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주부대상 사이트 ‘82cook’ 회원들이 22일 오후 <조선일보> 계열사인 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조선의 편파·왜곡보도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정부·여당, 하루이용자 10만명 이상 실명제 검토
학계·법조계, ‘인터넷 실명제’ 이미 실효성 없어
포털 언론중재법 싸고도 찬반 엇갈려
학계·법조계, ‘인터넷 실명제’ 이미 실효성 없어
포털 언론중재법 싸고도 찬반 엇갈려
정부와 여당이 누리꾼의 불법행위를 막겠다며 인터넷 세상을 규제할 다양한 제도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학계와 법조계 등에서는 정부 여당이 거론하는 규제 방안에 적잖은 우려를 하고 있다. 누리꾼들의 불법행위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기술적·강제적인 규제에 너무 의존하다 보면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이버 세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 확인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린 누리꾼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만들어 ‘익명’을 통한 불법행위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시민단체와 학계·법조계 전문가들로 연구반을 꾸려, 인터넷 실명제 효과와 확대 필요성 등을 검토하고 있다.
현행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보호 등에 관한 법은 하루평균 이용자 수 10만명 이상 사이트를 인터넷 실명제 적용 대상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방통위는 시행령을 통해 지금은 하루 이용자 수 30만명 이상인 포털사이트와 20만명 이상인 뉴스 사이트에 대해서만 인터넷 실명제를 강제하고 있다. 방통위는 앞으로 인터넷 실명제 적용 대상을 법대로 하루 이용자 수 10만 이상의 모든 사이트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본인 확인을 넘어 게시판에 글을 작성할 때도 실명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학계 전문가들은 인터넷 실명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주민등록번호 수집과 도용을 확대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연구교수는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됐는데도 촛불집회 진압에 나선 전경들의 신상이 노출되는 등 심각한 인격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데서 보듯, 인터넷 실명제는 이미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학웅 변호사(법무법인 창조)는 “미국의 연방 대법원 판례도 익명성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가운데 긍정적인 면을 더 중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사 욕설이 들어간 표현일지라도 정치적 비판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정부가 합리적인 권리 침해 방지 제도 마련에 대한 고민 없이, 내용에 대한 규제 방안부터 마련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우리나라는 인터넷에 대한 규제가 심한 편에 속하며, 특히 표현의 자유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유의 억압 정도가 세다”고 평가하고 “권리 침해에 대한 규제가 매우 모순적으로 집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인에게는 자살에 이르게 할 정도의 공격에도 규정 적용이 느슨한 반면, 최근 상황에서 보듯이 권리 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보수 언론 등에는 규정이 강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포털에서 명예훼손 자체보다는, 이런 것들이 급속도로 퍼지는 게 문제이므로, 일단 이를 막아야 된다”며 “그러나 포털 사업자가 임의로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차단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단 한 곳에 몰아놓고 열람이 가능하게 하되 이용자들에게 퍼나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경고를 하자”고 제안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뉴스를 다루는 포털도 언론중재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포털의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의도지만, 이에 대해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김학웅 변호사는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서 포털이 언론과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으므로 규율이 필요하며”며 “그러나 규율의 수준은 인터넷 신문보다 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은 “포털이 독자적으로 생산한 정보가 있다면 법 적용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겠지만, 기존에 생산된 뉴스를 재배치하는 정도를 언론으로 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와 학계 전문가들은 이런 점을 들어 개인의 인격권 보호와 표현의 자유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누리꾼, 시민단체 및 전문가, 사업자들이 공동으로 규제에 대해 논의하는 방식의 자율 규제를 고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원 서강대 교수(언론학)는 “정부가 일일이 모든 사안을 규제하도록 하는 것은 효율성이 낮다”며 “협회나 회사 차원에서 자율 규제를 하고, 소비자와 핫라인으로 연결된 규제 당국이 자율 규제를 모니터링해 견제와 감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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