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엔 한국 수입중단 사유 5가지 명시
2008년 모두 삭제…독자적 수입금지 불가
2008년 모두 삭제…독자적 수입금지 불가
정부가 미국과 쇠고기 협상 추가 협의를 통해 ‘검역주권’에 관한 국제 규범을 서한 형식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여전히 실질적인 의미의 검역주권 확보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2006년 1월에 한-미 합의로 만들어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을 보면, 지난달 18일 타결된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 위생조건’에서 우리 정부가 검역주권을 얼마나 많이 양보했는지 쉽게 확인된다.
<한겨레>가 20일 2006년 수입 위생조건의 수입 중단 조처 관련 조항을 분석한 결과,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미국 정부 스스로 수입을 중단하게 하고, 한국 정부도 수입 중단 조처를 취할 수 있는 등 여러 조항에 걸쳐 명시적으로 ‘안전장치’가 확보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수입 위생조건은 4조에서 “미국 정부는 구제역, 우역, 우폐역, 럼프스킨병, 리프트계곡열이나 광우병이 발생한 때에는 즉시 한국으로의 쇠고기 수출을 중지하고, 미국 정부가 수출을 재개하고자 하는 때에는 한국 정부와 사전에 협의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미국 스스로 쇠고기 수출을 중지해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2008년 새 수입 위생조건에는 관련 조항이 교묘하게 바뀌어 있다. 2008년 수입 위생조건 3조는 이렇다. “구제역·우역·우폐역·럼프스킨병과 리프트계곡열이 미국 내에서 발생하는 경우, 미국 정부는 2조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모든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에 대하여 한국으로 수출검역증 발급을 증각 중단하여야 한다.” 광우병이라는 단어를 빼버려 광우병이 발생해도 미국 정부가 수출을 중단할 의무가 사라졌다.
2006년 수입 위생조건은 21조를 통해 광우병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수입 중단 조처도 상세하고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다. 21조 ‘가’항은 미국의 방역조처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여 미국 내 광우병 위험이 객관적으로 악화되었다고 판단되는 경우 우리 정부가 수입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면서 그 세부 내용 다섯 가지를 명시해 놓았다. △사료 규제 조처가 효과적으로 시행(1998년 4월)된 이후 출생한 소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때 △광우병에 감염된 소에서 유래된 육골분에 오염된 사료가 유통되어 추가 발생의 위험이 증대될 때 등이며, 이 경우 우리 정부가 즉각 수입 중단 조처를 취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21조는 “새로운 과학의 발달로 골격근육에서도 광우병 감염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등 광우병 위험이 추가로 확인되는 경우”와 “수출 쇠고기 작업장에서 수입 위생조건의 위반 사례가 반복하여 발생되거나 광범위하게 발생한다고 한국 정부가 판단하는 경우”도 우리 정부가 수입을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21조의 이런 조항들이 2008년 새 수입 위생조건에는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수입 금지 조처를 취하지 못하도록 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 수입하도록 한 2006년 수입 위생조건과는 달리 2008년 새 수입 위생조건은 광우병 위험이 큰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수입을 허용했음에도, 광우병 발생 때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안전장치는 완전히 포기했다. 한-미 추가 협의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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