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짜리 두개 들고 “스트레스 풀러 왔어요”
맞벌이 가정 아이 한밤까지…도시의 ‘아지트’
“써든, 1시간 할게요!”
토요일인 지난 3일 오후 2시. 어린이날 행사로 수업이 일찍 끝난 박아무개(12·초등 6년)군은 한쪽 어깨에 학원 가방을 메고 동네 피시방을 찾았다. 늘 하던대로 5백원짜리 동전 2개를 카운터에 내고 27번 자리에 앉았다. “엄마는 대부분 ‘15세 이상가’인 제가 맘에 드는 게임은 집 컴퓨터에 깔지 못하게 해요. 집 피시는 숙제용, 여기 피시는 스트레스 푸는 용이죠.” 이날 오후 박군이 찾은 서울 사당동 ㅎ피씨방은 모두 80개 좌석 가운데 58개가 주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차지였다.
ㅎ피씨방 아르바이트생 박아무개(30)씨는 “평소 이 시간대는 자리가 없어 한참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낮부터 저녁 8시까지는 손님의 80% 이상이 초등학생들”이라고 말했다. 같은 피시방이라도 초등학생들이 즐겨 찾는 ’아지트’는 따로 있다. 박씨는 금연·흡연 구역 구분이 철저하고, 중·고교생 등 ‘큰 형’들을 잘 관리해 주는 곳에 아이들이 몰린다고 귀띔했다.
“야, 사다리방 빨리 들어와!”, “폭탄, 폭탄, 폭탄, 빨리 해체해!” 이곳 아이들한테 피시방은 온-오프라인이 결합된 하나의 놀이터다. 아이들은 친구들끼리 나란히 줄지어 앉아 서로에게 연신 소리를 지르며 논다. 초등학교 5학년 최아무개군은 “집에서 혼자 게임하는 것보다 피시방에 모여서 하는 게 훨씬 재미있다”며 “하루 번갈아가면서 컵라면을 쏘기도 하고, 돈없는 친구에게 게임비를 꿔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군은 한달 용돈 1만원의 3분의 2 가량을 피시방에서 쓴다고 했다.
피시방에서 생일파티를 하는 아이들도 많다. 친구들을 피씨방에 데려와 한 두시간 게임비를 내주고 라면을 사주는 식으로 ‘생일턱’을 쏜다. 몇몇 피시방에서는 생일파티를 하러 온 일행들한테는 게임비를 30분~1시간씩 깎아주기도 한다. 얼마 전 친구 6명한테 피씨방에서 생일턱을 냈다는 진아무개(12)군은 “엄마가 아침에 2만원을 주고 가 친구들하고 피시방에서 놀았다”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곳엔 아이들을 ‘관리’해주는 피시방도 적지 않다. 퇴근이 늦은 부모들이 종종 아이들을 피시방에 맡기기 때문이다. 사당동 ㄹ피시방 아르바이트생은 “부모들이 아이를 집에 혼자 두거나 밖으로 내돌리는 것보다 피시방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경화기자
freehwa@hani.co.kr
소금쟁이 사냥에 물범벅…냉이 캐기에 흙범벅
양평 대아초교 아이들 자연과 함께 숨쉬는 하루
지난 3일 오후 경기 양평군 증동리 대아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마친 뒤 학교 앞 개울가에 나와 어울려 놀고 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이게 뭔지 알아요? 이건 물장군, 얘는 소금쟁이에요.”
햇살이 따끔거리던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증동리 대아초등학교 앞 개울가. 수업을 마친 이 학교 2학년 학생 다섯 명이 개울가의 돌을 열심히 들춰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내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이곳 대아초교 학생 3분의 2는 서울과 수도권 대도시 출신이다. 6년 전 취학생이 없어 폐교 위기에 처하자 학부모·교사들이 “학교를 살리자”며 팔을 겉어붙였다. ‘자연 속에서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는 학교’라는 취지로 학교 홍보에 나섰고, 소규모 학교 지원 사업금을 받아 학교 시설도 정비했다. 소문을 듣고 하나 둘 전학생들이 찾아들기 시작해 지금은 6학급에 전교생 111명이다.
1학년 박영민(8)군은 지난해 11월 서울 상월곡동에서 이곳 복포리로 이사를 왔다. 이날 선생님이 내 준 ‘냉이캐기’ 과제물 때문에 집을 나선 박군은 “이젠 엄마보다 냉이를 더 잘 알아본다”며 자랑했다. 박군의 어머니(33)는 “아스팔트에서 자란 기억 때문에 우리 아이는 바로 흙을 밟을 수 있는 곳에서 기르고 싶어 이사했다”며 “종종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흙범벅이 돼 집에 돌아오곤 하지만, 이제 제법 촌티가 나는 아들이 밝고 건강해 보여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집에서 토끼, 병아리 등 한 마리 이상의 동물을 키운다. 이 학교 이수국 교장이 학교 뒷뜰에서 키운 화초닭·금계·은계·청둥오리·토끼·병아리를 학생들한테 분양했다. 이 교장은 “아이들의 인성을 바르게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동물 분양은 좋은 교육방법”이라며 “지난해에도 학생들한테 99마리를 나눠줬다”고 말했다.
방과후 수업은 대부분 특기적성교육으로 진행된다. 피아노, 태권도, 사물놀이 등 11개 반이 현재 운영중이다. 가장 인기있는 것은 하모니카반이다. 지난 주에는 4학년 학생들이 뜯은 쑥으로 쑥개떡을 쪄서 나눠 먹었고, 다음 주에는 전교생이 인근 청계산에 오를 예정이다. 서울 고덕동에서 전학 온 5학년 양서린(13)양은 “예전에 아파트 살 때는 놀러갈 곳이 없었는데 여기는 산도 많고 개울도 있어서 좋다”며 “(학교가 아담해) 친구들과도 가깝게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1학년 담임 교사 이명옥씨는 “도시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이 처음에는 다소 생소해하고 심심해 한다”며 “하지만 친구들과 개울가나 산 속에서 뛰어놀다 보면 금새 이곳 생활에 적응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 우리집 경제사정 쉬쉬말고 떳떳하게 밝혀라
■ 어린이날, 성폭력에 멍든 동심■ 미안하다, 아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