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옹호 캐나다인과 중국인들 충돌 -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이 시작된 4월 2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티벳문제를 옹호하던 캐나다인과 이를 비난하는 중국 유학생이 격렬하게 말다툼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중국을 바라보는 힌트, 콘돌리자 라이스
1989년 12월 1일에, 지중해의 작은 섬 몰타에서는 아주 역사적인 선언이 있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냉전 종식 선언', 이른바 '몰타 선언'이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조지 부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한 여성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소련에 알고 있는 것은 전부 이 사람을 통해 나온 것입니다."
그 여성에 대한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회고는 다음과 같았다.
"그는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 여성은 누굴까? 현재, 미 부시 행정부의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다. 그가 조지 부시에게 극찬을 듣고,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충격을 줬을 당시의 직책은 국가안보회의(NSC) 소련·동유럽 담당 국장이다. 미국의 대 소련 정책은 콘돌리자 라이스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애초부터, 학계에 있을 때부터 소련 문제 전문가로 명성을 날렸다.
그 당시, '몰타 선언' 이후에 소련이 어떻게 됐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듯하다. 일단, 우리가 판단해야 할 것은 '베를린 장벽' 붕괴에 이은 독일의 통일이다. 소련 공산당이 그 당시에 두려워했던 것은, 동유럽의 공산국가들의 독립의 추구와 민주화.
예나 지금이나 닫혀진 체제는 외부에서 밀어닥치는 '햇볕'을 두려워하게 마련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소련 해체'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를 감안해보자.
불과 1년 2개월이다. 소련 문제 전문가로서의 콘돌리자 라이스가 진두지휘했던 '대 소련 정책'은 '독일 통일'로써 짚어볼 수 있다. 주저하는 동독의 헬무트 콜 총리를 움직여 '조속한 시일 내 통일'을 밀어붙여 실천한 것이 독일 통일이다.
독일 통일은 1990년 10월 3일에 이뤄졌다. 1991년 12월에는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국가연합(CIS)이 결성됐다. 냉전구도의 종식이다. 그 뒤에는 콘돌리자 라이스가 숨어 있었다.
'소련 해체'하듯이 '중국 분열' 노리다?
미국은, 중국을 향해 일종의 '분열정책'을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소련이 '이념'을 중심으로 닫혀진 체제를 지향했듯이, 중국은 '중화'라는 오랜 관념 아래 무력으로써 소수민족을 지배하고 있다.
'이념'이라는 단어를 '민족'으로 바꿔보자. 미국이 중국을 향해 구사하는 분열정책은, 실질적으로 소련을 해체시켰던 분열정책과 유사하다. 그 중심에는 누가 있을까? 물론, 콘돌리자 라이스다.
우리가 여기서 특히나 판단해야 할 것은, 독일의 위치다. 소련의 동남쪽에는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며 각각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이 위치하고 있으며, '베를린 장벽'의 존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유럽과 동유럽이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는 곳이다.
독일의 통일로써, 미국은 지정학적으로도 소련에 대한 '포위 장치'를 만들어놓은 셈이라고 봐도 된다. 그러면서 격화된 동유럽 공산국가의 민주화 열풍과 독립 추구, 앞서 이야기했듯이 '소련 해체'까지 걸린 시간은 1년 2개월이다.
미국의 대 중국 정책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쉽다. 조지 W.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첫 대외전쟁을 벌인 곳은 바로 아프가니스탄이다. 소련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동남쪽에는 한국과 일본이 자리잡고 있으며, 소련에는 통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카드 타이완도 존재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중국의 서쪽을 직접적으로 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도와 베트남과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남쪽에도 포위망을 만들려 하고 있으며, '친중 군부 정권'의 버마(미얀마)는 그 인권 탄압 문제와 더불어 미국의 '불량국가 등재'로 인해 정신없이 터지고 있는 상황이다. 버마의 정국이 '친중'에서 다른 분위기로 나아갈 수 있다면, 이 역시 미국의 중국을 향한 또다른 포위망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으로부터 또 한번 두들겨맞은 나라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라크다. 아프가니스탄은 서쪽으로 이란을, 동쪽으로는 중국을 두고 있다.
이라크는 바로 그 이란의 서쪽에 위치한 국가. 이란도 '포위'돼 있다. 연결선을 차단함으로써, 이란과 중국은 서로 '통할 수 있는' 길을 잃어버렸다. 중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표현을 한다면, "실크로드가 끊긴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제부터는, 소련이 '해체'되기 전에 동유럽에서 민주화 열풍과 독립 추구 열풍이 불어닥쳤다는 것을 동시에 판단하는 것이 좋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오랜 독립 투쟁, 그리고 우리가 서울에서 막무가내로 굴었던 일부 중국인들의 어긋난 나라 사랑으로 인해 피부에 와닿게 된 달라이 라마의 티벳 독립 투쟁, 거기에 하나 더 거론해야 하는 '대만 독립' 논란.
