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세욱 열사 1주기 추모제=한-미자유무역협(FTA) 체결을 반대하며 분신한 고 허세욱씨의 1주기인 15일,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이 헌화하고 있다. 남양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목숨을 거는 것과 목숨을 버리는 것의 차이
어제는 지난 해 4월 1일 한미 FTA 협정 채결을 반대하며 분신했다 끝내 사망한 허세욱씨의 1주기였다. 1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렀지만 필자는 아직도 '허세욱 열사'라고 부르는 호칭에 대해 울컥 반감을 느낀다.
이것은 단순한 FTA에 대한 찬반 때문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특히 FTA에 반대하는 진보 인사들이 허세욱씨 죽음의 가치가 과연 '열사'라고 칭송 받을 만큼 가치있는 행동이었지를 제대로 따져 보지도 않은 채, 그의 죽음을 미화하기에 급급했던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오늘날의 자유는 근 현대사에 등장한 열사들의 희생에 힘 입은 바 크다.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 고종의 밀사로 헤이그에 파견되었다가 사망한 이준열사를 비롯하여, 3.1 독립만세운동의 유관순열사. 자유당의 부정선거에 항거하다 숨진 김주열열사. 유신독재에 항거하다 정권에 의해 살해 당한 4.9 통일열사들. 박종철. 이한열 일일히 열거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열사들이 일제 혹은 타락한 권력과 맞서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숭고하게 희생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있는 것이다.
FTA에 반대하기 위해 천하 보다 귀한 생명을 아낌없이 바친 허세욱씨의 죽음은 어떤 가치를 지니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그가 사망하던 1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그를 전태일열사와 비교하는 모습들은 어딘지 억지스럽다. 얼핏 보면 그의 분신 사망은 전태일열사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빈농의 자녀로 태어나 꽃배달부 막걸리배달부를 거쳐 택시운전사로 살아온 고단한 삶은 국민학교 졸업 학력으로 청계천 피복 공장에 직공으로 일한 전태일열사와 비견된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온몸을 불사르며 자결한 전태일과 "FTA에 반대한다"며 자신을 불사른 허세욱의 모습도 비슷하다. 모두가 안타깝고 비장한 모습의 죽음이다. 그런데 유독 허세욱씨를 '열사'라고 칭하는 것에 필자가 반감을 느끼는 것은 생명을 너무 값없이 던졌다는 이유 때문이다.
혹자는 "FTA에 반대하는 것이 그렇게 가치 없는 일인가?"고 반박할 것이다. 물론 한미 FTA에 대한 반대는 충분히 가치 있고 이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이 "값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생명은 그렇게 쉽게 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분신인데 전태일과 허세욱이 왜 다른가?"란 질문에도 분명한 답이 있다.
70년 당시 피복노조를 중심으로 전개된 노동운동은 정권에 의해 혹독한 탄압을 당하고 있었다. 전태일은 당시 노동청에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분석하여 '근로개선을 위한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그 날의 분신이 있기까지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난 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분신자결이었다. 1970년 11월 3일 청계피복노조결성을 위한 피켓시위가 계획되었지만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되자 온 몸을 불사르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절규했던 것이다.
그의 분신자결은 작게는 청계피복노조 결성이란 성과를 이루었고, 크게는 한국 노동운동의 불씨를 지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비해 허세욱은 어떠한가?
작년 이맘때 쯤 한미 FTA에 대한 찬반은 이미 이 땅의 가장 큰 이슈가 되어 있었다. 전태일이 아무도 관심가져 주지 않는 청계로에서 외롭게 투쟁하다 산화했다면, FTA에 반대 투쟁은 수 많은 인사들과 학자들에 의해 반대 논리가 체계적으로 전개되고 있었고 진보 매체들은 이를 충실하게 보도하고 있었으며 기성 언론의 조명도 충분히 받고 있었다. 그가 몸을 불살라야할만큼 절박한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2005년 11월 쌀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시위 도중 사망한 농민 전용철의 죽음과도 비교된다. 전용철씨는 암담한 농촌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다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였다.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죽음이었고, 이때 나는 그를 '전용철열사'라고 칭하는 것에 조금도 반감을 가지지 않았다.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죽음을 무기로 싸우는 것'은 결과가 같은 죽음으로 귀결된다고 할 지라도 그 의미에 있어서 하늘과 땅 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의 희생은 자신의 목숨 만큼이나 소중한 가치와 주변의 다른 생명들을 위해 기꺼이 버리는 숭고한 희생이지만, '죽음을 무기'로 싸우는 것은 생명에 대한 경시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은 어떤 경우에도 가치 없이 버려져서는 안될 일이고, 사회가 이를 미화하는 일은 더 더욱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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