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우병 의심소 사료 조처’에 관한 긴급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11일 오전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이 취할 것이라고 한국 정부가 주장해 온 ‘강화된 사료금지 조처’가 최근 미국 연방정부 관보 내용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미, 예고와 달리 ‘사료금지 강화’ 실행 안해
‘30개월 소 허용’ 중요 전제조건 틀어진 셈
‘30개월 소 허용’ 중요 전제조건 틀어진 셈
‘쇠고기협상’ 총체적 부실
지난달 18일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이 총체적 ‘부실 협상’임이 드러나고 있다. 곳곳에 우리 정부의 ‘검역주권’을 제약하는 독소조항들이 나오는 데 이어, 광우병 위험이 큰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받아들이는 전제조건이었던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의 구체적인 내용을 우리 정부가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심지어 미국 연방관보에 나온 영문을 잘못 해석해 결국 국민들에게 ‘허위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에 대해 계속 말 바꾼 정부
정부는 지난달 18일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직후 보도자료를 내,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권고를 받아들여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를 공포할 경우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제수역사무국 권고는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일곱 가지는 연령 구분 없이 동물사료 사용을 금지하라는 것이다. 이는 미국 정부가 2005년 입안예고한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 보다 훨씬 강력한 수준이다.
그런데 막상 지난달 25일 미국이 연방 관보에 공포한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는 2005년 입안예고안보다 훨씬 후퇴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2일 내놓은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관련 문답자료’에서 “30개월 미만 소라 하더라도 도축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소의 경우 돼지 사료용 등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며, 미국이 2005년 입안예고안보다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를 공포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는 미 연방관보에 게재된 내용과 다르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자, 정부는 해명자료를 내 “미국 식품의약안전청의 보도자료를 번역했는데, 미 식양청 안에서 보도 자료와 실제 관보 게재 내용 사이에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고 미국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정부는 해명자료를 낸 지 13시간 만에 출입기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영어 번역의 잘못을 인정했다.
■ 재협상 가능한가
이런 말바꾸기와 혼란이 일어난 것은 정부가 협상과정에서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의 내용에 대해 명확히 규정을 하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상길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단장은 “미국이 2005년 입안예고안대로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를 공포할 것으로 당연히 예상하고 구체적인 범위와 내용에 대해서는 미국 쪽과 협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따라서 미국의 동물성 사료 금지 수준이 애초 예고한 것보다 다르다고 해서 이의 제기나 재협상은 어렵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미국이 2005년 입안예고 수준의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를 취할 것으로 우리 정부가 생각했다면, 이에 대해 양쪽이 암묵적 또는 명시적인 동의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이 합의 내용과 다르게 공포를 했다면 ‘기망’ 행위에 해당하므로 30개월 이상 쇠고기에 대해 수입을 허용하는 것은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49조에 의해 무효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 왜 중요하나
광우병은 소의 육골분을 소의 사료로 사용한 것 때문에 생긴 병이다. 따라서 사료 정책은 광우병 통제의 핵심수단이다. 미국도 1997년부터는 소 등 되새김동물의 부산물로 만든 사료를 되새김동물에 먹이는 것은 금지하고 있지만, 돼지나 닭 등 비되새김동물의 사료로는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소의 부산물을 먹은 돼지나 닭을 원료로 만든 사료를 다시 소가 먹을 경우도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교차감염)이 있다. 이 때문에 국제수역사무국도 지난해 5월 미국에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를 부여하면서 교차감염 방지를 위해 사료 금지 조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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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강화된 사료 금지조처’에 대한 정부의 오락가락 설명 내용(위)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 나라별 비교(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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