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1975년 주한미군인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용순 하빌(52)씨의 ‘아메리칸 드림’은 산산이 부서졌다. 헐렁한 수의를 입은 그의 왼쪽 다리는 이제 암으로 발목에서부터 허벅지까지 퉁퉁 부었다. 자궁엔 출혈을 일으키는 종양이 있지만 제대로 수술을 받지 못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12일 최근 열악한 구금시설을 고발하는 기획 시리즈의 두번째 기사로 한국계 미국인인 용순씨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암 투병 중인 그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아리조나주 피날지역 구금시설에서 1년 넘게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보냈다고 보도해 많은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중 처벌’ 형벌이 내려진 건 지난해 3월이다. 2004년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돼 법적 투쟁 끝에 13개월 실형을 마쳤지만, 미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세관단속국에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가 운명을 바꾸었다. “당신은 집에 갈 수 없다!” 32년 동안 가 본 적이 없는 한국으로 그를 추방하는 절차가 시작됐다. 이민국은 1996년 훔친 보석을 구매한 혐의로 한 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용순씨에게 마약 소지 혐의를 추가해, 추방 근거로 삼았다.
추방에 맞서 힘겨운 법정 투쟁을 벌여 온 그를 더욱 힘들게 했던 건 구금 시설의 열악한 의료 환경이었다. 최근 피날지역으로 이송되기 전 수용돼 있었던 아리조나주 플로렌스 지방의 구금시설엔 제대로 된 양호시설과 의료진이 없었다. 치료받을 때마다 구금시설에서 30마일(약 48km) 밖에 있는 병원까지 가야 했고, 그곳에서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암은 계속 커갔다. 자궁에 출혈을 일으키는 종양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인근 병원으로 갔지만 그곳에서도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당한 적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피날지역 구금 시설엔 의료진의 3분의 1이 공석일 만큼 의료진이 부족하고 의료 시설이 열악하다고 전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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