을 넘긴 게 된다. 형사처벌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배임죄와 횡령죄: 공소시효 7년.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 5억원 이상일 경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이 적용되는데 이때는 공소시효가 10년이다. 삼성화재가 고객에게 지급하지 않은 미지급 보험금을 비자금으로 조성했다는 의혹이다. 전 삼성직원의 제보로 수사가 시작됐다. 증거자료 확보가 관건이다. 특검팀은 제보자가 비자금 조성 업무를 맡았다고 밝힌 1999~2002년 사이의 전산자료를 복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만약 비자금이 전략기획실의 지시로 만들어졌다는 물증을 특검팀이 확보한다면 이 회장은 횡령과 배임 혐의를 적용받게 된다. 행위 시점에 따라 공소시효가 끝났을 수도, 남아있을 수도 있다. 뇌물죄: 공소시효 5년. 김용철 변호사는 1997~2004년 삼성에 근무할 때 정·관계 인사에게 정기적으로 금품 로비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특검팀은 공소시효가 완료됐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일부 인사에 건넨 돈 가운데는 “형법상 단순뇌물죄를 적용해도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것도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검찰과 국세청, 금융감독당국이 제 역할을 제대로 했더라면 공소시효 논란이 일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기관들이 자신의 임무를 계속 미루다 보니 뒤늦게 수사가 이뤄지면서 공소시효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21>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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