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기완(사진)
정부 승인 기다리는 백기완 소장 “손길 이어졌으면”
“눈물이 나서 보내겠다는 거야. 미국놈들이 북한에 50만톤을 보내겠다고 하지만 거기엔 ‘일맘’이 없어. ‘일맘’이란 건 노동하는 사람의 마음이야. 어떤 깨달음보다 맑고 어떤 목숨보다 힘이 세. 미국은 이웃이 아니잖아. 우릴 갈라놨잖아.”
백기완(사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17일 오전 서울 성북구 명륜동 연구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전적 에세이 <부심이 엄마생각> 수익금 2천만원을 털어 북쪽에 쌀 백가마니를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백 소장은 쌀 백가마니가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의 허기를 달래기는 미약하지만 어릴 적 어머니께서 몸소 보여주셨던 이웃간의 정인 ‘일맘’을 나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배곯았던 시절에도 나눔을 행했던 어머니의 정담을 들려줬다.
대여섯살 때의 일이다. 저녁이 돼도 어머니는 밥을 안하고 군불만 때기에 “우리집도 밥 좀 하라”며 칭얼댔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타이르길 “부심아(‘눈부시다’는 뜻으로 어머니가 붙여준 백 소장의 별명), 이참은 우리만 밥을 못하는 것이 아니구나. 밥 못하는 집이 많아. 이런 때 제 배지(배)만 부르고 제 등만 따스고자 하면 너 키가 안 커. 너 어서 어른이 되고 싶질 않어. 그러니 배고픈 것쯤은 참아야 돼.”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꼭 껴안고 숨죽여 울었다.
“키 안 클래?”라는 말에 겁이 나서 울어댔던 꼬맹이는 나중에서야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어머니가 말했던 ‘키’의 크나 큰 의미를 알아차렸다. 밥달라고 보채는 제 자식에게는 콩국 한 사발과 상추만을 수북히 뜯어서 주면서도 더 어려운 이웃에게 빈 쌀독을 박박 긁어 모은 한움큼의 좁쌀을 주곤 했던 어머니의 마음, ‘키’는 정치적 이념과 무관하게 이웃을 도울 줄 아는 인도주의 정신, 바로 ‘일맘’이었던 것이다.
“쌀 백가마니, 그거 거금이야. 우리 팥내(부부)가 100년 동안 먹고도 남을 양식이지. 개고기, 생선회 먹고 싶은 걸 참아가며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둔 돈을 이번에 홀랑 내놓는 거야. 우리 연구소는 40여년 자급자족으로 살아왔는데, 1년치 예산을 다 쓰는 거지. 개성공단까지 실어 나를 8톤 트럭 두 대는 화물연대 노동자가 보탰어.”
빠듯한 살림에 이런 ‘큰일’을 벌이는 이유는 민간에서 ‘북한 이웃돕기’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희망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북쪽에서 초청장을 내주고 남쪽에서 방북 승인을 해줘야 한다.
“길만 열리면 이삼일 안에 가져가고 싶으니 이 눈물겨운 발길을 막지 말기를 바랍니다.” 북에 고향을 둔 백 소장은 당국이 그의 간곡한 ‘일맘’을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글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글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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