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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김윤식 교수가 말하는 ‘토지’

등록 2008-05-06 21:03

김윤식/문학평론가
김윤식/문학평론가
불변의 삶터, 우리나라 산천이 참주제
대하소설 <토지>를 읽어 보셨소? 대한제국 원년(1897) 한가위에서 시작해 8·15 광복에 이르기까지 지리산 자락 평사리 최참판 댁과 그 주변의 운명을 다룬 이 소설을 읽는 데는 아무리 날랜 독자라도 보름쯤 걸리지 않을까 싶소. 16권의 분량도 압도적이지만 각 권마다 고유하게 갖고 있는 역사적 무게와 이를 견디며 살아가는 인간의 숨소리가 일사천리로 읽을 수 없게 자주 훼방을 놓기 때문이오.

그 훼방 놓기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구한말의 역사가 갖고 있는 신분계층이오. 양반·상놈으로 정리되는 이 신분제는 하늘이 낳은 것인가, 한갓 사람이 만든 것인가. 만일 전자라면 일사천리로 읽힐 수 있소. 그렇지 않다면 책장이 쉽게 넘겨질 수 없소. 다른 하나는, 신분제를 둘러싸고 어려운 싸움이 벌어지는 마당에 또다른 훼방꾼이 등장했음이오. 이 훼방꾼은 막강한 일제. 이 두 훼방꾼을 맞대어 놓고 올바른 해답을 모색하고자 힘쓰는 작가의 육성이 <토지> 한복판에서 북처럼 둥둥 울리고 있소.

여기는 최참판댁. 당주 최치수. 호는 석운(昔雲). 그를 찾아온 동문수학의 이곳 양반 이동진의 첫마디는 이렇소. “석운, 자네는 물론 양반이긴 해도 선비는 아니다”라고. 재물로 쌓은 집안 약점에 얕잡힌 석운은 독립운동차 강을 건너고자 하는 진짜 선비 이동진을 향해 이렇게 묻소. 왈, “자네가 마지막 강을 넘으려는 것은 누굴 위해서? 백성인가, 군왕인가?” 선비 이동진의 답변은 이러했소. “백성이라 하기도 어렵고 군왕이라 하기도 어렵네. 굳이 말하라면 이 산천을 위해서라고나 할까”라고. 바로 여기에 <토지>의 참주제가 걸려 있지 않았겠는가.

<토지>란 새삼 무엇이뇨. 이 대하소설의 참주제란, 그러니까 최참판 댁의 성쇠담(盛衰談)도, 용이나 강청댁, 무당 월선과 악녀 귀녀, 또 양반 악당 김평산, 동학당 김개주의 아들 구천, 허깨비 같은 김길상 등등의 삶과 죽음도, 영악스런 이재의 귀재 최서희의 재기담도 아닐 터. 바로 ‘산천’이 그 참주제였던 것.

대체 산천이란 무엇이뇨. 구체적으로 말해 그것은 ‘지리산’에 다름 아닌 것.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 이 산하로서의 자연을 형상화했던가. 그대, <토지>를 보름쯤 걸려 읽고 가만히 눈감아 보시라. 틀림없이 섬진강과 평사리, 그리고 지리산에서 울리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먼 뇌성처럼 되살아날 것이오. 그것도 다섯 번씩이나. 또 그것도 밤중에. 그대는 또 당황할 것이오. 다음과 같은 커다란 의문과 함께. 뻐꾸기가 밤에도 울 수 있는가가 그것. 필시 그대는 조류학의 권위 윤무부 교수께 그 여부를 묻지 않을 수 없을 터.

여기까지 오면 그대는 능히 <토지>가 놓인 불변의 미학적 위치를 스스로 잴 수 있을 터. <토지>의 별칭이 ‘산하’라는 것. 그 산하의 이름이 ‘지리산’이라는 것. 그대는 또 알아차렸을 터. 이 <토지>가 끝난 곳에서 “智異山이라 쓰고 지리산이라 읽는다”라는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1978)이 시작된다는 사실까지도.

김윤식/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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