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입주가 시작된 경기 광명시 철산동 ㄷ 아파트 안에 들어선 영어마을 ‘코엔비아’ 앞을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 이곳은 주민공동시설로 1층은 어린이집, 2층은 경로당으로 허가가 났다. 하지만 입주 뒤 1~2층 모두 영어마을로 조성됐다. 교습행위가 이뤄지는 영어마을은 학원이므로 주민 공동이용 시설에는 들어설 수 없어, 현재 코엔비아는 고발을 당한 상태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분양업체, ‘영어마을·국외연수 기회’ 홍보
단기간 반짝 운영…업체 손떼면 문닫기 바빠
강좌 질 학원보다 못해…“차라리 학원 이용”
대부분 불법, 고발·폐쇄되면 주민에 손해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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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질 학원보다 못해…“차라리 학원 이용”
대부분 불법, 고발·폐쇄되면 주민에 손해배상
강원도 강릉시 입암동 이안아파트. 이곳은 2년 전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파트 내 영어마을’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꽤 유명세를 탔던 곳이다. 지난 20일 이 아파트를 찾아갔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김병선 회장은 영어마을의 운영실태를 묻는 기자에게 대뜸 “이달 말을 끝으로 영어마을은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아파트를 분양한 시행사와 맺은 2년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앞으로는 주민들이 직접 비용을 부담하게 되자 주민들이 포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이 아파트 109동에 사는 주부 정아무개(41)씨는 “한때는 서울에서 강릉으로 발령받아 오는 사람들이 영어마을을 보고 이곳에 입주하려고 몰려오기도 했지만 영어마을이 일반 학원보다 프로그램이나 시간대가 다양하지 않자 점차 인기가 식었다. 더구나 유료화된다면 바로 옆 상가에 있는 진짜 학원을 다니지 구태여 영어마을을 이용할 필요가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곳 ‘영어마을’은 이름만 그럴듯할 뿐, 실제는 아파트 110동 101호에 있었다. 영어마을이라기보다는 가정집에 설치된 영어교습소라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전국의 아파트단지가 영어 광풍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영어마을은 애초 경기도가 2004년 조성한 ‘경기영어마을’이 원조 격이다. 법인 형태로 경기도 안산 대부도 등 아파트가 아닌 별도의 터에 합숙소 등을 마련해 일정 기간 영어로만 생활하도록 하는 공간을 뜻했다. 하지만 숱한 지자체가 경기도를 따라 하며 영어마을 붐에 불을 지폈다. 드디어는 일반 학원마저 ‘영어마을’이라는 용어를 붙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2005년부터는 ‘아파트 내 영어마을’도 등장했다. 영어마을이라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정립돼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것들은 대부분 ‘며칠간이라도 영어만으로 생활하는 공간’의 뜻을 유지했다. 하지만 학원과 아파트에서 운영하는 영어마을은 기껏해야 하루 한두 시간 영어를 배우는 것에 불과하다.
2년 전 처음 선보인 아파트 내 영어마을은 한동안 뜸했으나, 지난해 말 아파트 미분양이 많아지면서 다시 늘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영어 몰입교육을 언급하는 등 영어 열풍을 부추긴 것이 기폭제가 됐다.
경기 일산 덕이지구 신동아파밀리에 관계자는 “새 정부의 영어바람을 기회로 삼아 아파트 단지 내에 영어마을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입주 뒤 5년간 해마다 10명씩 입주민 자녀를 뽑아 방학 기간에 국외 단기연수 기회도 주겠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당수 영어마을은 업체가 비용을 대는 기간에만 반짝 운영되다 사라지는 ‘분양 미끼 상품’의 성격이 강하다.
<한겨레>의 취재 결과, 합법적으로 들어설 수 있는 아파트 상가에 영어마을이 설치된 아파트 단지는 한 곳뿐이었다.(표 참조) 한마디로 대부분이 ‘불법 신분’인 것이다. 현행 학원법에 따르면 영어마을은 학원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교육당국에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등록 조건을 만족하려면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상가가 아니면 안 된다. 아파트 안의 영어마을은 탄생부터 불법인 셈이다.
이 때문에 건설업체도 매우 난감한 처지에 몰리고 있다. 계약 조건으로 내건 것이어서 고발이나 폐쇄 조처가 되면 주민들로부터 계약 해지나 손해배상 요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획 수정도 어렵다. 수익을 남겨야 하는 상가에 들어서면 건설업체도 손해지만, 추후 입주민들이 자체 부담할 때 수강료도 비싸진다. 상가로 옮긴다고 해도 설계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다시 사업계획 승인과 분양승인을 받아야 한다.
아파트 안 영어마을의 효용성을 둘러싼 논란도 일고 있다. 최근 아파트 내 영어마을 운영 문제로 관할 교육청으로부터 고발을 당한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ㄷ 아파트의 한 입주민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교육비 절감, 서민 생활비 절감, 청소년들의 글로벌 인재 육성’ 목표에 앞장선 아파트가 칭찬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고소를 당했다”는 글을 광명교육청 홈페이지(kenkm.go.kr) 전자민원창구에 올렸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도 “가격도 무료거나 싸고, 단지 안이어서 애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다”며 “교육의 혜택에서 소외된 지역에서 비영리적으로 하는데 이를 막는 현행법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윤숙자 회장은 “업체들이 영구적으로 영어마을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분양만 하면 떠나버리는 등 교육보다는 분양률 올리기와 아파트값 상승에만 더 신경 쓰는 것 아니냐”며 “영어마을을 양성화하자는 얘기는 영어 사교육 열풍만 더욱 조장하게 될 것”이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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