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가 21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 앞에서 ‘촌지와 불법 찬조금 허용하는 학교 자율화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교과부 ‘촌지’지침 이젠 필요없다는데…
“2학년 20만원, 3학년 40만원씩” 다 걷히면 1억4천만원
학급별 수백만원씩 할당…학부모단체 11개교 감사청구
“2학년 20만원, 3학년 40만원씩” 다 걷히면 1억4천만원
학급별 수백만원씩 할당…학부모단체 11개교 감사청구
경기 ㄷ외국어고 학부모 ㅂ아무개씨는 지난달 말, 반 학부모 대표에게서 20만원을 내라는 전화를 받았다. 학교에 필요한 물품 구입과 아이들 간식비 명목 등으로 2학년은 20만원, 3학년은 40만원씩을 걷기로 학부모 총회에서 결정됐다는 것이었다. ㅂ씨는 “아이를 위해 쓰인다고 하니 돈을 내긴 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아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또다른 학부모 ㄱ아무개씨는 “아무리 총회에서 결정됐다고 하지만, 달랑 문자로 40만원을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적어도 어디에 쓸 것인지 정확한 사용내역은 알아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학교 2·3학년 전체 학부모들이 모두 돈을 낸다면 1억4천만원의 찬조금이 걷히는 셈이다.
경기 ㅈ초등학교 학부모 ㅇ아무개씨도 얼마 전 ‘체육진흥회비 10만원을 4월10일까지 아동 이름으로 부탁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계좌번호가 찍힌 휴대전화 메시지를 받았다. ㅇ씨는 “아이 때문에 안 낼 수가 없었다”며 “왜 체육진흥회비를 학부모들이 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의 하나로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지침을 폐지한 가운데 일선 학교의 불법 찬조금 모금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는 21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 ㄷ외국어고 등 11개 학교에서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억대에 이르는 불법 찬조금을 걷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교과부에 감사를 청구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상 학교 학부모회 등이 자체적으로 모금을 하거나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없이 학교시설 개선 비용을 걷는 것은 불법이다.
참교육학부모회의 감사청구 자료를 보면, 경기 ㄱ고등학교는 학급별로 230만원을 할당해 돈을 걷고 있다. 1∼3학년을 모두 합하면 7천만원에 이르는 액수다. 서울 ㅇ고등학교도 학급당 200만원이 배정돼 대의원을 맡은 학부모 중심으로 돈을 냈고, 서울 ㅁ초등학교도 임원으로 뽑힌 학부모들이 10만∼15만원씩을 냈다.
참교육학부모회 윤숙자 회장은 “학교시설 개선, 교사 선물 등에 쓰이는 불법 찬조금은 사실상 ‘집단 촌지’나 마찬가지”라며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어린이신문 단체구독 금지 등의 지침이 무분별하게 폐지되면서 불법 찬조금 모금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말했다.
시·도교육청의 솜방망이 징계도 문제로 지적됐다. 참교육학부모회 전은자 자치위원장은 “경기 송화초등학교의 경우 불법 찬조금을 걷어 보건실 리모델링, 육상대회 때 교사 점심식사 대접 등에 쓴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교장은 경징계, 교감·담당 교사에게는 주의·경고 조처만 내렸다”며 “이런 가벼운 처벌이 불법 행위를 조장하는 만큼, 오늘 재감사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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