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법원이 권고해서”…고발인 “KBS가 제안”
검찰의 출석 요구를 일단 거부한 정연주(62) 한국방송 사장의 배임 혐의 논란의 핵심은 △법원의 조정권고로 끝난 소송 결과에 배임죄를 물을 수 있는지 △국세청의 법인세 재산정 의지 여부 등이다.
전 한국방송 간부 조아무개씨는 “항소심 승소가 확실해 법인세 1990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음에도 정 사장이 적자를 메워 사장을 계속하려고 의도적으로 556억원만 돌려받는 조정을 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며 지난달 14일 정 사장을 고발했다. 이에 대해 한국방송은 지난 13일 낸 보도자료에서 “소모적 분쟁을 종결하기 위해 법원의 조정권고를 통해 부당 부과된 세금을 돌려받았다”고 이를 반박했다. 법원이 조정한 일에 배임죄를 물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법원이 아니라 한국방송 쪽에서 먼저 조정을 제안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항소심 승소가 확실해 1990억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는 고발인 주장을 두고서도 입장이 갈린다. 한국방송은 “승소가 확정돼 세금을 돌려받더라도 향후 국세청이 새로운 산출방법으로 부과 처분을 내리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한국방송이 승소한 1심의 재판부도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정당한 법인세액을 산출할 수 없어 세금 전부를 취소한다”며 “추계조사에 의해 재산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고발인 쪽은 ‘국세청이 추후 법인세를 재산정한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한다. 한국방송과 서울지방국세청의 세금 소송을 맡았던 한 판사도 “정당한 법인세 산출이 당시 세무당국으로서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며 “한국방송이 556억원이란 ‘기준’을 먼저 제시했다면 국세청으로서도 아쉬울 게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안이 복잡하기 때문에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정 사장의 배임 혐의를 밝히려면 (검찰이)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말했다. 배임죄를 물으려면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제3자에 이득을 안겨주려는 고의성이 입증돼야 하는데, 정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배임 의도를 증명하는 게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결국 이사의 ‘경영 판단’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졌는지에 따라 유·무죄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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