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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최장집 “운동의 힘 제도화 하는 ‘좋은 정당’ 필요”

등록 2008-06-20 12:00수정 2008-06-20 14:54

최장집 교수.
최장집 교수.
정년퇴임 앞둔 최 교수 인터뷰
운동-정당, 서로 보완해야 새로운 지배 질서 형성
갈등 기반한 시민사회 힘 수용해야 민주주의 발전
최 교수는 사회 갈등에 뿌리 내린 좋은 정당이 서로 경쟁하는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가 보는 오늘의 한국 정치는 좋은 정당이 없는 체제다. 시민사회의 갈등 역시 제도정치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그는 “허약한 정당 구조 때문에 운동이 정당의 역할을 대행하는 한국의 독특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운동의 정치만으로는 실질적인 사회변화를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몇몇 자리와 언론 지면을 통해 최근 촛불집회의 한계를 지적했는데.

“한국에서 ‘운동’이 갖는 독특한 역할이 있다. 정당의 역할을 (시민사회의) 운동이 대행하고 있다. 운동이 없다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도 있다. 2008년 현재의 시점에서 운동의 역할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운동에 의존할 것인가. 운동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것은 민주화 이후 운동의 힘이 제도화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시민사회의 요구를 조직하는 정당이 제자리를 잡지 못한 결과다. 지금은 정당과 운동이 서로 분리되어 각각 재생산을 하는 구조다. 이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운동에 대한 비판이 촛불집회 등에서 드러난 시민의 에너지를 자칫 약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민주주의의 핵심원리는 대의민주주의다.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선거가 중요하다. 선거에서 다수를 점해야 집권할 수 있다.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선거에서 패배하면 국가를 운영할 수 없다. 운동에 나서는 사람들이 이 점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불만스럽다. 운동은 제도화를 지향하고, 정당은 운동을 기반으로 삼으려는 변화가 필요하다. 강력한 국가권력, 보수적 헤게모니(주도권), 재벌 지배구조 등이 버티고 있는 한국에서 이런 노력 없이는 보수적 지배질서를 바꾸기 힘들다. 촛불집회를 포함해 운동이 갖는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아무리 운동이 활성화된다 해도 시간이 지난 뒤에 실제 사회변화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는 회의적이다.”

국민투표·국민발의제 도입 회의적
정치역할 부정적으로 보게 할수도

-현재의 의회구조는 보수정당이 과점을 이루고 있다. 운동의 에너지를 제도화하려 해도 적절한 방도가 없지 않은가?


“정부 정책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운동의 역할은 항상 필요하다. 다만 운동이 제도를 대체하려는 성급함이 보인다. 민주주의는 정당이 중심이 되는 구조다. 운동의 힘을 정당과 연계해 제도 내부로 인입시키는 구조다. 이를 단번에 뛰어넘으려는 성급함이 (최근 촛불집회에) 있다. 급하다고 당장 그 구조를 엎을 수는 없다. 앞으로 4~5년 동안 좋은 정당을 만들어 내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 국민투표제나 국민발의제 같은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은 그리 현명하지 않다고 본다. 이는 정치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효과를 갖는다.”

-선거 승리를 강조하는데, 지난 대선 직전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괜찮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정부가 교체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평결이 내려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수용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져도 좋다, 지면 안 된다 등의 가치가 개입된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민주대연합을 하자는 주장에 반대했던 것은 분명하다. 민주파를 대표했던 기존 정부의 실패로부터 배워 새로운 기초 위에서 새로운 사회경제적 정책 대안을 조직하는 게 필요했다.”

-‘좋은 정당’의 출현을 말해 왔다. 좋은 정당이란 어떤 것인가?

“좋은 정당이란 게 특정한 이념 지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당만이 좋은 정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반한나라’만을 내건 지금의 민주당은 좋은 정당과 거리가 있다. 노동 문제를 포함해 한국 사회 갈등구조에 기반을 두고 시민사회의 힘을 수용하는 정당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정당 구조는 ‘2.5당 체제’ 정도가 아닐까 한다. 기존 보수정당 외에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정당이 두 축을 이루면서 노동 문제와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이 병립하는 것이다.


