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해고노동자들 이행 촉구…회사쪽 “검토중”
“㈜풍산은 20년 전 해고한 노동자 29명을 원직 복직시켜라!”
21일 오전 11시 ㈜풍산 본사가 있는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 앞, 머리가 희끗해진 40~50대 노동자들이 “원직 복직”이라고 써넣은 조끼를 20년 만에 꺼내입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총포탄과 폭약을 생산하던 풍산금속공업㈜(현재 ㈜풍산)의 경북 안강공장과 부산 동래공장에서 1989~91년 해고된 노동자들이다.
‘군부독재’ 시절인 1988년 7월, 안강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탄약 제조작업 중 폭발 사고로 숨졌다. 사고사를 알리는 유인물을 사내에 붙이던 노동자 4명은 회사 명예훼손과 군사기밀 누설 등을 이유로 해고당했다. 이를 계기로 풍산금속에 민주노조가 건설되고 노동자 수백명이 본사 항의농성을 벌이는 등 ‘군수공장’에도 민주화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듬해 1월2일 새벽, 경찰 4500여명이 안강공장에 전격 투입됐다. 신정 연휴 뒤 정상 근무 복귀를 약속하고 여유롭게 노조 사무실을 지키던 노동자 11명을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노조 활동가들은 모두 구속·해고됐고, 병역 특례가 취소된 이들은 징집됐다.
권영국(45) 변호사도 최초 해고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꼬박 3년6개월 동안 징역을 산 뒤, 지금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각종 노동사건 전문 변호사로서 현장을 누비고 있다. 권 변호사는 “민주화운동을 억압했던 회사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결자해지’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0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가 이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고 지난달 회사에 복직을 권고했지만 회사는 ‘묵묵부답’이라는 것이다. 권 변호사는 “복직 권고 뒤로, 누군가 본사 건물 앞에 날마다 집회신고서를 내고 있다”며 “회사가 위장 인물에게 집회 신고를 하게 해, 복직 요구 1인 시위 등을 차단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풍산해고자협의회 노동자 29명은 회사에 복직권고 이행을 위한 협의를 요구했으나, 회사 쪽은 “위원회가 회신을 요구한 6월30일까지 검토해 보겠다”고만 답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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