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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블로그] 어버이날, 불효자는 웁니다

등록 2008-05-08 20:00

고교를 졸업하고 어느정도 머리가 커진 나는 어머니와 한동안 썰렁한 '냉전'의 시간을 보냈었다. 내 마음속에 어머니에 대해서 용서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고교를 졸업하고서야 알게된 사실인데, 그것은 바로 나의 모친이 나의 학창시절 담임교사에게 '촌지'를 건넸었다는 사실이었다. 철썩같이 모친을 믿고 있었던 나에겐 그것이 상당히 충격이었고,밀려드는 배신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말도 안하고,무슨 말에도 퉁명스럽게 대하며,그일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문제에도 혹독한 비판을 가해 모친의 눈물을 흘리게 하곤 했다.

순진했던 나는 학교에서 가르친 진리, 집에서 배운 교육은 '절대적'이라 믿고 살아왔는데 , 나의 모친이 가장 중요하게 가르쳤던 것이 바로 '정직'이었다. (그로 인한 에피소드는 참 많다)

꽃병을 깨거나 무언가를 잃어버렸을때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나면 엄청 두드려맞았다. 진짜 지금생각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맞은 적도 있다.(억울하게 거짓 자백을 했기 때문)

그런 모친의 교육도 있고 해서 난 '비교적' 정직한 사람으로 성장을 했는데 나에게 그렇게 매를 들며 정직을 강요한 모친이 '떡값'이라니? 게다가 내가 추궁을 하자 나오는 변명에 나는 더더욱 실망을 하였다. "남들도 다 하는 거란다"

그 말은 불붙은 내 가슴에 휘발류를 끼얹은 격이어서,난 일부러 모친과 거리를 두고 별로 대화를 하지 않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사회에 나와 일을 하게 되었을때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선배'가 한명 있었는데, 그와 나의 집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둘다 자취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회사 전화로 장거리 전화를 내 전화 쓰듯이 하며 하루가 멀다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하는 '효자'였다. 그러다가 자기 혼자 쓰기 민망했던지 나보고도 집에 전화해서 안부 전화 좀 하라고 훈계를 한다. 난 회사 전화를 쓰는 것이 싫어서 난 원래 안부전화 같은거 안한다고 했더니 일장훈시를 하는데….

"야야…. 너 왜 그렇게 부모 맘을 모르냐? 부모한테 잘해야 한다...어버이날 같은 때는 짜식아. 안부전화도 좀 하고 기쁘게 해드려야지…. 인생 그렇게 살면 안된다"

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그가 말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IMF때 실직을 했는데 집에는 실직했다는 소리를 차마 못하여 몇 달동안 넥타이를 매고 아침에 나가 공원에서 시간을 때우다 돌아오거나 하는 안타까운 가장의 시간을 보냈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데 솔직히 내가 나의 모친에게 차갑게 군 행동이 약간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이 사람이 참 효자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달이 시간이 흐르고 난 그의 아버지가 '왜' 실직하였는가를 알게 되었다. IMF때 정리해고의 바람이 불어닥치자 많은 공기업과 일반회사에서는 '부적격자' 리스트를 작성해서 권고사직 및 해고를 단행했는데 거기서 '부정행위자'로 꼽혀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었다.

허허허허…. 허탈해서 눈물났다. 회사에서 부정축재, 부정행위자로 모가지 나간 사람에게 그렇게 눈물을 글썽이며 효심을 발휘하는 '효자'도 있는데, 그까이꺼 남들 다하는 '촌지' 좀 줬다고 몇 년씩이나 어머니를 원망하고 비난하며 살았던 내가 '속좁고 둥글지 못한 놈'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김근태씨의 회고를 보면 자기를 그렇게 고문하고 인간이하의 짓을 하던 고문기술자들도 농담 따먹기 할때는 자기 딸의 시험을 걱정하는 '선한 아버지'인걸 보고 말로 표현 못할 격한 심정을 느꼈다고 하는데, 이 세상엔 참 착한 아버지도 많고 효자도 많다. 아들을 위해 깡패를 동원하는 재벌 총수도 있고, 조상묘 파헤친 범인에게 '효심'의 마음으로 분노의 주먹을 휘둘렀던 청년이 알고보니, 프라이드가 외제차 앞서간다고 쫓아가서 죄없는 운전자를 두드려 팼던 망나니 재벌 아들이었다는 뉴스도 있지 않았던가?

이렇게 효자가 많은 세상인데, '하찮은 것' 가지고 부모를 비난하는 내 자신을 보면 난 참 불효자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이렇게 태어난 천성인걸. 그저 불효자는 울 뿐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용서는 안되네요)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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