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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독도, 마침내 초례청을 허하다

등록 2005-04-24 16:48수정 2005-04-24 16:48

독도 입도를 시도한 지 사흘만인 23일 오후 독도 동도 접안시설에서 사상 첫 ‘독도 결혼식’을 올린 전통무예가 김종복(39)씨와 연극인 송희정(32)씨. 결혼식 뒤 김씨가 송씨의 뺨에 입을 맞추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독도 입도를 시도한 지 사흘만인 23일 오후 독도 동도 접안시설에서 사상 첫 ‘독도 결혼식’을 올린 전통무예가 김종복(39)씨와 연극인 송희정(32)씨. 결혼식 뒤 김씨가 송씨의 뺨에 입을 맞추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현장] 김종복·송희정 부부 동행취재기…네번 도전 끝 전통혼례

독도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상상의 섬이다. ‘우물 하나 분화구’는 현실감에서 ‘토끼 한 마리 계수나무 한 그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상상의 안개 입자를 걷는 건 우리가 아니라 일본이다. 일본의 도발이 구체화할 때라야 독도는 희미하게나마 ‘영토’라는 실체의 섬으로 다가온다. ‘실효적 지배’는 당위이지만, 그 당위가 그리 실효적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사상 처음으로 독도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그러나 독도는 쉽게 자신을 ‘초례청’으로 내어놓지 않았다. 독도는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력이 얼마나 가벼운지 시험이라도 하듯, 바위섬에 거친 너울을 둘러쳤다. 신부와 신랑은 네 번을 ‘도전’했다. 그때서야 독도는 겨우 ‘사고초려’를 받아들였다. 독도에서의 결혼식은 마치 상상을 현실화하는 과정처럼 벅차 보였다.

“독도 접안 가능하다” 안내방송에 신부 눈감고 기도 올려

▲ 독도 동도 접안시설에서 전통혼례를 올리는 김종복·송희정 부부.


전통무예가 김종복(39)씨와 연극인 송희정(32)씨가 독도의 동도 땅을 밟은 건 지난 23일 오후 5시5분. 관광객 200여명이 하객이 되어 유람선 삼봉호에서 함께 내렸다. 오후 2시30분 울릉도를 출발한 지 2시간35분만이었다. 이들은 이날 오전에도 삼봉호를 타고 독도를 향했으나, 너울이 심해 접안에 실패하고 되돌아와야 했다. 배 안에서 “독도 접안이 가능하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예비신부 송씨는 눈을 꼭 감은 채 기도를 올렸다. 관광객들도 숨을 죽였다.


예식은 전통 혼례 방식에 따라 진행됐다. 신부 송씨는 공주 차림을 했고, 신랑 김씨는 부마복을 입었다. 하지만 결혼식은 약식으로 치러졌다. 신부 신랑 맞절과 하객 인사가 전부였다. 짧은 입도시간 탓에 신랑이 준비해간 전통무 공연도 포기해야 했다. 주례를 맡은 삼봉호 선장 송경찬(50)씨는 “오후에 출항하는 배에 신랑 신부가 다시 타는 것을 보고 조금 힘들었지만 반드시 독도에 배를 대야겠다고 결심했다”며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백일이나 돌 잔치도 독도에서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10분 남짓한 결혼식이 끝난 뒤 신부 신랑과 하객들은 독도경비대원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었다. “독도는 우리 땅”을 함께 외치기도 했다. 신부 이웃동네에서 왔다는 한 관광객은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이런 좋은 곳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니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2003년 6월부터 독도경비대장을 맡아온 성대규 경위는 “독도를 지키는 한 사람으로서 이처럼 경사스런 일을 지켜보니 감개무량하다”며 “이런 일이 많이 생길수록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인식이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첫번째 시도 실패 뒤 신부 하염없이 눈물
‘무사 접안’ 기원제 올리기도

▲ 22일 저녁 울릉도 도동항에서 ‘무사 독도 접안’ 기원제를 준비하는 김종복씨 일행.
이들은 입도 30분만인 오후 5시 35분께 독도를 뒤로 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삼봉호로 옮겼다. 신부 신랑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과 마음고생에 견줘, 독도는 참으로 ‘인색’한 섬이었다. 이들 부부가 울릉도에 도착한 것은 지난 21일 오후. 포항에서 배를 탄 지 3시간 남짓만이었다. 곧바로 삼봉호에 몸을 실었으나, 배는 접안 시도조차 못한 채 독도 주위를 돌다 울릉도로 돌아왔다. 이런 난관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듯 예비 신부 송희정씨는 독도를 차마 볼 수 없다며 얼굴을 돌린 채 굵은 눈물을 흘렸다. 지난 22일에는 아예 배가 울릉도에서 출항조차 하지 못했다. 두 번째 시도에 실패한 이날 저녁, 예비 부부는 울릉도 도동항에서 독도 무사접안을 기원하며 ‘검무’와 ‘활선무’ 등으로 이뤄진 기원제를 올리기도 했다. 기원은 곡진했고, 이튿날 두 차례의 추가 시도 끝에 마침내 ‘독도 결혼식’은 현실이 됐다.

결혼식을 마친 신랑 김씨는 “사흘 동안 가슴에 응어리진 것이 모두 풀린 느낌”이라며 “독도에서 결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는데, 이렇게 잘 돼서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김씨는 “독도를 처음 보는 순간 전혀 낯설지 않은 걸 보고 우리 땅이 분명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애가 생기면 아들·딸 구별 말고 이름을 ‘독도’로 짓겠다”고 덧붙였다.

신부 송씨는 “울릉도에 오기 전에는 잘 안 될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못 해봤는데, 첫날 입도 시도조차 못하고 돌아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며 “살아오면서 이번만큼 힘들었던 경험이 없었다”고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송씨는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이번 일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독도가 ‘실효적 결혼식장’이 되는 날을 기다리며…

▲ 지난 21일 오후 독도 접안에 실패한 뒤 삼봉호 객실에서 신부 송희정씨가 울음을 터뜨리자 신랑 김종복씨가 위로하고 있다.
한편, 당분간 신혼여행을 가지 않을 계획이었던 이들 부부는 24일 오전 울릉도를 떠나면서 뜻하지 않은 신혼여행을 즐기기도 했다. 강원도 묵호로 향하는 배 안에서 한 노인이 고혈압으로 쓰러진 것을 남편 김씨가 응급조처를 해줘 생명을 구하자, 노인 가족들이 자신들이 타고온 관광버스에 신혼부부를 초청한 것이다. 이들 부부는 관광버스를 타고 울진, 영주 등 동해안 도로를 따라 구경한 뒤 서울로 돌아왔다.

평소 역사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은 일본과 독도 영유권 갈등이 높아지자 독도 결혼식을 계획했고, 한 결혼전문업체의 후원으로 결혼식을 무사히 치렀다. 이들이 처음 연 ‘독도 초례청’이 수많은 예비부부의 신혼의 꿈을 실현하는 실효적 섬이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아 보였다.

독도/ 글·사진 <한겨레> 사진부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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