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박경리 선생님
박경리 선생 영전에
후배들 품던 ‘토지문화관’
‘밥 알람’ 아직도 귓가에
당신은 길잃은 문인의 등불 늘,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면 저기 선생님이 계시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난해 가을에 입었던 옷을 뒤져보니 주머니에서 기차시간표가 나왔다. 34번 버스 운행시간표도 같이. 34번 버스가 마지막으로 멈추는 곳, 거기에, 토지문화관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며, 그저 쉬었다 가기만 해도 된다며, 작가들에게 기꺼이 방을 내주는 곳. 그곳에서 어떤 이는 글을 썼고, 어떤 이는 혼자 울었고, 어떤 이는 침묵했고, 어떤 이는 썼던 글을 지웠다. 풍경 하나 토지문화관에 머물게 되면 꼭 지켜야 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밥시간이다. 아침은 각자 알아서 토스트를 구워먹지만, 점심과 저녁은 시간이 정해져 있다. 12시와 6시. 어떤 일이 있어도, 웬일이니 싶게 글이 잘 써진다 해도, 밥시간이 되면 식당으로 달려가야 한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으시다며 일부러 얼굴을 보이지 않으셨는데, 매일 한 가지씩 반찬을 해서 식당으로 내려 보내셨다. 그 반찬은, 그냥 반찬이 아니라, 선생님의 안부를 전하는 편지였다. 누군가가 ‘선생님 표 반찬’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쓴 게 하나도 없어서 … 밥을 먹는 것도 죄스럽네.” 풍경 둘 어느 주말이었다. 토지문화관에 머물던 동료작가들과 모처럼 원주 시내 나들이를 했다. 11시50분쯤 어느 선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11시55분쯤 다른 선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내 휴대전화도 같이 울렸다. “선배는 10분 전이야?” 내가 물었다. “응, 그래도 세수는 하고 밥 먹으러 가야 해서.” 선배가 대답했다. 그건, 밥시간을 알려주는, 알람소리였다. 11시55분에 한번. 5시55분에 한번. 한번은 서울에서 작가들과 술자리가 있었는데 내 휴대전화에서 벨이 울렸다. 마침 그 자리에는 토지문화관을 거쳐 간 작가들이 많았고, 거짓말처럼, 그 벨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두들 알아차렸다. “저녁 먹을 시간이구나.”
풍경 셋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새벽녘에 창을 열고 밖을 바라보면, 불이 꺼지지 않는 동료들의 방이 보였고, 하늘의 별보다도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혹시 맥주 한잔?’ 이런 메시지를 보내면 ‘어느 방에서?’ 이런 답이 오곤 했다. 한번은 새벽까지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 바람을 쐬려 밖으로 나왔더니, 선생님이 밭에서 풀을 뽑고 계셨다. “지금까지 글을 쓴 거야?” 하고 선생님이 물으셨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풍경 넷 소설 쓰는 선배가 천체망원경을 가지고 왔다. 새벽이면 옥상에 모여서 별을 봤다. 별을 보다 고개를 돌리면 선생님 댁이 보였다. 늘 불이 켜져 있었다. “글이 안 써질 때면 난 가끔 저 불빛을 봐.” 누군가 말했다. 그러자 모두들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그건 커다란 등불이었다. 길을 잃고 헤매지 말라고 선생님이 켜놓으신 등불. 그 불을 보며 이렇게 중얼거리게 된다. “아, 선생님이 저기 계시는구나.” 그러면 다 된다. 정말, 다 된다.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새벽이면 밖으로 나와 창작실을 바라본다고. 환하게 불이 켜진 방들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단 한 번도 글은 잘 써지니? 라고 묻지 않으셨다. “밥은 맛있냐?” 그 말씀만 하셨다. “밥은 맛있니?” “밥은 먹을 만하냐?” “입맛에 맞니?” 네,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 표 반찬은 이제 어디 가서 먹나요? 윤성희/소설가
‘밥 알람’ 아직도 귓가에
당신은 길잃은 문인의 등불 늘,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면 저기 선생님이 계시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지난해 가을에 입었던 옷을 뒤져보니 주머니에서 기차시간표가 나왔다. 34번 버스 운행시간표도 같이. 34번 버스가 마지막으로 멈추는 곳, 거기에, 토지문화관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며, 그저 쉬었다 가기만 해도 된다며, 작가들에게 기꺼이 방을 내주는 곳. 그곳에서 어떤 이는 글을 썼고, 어떤 이는 혼자 울었고, 어떤 이는 침묵했고, 어떤 이는 썼던 글을 지웠다. 풍경 하나 토지문화관에 머물게 되면 꼭 지켜야 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밥시간이다. 아침은 각자 알아서 토스트를 구워먹지만, 점심과 저녁은 시간이 정해져 있다. 12시와 6시. 어떤 일이 있어도, 웬일이니 싶게 글이 잘 써진다 해도, 밥시간이 되면 식당으로 달려가야 한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으시다며 일부러 얼굴을 보이지 않으셨는데, 매일 한 가지씩 반찬을 해서 식당으로 내려 보내셨다. 그 반찬은, 그냥 반찬이 아니라, 선생님의 안부를 전하는 편지였다. 누군가가 ‘선생님 표 반찬’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쓴 게 하나도 없어서 … 밥을 먹는 것도 죄스럽네.” 풍경 둘 어느 주말이었다. 토지문화관에 머물던 동료작가들과 모처럼 원주 시내 나들이를 했다. 11시50분쯤 어느 선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11시55분쯤 다른 선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내 휴대전화도 같이 울렸다. “선배는 10분 전이야?” 내가 물었다. “응, 그래도 세수는 하고 밥 먹으러 가야 해서.” 선배가 대답했다. 그건, 밥시간을 알려주는, 알람소리였다. 11시55분에 한번. 5시55분에 한번. 한번은 서울에서 작가들과 술자리가 있었는데 내 휴대전화에서 벨이 울렸다. 마침 그 자리에는 토지문화관을 거쳐 간 작가들이 많았고, 거짓말처럼, 그 벨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두들 알아차렸다. “저녁 먹을 시간이구나.”
윤성희씨. 사진 신소영 기자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새벽이면 밖으로 나와 창작실을 바라본다고. 환하게 불이 켜진 방들을 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단 한 번도 글은 잘 써지니? 라고 묻지 않으셨다. “밥은 맛있냐?” 그 말씀만 하셨다. “밥은 맛있니?” “밥은 먹을 만하냐?” “입맛에 맞니?” 네,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 표 반찬은 이제 어디 가서 먹나요? 윤성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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