여기에는 중국이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이면서,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빈부 격차'의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중국이 강경을 넘어선 '해도 너무한' 대처에 나선 이유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소련과 다르다
이렇듯, 여기저기서 중국의 분열을 기도하는 움직임들이 다양하게 벌어지고 있고, 티벳 독립 투쟁에 대한 세계적인 시선이 모아지는만큼 '올림픽'을 앞둔 중국으로서는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이 분열정책이 쉽게 성공할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중화'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그네들만의 유별나면서도 폭력적인 성향이 짙은 자부심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90% 이상의 한족이 중원에 자리잡아 '남만'과 '북적', '서융'과 '동이'를 거느리겠다는 '중화'의 세계관을 지향하는 그네들로서는, 지금의 '중국'이라는 국가적인 틀을 결코 버릴 수 없는 입장이다. '소련 해체'로 효험을 봤던 미국의 대 중국 분열정책은 이런 중국의 국가적 자존심을 건드리며 세계적인 시선을 모아가면서 포위망까지 건설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렸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중국과 소련은 다르다. 소련은 '이념'을 중심으로 건설된 국가연합체제다. 그 '이념'을 건드리면서 견고함을 무너뜨렸기에 '베를린 장벽' 붕괴 후 1년 2개월 밖에 소요되지 않았지만, '민족 감정'이라는 것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포위당할수록 강경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 눈으로도 확인하지 않았던가? 서울에서 막무가내로 굴었던 그 중국인들, 그 모습에서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격화되는 티벳에서의 화염이 결코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뿐일까? 또다른 '나비효과'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중국이 이 내외의 위기에 대처해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 이건,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문제다. 바로 '동북공정'이다.
'티벳 문제'와 촘촘히 연결된 '동북공정'
소위 말하는 '단 하나의 중국 정책'이라는 큰 틀에서 표출된 '동북공정'은, 고구려를 '중국 내의 지방정권'으로 규정지으려 애쓰면서, 언젠가는 영토분쟁으로 확산될 기류도 배제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이슈다.
이미 북한은 에너지 공급의 70% 이상을 중국에 의지하고 있고, 내부의 지하자원 채굴권의 상당수도 중국 측에 넘어가고 있다. 2003년에는 6자회담 참여를 거부한 북한을 향해 3일간 송유를 중단해 회담에 복귀시키는 '실력 행사'에 나선 적도 있다.
그뿐인가? 무장경찰을 대신한 인민해방군 정규병력이 북한 접경지대에 배치돼 있다. 그 이유가 다소 황당하다. "북한이 국경을 넘어와 무력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라고 하는데, 그런 일이 과연 일어나겠는가?
여기서, 아이러니한 그림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눈이 티벳으로 쏠리고, 그 독립투쟁 움직임과 중국의 탄압 움직임이 더더욱 불이 붙는다면, 우리로서는 방심할 수 없는 일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화'라는 고전적인 세계관 속에서, 티벳이나 동북3성 등 만주 일대는 '서융'과 '동이'에 불과하다. 그들을 '중화'라는 틀 속에 가두며 내부 위기를 잠재우고 외부에 세를 확산시킬 계산을 하게 된다면? 그게 바로 중국, 아니 '중화'의 고전적인 대외정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국 아닌, '중화'에 대처해야 한다
알고 보면, 우리도 그 '중화'라는 세계관 속에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시달려왔다. 자신들의 거대한 틀 속에 주변부 국가를 그 틀 속에 가두거나 위성국가로 둬야 원활히 돌아갈 수 있으며, 그 자존심도 보장받는 '중화'라는 세계관, 우리가 집중적인 관심을 두고 대처해야 할 부분은 바로 그 '중화'다.
게다가, 전체적인 국제정치는 미국과 중국의 보이지 않는 냉전의 맥락 속에서 구성되고 있다. 이 부분에서 필요한 것이야말로 '(이명박 정부의 선동용 구호 차원이 아닌 진정한) 실용외교'다. 그 냉전의 맥락을 철저히 살펴가며 '동북공정'도 차단해가면서 티벳도 주시해야 한다. 그러면서, 돌아봐야 할 것은 남북한이 어떻게 관계를 구성해 생존의 영역을 다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강연 도중에 "햇볕정책만이 공산주의를 성공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미국을 향해, 대 중국 정책에 있어 '햇볕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중화'라는 단단한 세계관에도, '다양한 세계'와 '다원화된 포용'이 있다는 점을 일깨워지면 모종의 변화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콘돌리자 라이스가 배후에서 주도해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년 2개월 만에 성사된 '소련 해체'도 햇볕정책의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조지 W.부시 행정부는 '포위망 구축'에 있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등지에서 무력행사로 대처했다.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질 미국에 새 정부, 과연 '분열 후 포위망 구축' 단계까지 나아간 '대 중국 정책'을 어떻게 구성할지, 우리는 지속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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