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 3마리가 덮친 서울 구의동 어린이대공원 앞 한 식당에는 21일 취재진과 구경꾼들로 북적거렸다. 미국 〈CNN〉과 일본의 아사히 TV, 니혼 TV, 후지 TV, 〈TBS〉〈NTV〉등이 취재를 나왔다. 식당 주인이 일본 〈TBS〉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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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동물원 탈출한 ‘겁많은 코끼리’를 맞은 주민들의 증언
“황당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런데 너무 웃겼어요. 껄껄껄~” “코끼리는 동물원에서 보는 것이 재미있지 집안에서 보니 무섭더라고…” “아이들 다칠까봐 얼마나 가슴이 두근 두근 했는데요.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요” “사장님 탤런트 되셨데요. 어제 텔레비젼에서 봤어요. 앞으로 코끼리 식당으로 바꾸면 장사 잘 되겠네. 허허허” “우리 집 풀냄새가 코끼리를 유혹했나 봐요.”
지난 21일, 6마리의 코끼리가 공원을 탈출해 대소동을 벌인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주변은 아직도 코끼리를 화제로 한 이야기 꽃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전날 공원에서 뛰쳐나온 코끼리가 식당을 ‘박살’내고 가정집에 들어가 정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한 주민은 달려드는 코끼리를 피하려다 벽에 머리를 찧어 둿머리가 찢어지고 갈비뼈가 골절되기도 했다. 언론은 “코끼리 동물원 탈출 ‘도심 난동’”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코끼리 6마리가 ‘탈출극’을 벌인 현장을 이튿날인 21일 찾았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뜻밖의 손님 코끼리들의 방문에 아직도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주민들은 “황당하지만 재미있는 소동”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소동을 벌인 코끼리들은 어린이대공원쪽과 1년 계약을 맺고 ‘코끼리 쇼’를 준비하고 있던 코끼리월드 소속이었다. 코끼리월드가 밝히는 사건의 전말이다. 코끼리는 총 9마리였고 이날 소동에 가담한 코끼리들은 모두 6마리였다. 이날 소동을 벌인 코끼리 중 2마리는 2003년 10월 인천 송도유원지 공연장에서도 한 차례 탈출한 ‘전과’가 있다. 이들은 이날 오후 3시께 조련사들과 함께 답답한 우리를 벗어나 공원 분수대 근처로 ‘산책 겸 마을’을 나갔다. 라오스와 태국인으로 구성된 조련사들은 자기들 나라에선 코끼리가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전에도 ‘마을’을 간 적이 있어 별 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둘기떼는 코끼리에 놀라고, 놀란 코끼리떼는 뛰쳐나가고

20일 오후 어린이대공원을 탈출한 코끼리 3마리가 500여m 떨어진 한 식당에 들어가 식탁을 뒤엎고 있다. (연합뉴스) 발단은 비둘기떼였다. 덩치 큰 코끼리들이 공원 정문 근처까지 진출해 어슬렁거리자 비둘기떼가 놀랐다. 비둘기떼가 갑자기 하늘로 뛰쳐 올랐고, 비둘기떼에 놀란 코끼리 한 마리가 정문 쪽으로 도망가버린 것이다. 이에 나머지 5마리도 덩달아 뒤를 따라 공원 문을 박차고 나갔다. 경찰과 소방차까지 출동한 코끼리 잡기 대소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밖으로 뒤쳐나온 코끼리 6마리 가운데 3마리는 공원 정문에서 500m 떨어진 수제비집을 덮쳤고 나머지 한마리는 1.5km 정도를 활보하며 구의동 가정집 정원에 침입했다. 정경영 코끼리월드 이사는 “소동을 피운 코끼리들은 어린이와 어울려 춤을 출 정도로 사람을 잘 따르고 훈련된 코끼리들로, 절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며 “코끼리가 겁이 많아 갑자기 큰 소리가 나거나 놀라면 숨으려는 습성이 있고 단체행동 성향이 있어 한마리가 뛰쳐나가니 다같이 따라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이사는 “코끼리는 무서우면 숨으려는 습성이 있어 차량의 경적소리나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에 놀라 집안과 식당으로 침입했을 것”이라며 “잘 관리하지 못해 주민들에게 재산 피해를 주고 걱정을 끼쳐 죄송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코끼리가 박살낸 항아리 수제비집 “떴어요”