“대통령중심제 한계…의회중심제 개헌”

1인 권력집중 부작용·정치권 편의적 발상 비판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정계는 물론 학계와 시민사회 일각에서 개헌론이 제기된 적이 있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제안이 주를 이뤘다. 당시 최 교수는 이 논의에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에서 그는 개헌의 필요성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다.

-최근 출간된 계간 <비평>에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현행 대통령제의 부정적 효과가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썼다. 의회중심제 또는 혼합형 프랑스식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했는데.

“민주화 이후 여러 정권이 들어섰는데, 그동안 대통령중심제의 문제가 분명히 드러났다. 이제 개헌이 필요하다. 개헌의 핵심은 기존 대통령중심제를 바꾸는 것이다. 대통령 1인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집중된 반면, 이를 견제할 힘은 약하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권력구조인데도 대통령이 정치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정치적 혼란을 야기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대선에서 패배하면 정당의 역할도 그것으로 끝나 버린다. 이는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그랬고, 앞으로도 이 패턴이 되풀이될 것이다. 지금까진 권력 제도 문제에 신중하게 접근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적절한 시기에 개헌을 논의해 기존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나온 개헌 논의에 대해선 비판적 입장을 취했는데.

“정치인들이 정치적 국면 전환을 위해 개헌을 제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 제도를 깊고 넓게 논의할 수 없다. 관심의 내용도 틀렸다. 4년 중임제 도입과 총선·대선 시기 일치 등은 대통령제를 강화·확대하는 방향이다. 사실상 8년짜리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다.”

-프랑스 모델을 대안으로 보나?

“프랑스식 준대통령제는 의회중심제의 요소와 대통령제의 요소를 혼합한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 직선으로 뽑고, 의회 다수당이 총리를 맡아 대통령을 견제한다. 이런 제도에서는 정당의 역할이 커진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의회중심제가 가장 좋다. 정당이 너무 허약하긴 하지만, 의회중심제를 통해 오히려 정당을 강화한다는 차원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어떤 제도가 정당 발전의 기반을 제공할지에 초점을 둬야 한다. 의회중심제는 사회와 밀착한 정당이 제대로 발전하는 기반을 제공한다.”

-지금 정치권에서도 개헌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치적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자는 의도가 강하다. 정치적 편의가 만들어낸 문제제기다. 제도의 문제를 논의할 때는 광범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통령제를 강화하는 방향의 개헌은 막아야 한다.”


최장집 교수는 정당체제연구 천착한 ‘정치학계 좌장’

최장집 교수.
최장집 교수.
최 교수는 “내 안에는 독일의 관념철학과 영미의 경험주의가 공존한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홀로 파고들었던 독일 관념론, 그리고 유학 시절 익힌 미국의 경험주의적 과학방법론이 그것이다. 칸트, 헤겔, 홉스, 사르트르 등의 철학 서적을 난독했던 시절을 말하며 그는 잠시 얼굴이 상기됐다.

1980년대 중반 여러 진보 학자들과 함께 ‘한국산업사회연구회’를 만들던 시절도 돌이켰다. “연구회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지만 당시 젊은 학자들이 운동의 전략으로 급진 이론을 고민했던 것과는 거리를 뒀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그람시 이론, 코포라티즘 등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한편, 미국 정치학 이론을 근거로 한국 현실을 분석하는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90년대 들어 내가 많이 온건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은 그게 원래의 내 모습에 가깝다”며 최 교수는 웃었다.

정당체제에 대한 오늘의 관심이 형성된 것은 김대중 정부 이후라고 설명했다. 김대중 정부 초기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실제로 들어가 보니 시민사회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조직해 정책을 만들어내려는 문제의식이 너무도 부족했다”고 회고했다. 미숙함의 근본에 허약한 정당체제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이후 사회 갈등에 뿌리를 둔 정당체제에 대한 분석적 연구에 매달렸다.

퇴임 뒤 그는 서울 서교동에 개인 연구실을 마련할 계획이다. 시위 전력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다 유학을 가게 된 사연, 초대 논설위원으로 <한겨레> 창간 작업에 매달린 일 등을 말하면서 그는 많이 웃었다. 틈틈이 유로 2008의 주요 경기를 챙겨볼 정도로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이 노학자는 “앞으로도 현실 정치에 대한 집필과 발언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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