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진화(46·사진)
송진화씨 개인전 내달까지
“버려지는 것을 매만져 생명을 부여하는 게 재밌어요.” 옛 아파트 관리실을 개조한 조각가 송진화(46·사진)씨의 작업실. 기둥나무·판재·각목 등 원재료와 바이스·전기톱·그라인더·망치·조각칼 등 조각도구와 수북한 톱밥 속에 작품들이 숨어 있다.
술 취한 여인의 받침대가 된 깨진 보드카 병, 게으른 남성으로 변한 등나무 가지, 여인이 얼어 죽은 연못이 된 나무토막, 뱀으로 변신한 죽은 분재 등. 그의 작품들은 쓰레기와 한끗 차이지만 본래 무엇이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작가의 손끝에서 외양을 부여받은 나무토막은 주로 여인상이다. 가슴 한가득 못 박힌, 칼을 문 채 도끼눈을 한, 강아지 품에 안겨 눈물 콧물 흘리는, 춤바람이 난…. 작가는 ‘최소한만’ 손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휘어진 나무는 허리를 구부리거나 젠체 가슴을 내민 여인이 되고, 옹이박이 나무는 화상 입은 여인의 얼굴로 바뀐다. “나무를 보면 나무가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생각해요.” 나뭇조각들이 작가한테 여성의 한을 얘기하는 셈이다. 하지만 결국 감정이입 아니겠는가.
미대 졸업 직후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입시화실을 열어 13년 동안 먹고사느라 정신없었다. 그러다 2000년에 갑자기 회의에 빠졌다. “낼모레가 마흔인데 내가 왜 이렇게 살지?” 작품 활동은 이러한 고민과 함께 시작됐다. 두 차례 전시를 했지만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다.
2007년 설총식씨와의 2인전 ‘그여자 그남자의 사정’(잔다리 갤러리)에서 40대 여인의 한을 풀어낸 뒤 비로소 작가로 자리 잡았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해 ‘신선한 작가’로 좋은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결혼이 불행했느냐”는 물음에 “작품과 크게 상관없다”고 말한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자르고 깎고 다듬는 단순작업이 행복하다”며 웃었다.
화랑행에 앞서 작중 여인들은 부지런히 연습을 한다. 평균대 위에서 위태위태 균형을 잡거나, 밑 빠진 두레박에 앉아 노를 젓거나. 작가의 현실이자 한국 여인의 현실 아닌가. 개인전은 UNC갤러리(02-733-2798)에서 5월14일까지 열린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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