CNN 이어 일본 아사히TV 등 외신들 취재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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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라도 있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이만하기 다행이죠.” 코끼리 3마리가 덮친 식당 앞. 식당 안은 전날의 소동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었다. 현관앞 문을 지탱하는 철기둥은 S자로 휘어 있었고 방안에는 코끼리가 짓밟은 식탁이 널부러져 있었다. 벽에는 코끼리가 찍어 눌러 패인 흔적이 선명했다. 식당 주인 금택훈(45)씨는 “다행히 코끼리들이 덮치기 5분 전에 마지막 손님이 나갔고, 주방에서 일하는 아줌마도 신속히 몸을 피해 인명피해는 면했다”며 “손님들이 있었더라면 대형사고가 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식당 앞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박의승(60)씨는 “무섭고도 황당한 사건”이라며 깔깔거렸다. “내가 귀신도 안 무서워하는 월남 참전용사 아니냐. 그까이것들 한손으로 확 때려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3마리가 달겨드니 무섭더라고. 우리 철물점으로 들어 왔으면 완전히 박살났을거야. 문 닫고 꼼짝않고 있었지. 집사람한테 이야기 했더니 기도를 열심히 해서 그렇다고 하더라고. 깔깔깔~” 식당 앞에는 오전부터 취재진과 구경꾼들로 북적거렸다. 전날 한국의 주요 신문 방송은 물론 미국 〈CNN〉도 다녀갔다. 이날도 일본의 아사히 TV, 니혼 TV, 후지 TV, 〈TBS〉〈NTV〉등이 식당과 금씨를 취재해갔다. 일본 〈NTV〉취재진은 “일본은 코끼리 쇼를 비롯해 각종 동물 쇼가 성행하고 있다”며 “유사한 사례가 일본에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길을 가던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어머, 여기가 그 집인가 봐”라며 깔깔거렸고 일부는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카메라를 연신 눌러댔다. 집 주인인 금씨도 이런 관심이 싫지 않은 눈치다. “난생 처음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았어요. 이것도 엄연한 가택침해, 난동죄니까 형사사건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사람이 아니고 코끼리가 그렇게 했으니 뭐라 할 말이 없네요. 회사쪽과 보험사가 보상을 해준다고 했으니, 그것만 잘 되면 오히려 장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얼마나 홍보가 많이 됐는데요. 깔깔깔~” 주변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사장님 탤런트 되셨데요. 어제 텔레비젼에서 봤어요. 전세계적으로 홍보가 됐으니 코끼리 식당으로 바꾸면 부자 되겠네. 하하하~” “우리 집 풀냄새가 코끼리를 유혹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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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과 내가 워낙 들꽃과 들풀을 좋아해요. 10년전부터 마당에 부지런히 심었죠. 코끼리가 우리 집 풀냄새을 맡고 들어왔나봐요.” 코끼리가 한바탕 휩쓸고간 서수원(67)씨 집 마당은 아직 채 수습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10평 남짓한 집 마당에는 서씨 가족이 정성스럽게 심은 들꽃과 들풀들이 울긋불긋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대문 앞에 정원수와 담벼락에는 코끼리들의 흔적이 뚜렷했다. 뒷마당 장독대도 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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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소동은 공원 주변 주민들과 국민들에게 황당하지만 재미있는 사건으로 남을 듯하다. 그러나 코끼리를 공원 밖으로 뛰쳐나가게 한 것에 대해 공원과 회사쪽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회사 쪽은 코끼리들이 산책을 나갈 때 한국 말을 못하는 라오스와 태국인 조련사들만 내보내고 회사 직원들이 한명도 따라나가지 않았고 이로 인해 초기 대응이 늦어졌다고 털어놨다. 손님들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회사쪽이나 공원 관계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안일한 대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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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4시간 동안 코끼리를 도심에서 소동을 벌이게 만든 데는 경찰과 소방서쪽의 잘못된 대응도 지적되어야 한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조련사들이 가까스로 달래놓은 코끼리들은 출동한 소방차의 요란한 사이렌소리에 다시 거칠어져 가정집과 식당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평상시 사람을 잘 따르고 온순한 코끼리도 사이렌 소리나 차량 경적과 같은 시끄러운 소리에는 무서워 숨을 곳을 찾는다. 경찰이나 소방서쪽이 출동하기 전에 코끼리의 특성에 맞게 좀더 신중하게 대응했더라면 코끼리 소동은 조용하게 끝났을지 모른다. 공원 울타리 밖에서 시끌벅적 ‘기상천외의 쇼’를 펼친 여섯 아기코끼리들은 다시 공연장의 쇠문 우리에 갇혔다. 한바탕 소동으로 스타가 된 코끼리들은 진짜 ‘코끼리 쇼’를 앞두고 손님들을 맞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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