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공판준비기일서 변호인·특검 증인신청 등 지지부진
“충분히 검토해서 명확한 견해를 밝혀 달라. 재판 진행이 안되고 있다.”
삼성사건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민병훈)가 2일 세번째 공판준비기일을 마치며 특검과 삼성 쪽에 던진 질책성 주문이다. 특검이 이건희(62) 회장 등을 기소한 지 이날로 46일이 됐지만, 세번째 준비기일을 열고도 증인 채택도 못하는 등 재판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피고인 없는 재판이 세 차례나 열리면서, 삼성 쪽 의도대로 재판이 끌려 가고 있다는 지적마저 제기되고 있다.
공판준비기일은 올해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따라 본 재판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검찰·피고인의 입장 정리 △증거·증인 신청 및 채택 △공판 일정 수립 등을 미리 논의하는 절차다. 이날은 양쪽의 증거·증인 신청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변호인과 특검은 앞선 준비기일에서 밝힌 입장을 반복하며 구체적 입증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삼성 쪽은 첫 재판부터 “대부분의 공소사실을 인정한다”고 전제하고는 구체적 공소사실들은 모두 부인하는 식의 변론을 반복하고 있다.
특검 쪽도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민 부장판사는 “비서실의 지시 여부를 확인하려면 박노빈 전 에버랜드 사장의 증인신문이 필요하지 않으냐”고 했지만, 윤정석 특검보는 “조서로 충분하다고 본다. 증인 직접신문은 최대한 보류하는 식으로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민 부장판사는 “첫 준비기일 때부터 제출할 증거와 무엇을 입증할지를 밝혀 달라고 말했다”며 양쪽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재판을 충실히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공판준비기일을 이건희 회장의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삼성 쪽이 이용하고 있고, 이에 특검과 재판부가 끌려가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특검 수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본 재판에서 다뤄야 하는 내용을 준비기일에서 다투는 등 삼성이 술책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