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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폭행 피해 여고생 자살기도 사건, 경찰수사 ‘엉망’

등록 2008-04-16 17:32

서울 서부경찰서 사건 제보받고도 '늑장대처'

경찰이 상습 성폭행에 시달리다 자살을 기도한 여고생 사건에 대한 제보를 받고도 이를 미온적으로 처리하는 등 늑장대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가해자는 검거되기까지 일주일 정도 거리를 활보해 경찰이 성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을 보호하기는커녕 범죄자를 방치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16일 일산경찰서와 서울 서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서울 모 지구대 소속 P 경사는 비번인 지난달 23일 오전 11시께 서부경찰서를 찾아가 당직반인 폭력2팀에 일산에 사는 여고생 A양이 김모(33)씨로부터 수차례 성폭행을 당해 자살을 기도했다며 사건을 의뢰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A양 어머니로부터 들은 대로 P 경사는 이 자리에서 담당 형사 B 씨에게 김 씨가 A양 자매를 상대로 벌인 성범죄 행각과 자신이 8개월전부터 장물 취득 등의 범죄 정황을 잡고 쫓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P 경사는 당시 가해자인 김 씨의 범죄 사실과 주소지 등에 대해 상세하게 밝혔지만 사건을 맡기로 한 당직반은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사건을 단순 첩보로 보고 바로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서부경찰서의 미온적인 대응은 3일 뒤인 26일에도 이어졌다.


자살기도 등으로 인해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조사를 위해 피해 학생과 상담교사 등이 경찰의 요구대로 진술을 하기 위해 출석했지만 B형사는 상담청취만 진행한 채 A양 상태가 좋지 않으니 사건 내용을 소상히 정리해서 다시 방문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A 양 자매뿐 아니라 A양의 여동생 친구도 김 씨에게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고 피해 가족들은 수사가 길어질 경우 김 씨가 눈치를 챌 수 있다면서 빠른 수사를 부탁했지만 묵살됐다.

그러나 29일에 다시 상담일지 등을 지참하고 방문했을 때 B형사는 사건 처리를 더 빨리 진행할 수 있는 일산경찰서로 갈 것을 요구하면서 진술받기를 거부했다고 피해자 가족들은 주장했다.

A양 자매와 어머니, 상담 교사 등은 결국 이날 오후 일산경찰서로 와서 조사를 받았다.

조사받는 중 우려했던 대로 김 씨가 눈치를 채고 A양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욕을 하면서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올 것을 요구했고 절도 등으로 김 씨의 행방을 계속 추적해왔던 P 경사가 일산경찰에 소재지를 알려주면서 김씨는 이날 오후 9시께 검거됐다.

서부경찰서의 미온적인 사건 처리로 피해자들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고 추가 범행 우려도 있는 김 씨는 일주일이나 거리를 활보한 것이다.

B 형사는 "피해 당사자인 학생이 빠른 사건 처리를 원했고 이를 위해 일산경찰서에서 조사받기를 원해서 일산경찰서 담당자를 소개시켜 줬다"고 주장했다.

P 경사는 "상식적으로 한 차례 상담을 진행했던 경찰이 계속 사건을 맡는 게 새로 사건을 맡는 경찰에서 진행하는 것보다 더 빨리 처리하지 않겠느냐"면서 "강력범죄인데도 바로 신병확보를 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A양 어머니는 "당시 B형사가 진술을 받지 않겠다고 해 어쩔 수 없이 일산경찰서로 간 것이며 아이들이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강력사건이나 성범죄는 관할지역 개념이 없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 "담당 형사가 사안을 잘못 판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양=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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