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 장군은 고마운 할아버지야”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정말 고마운 할아버지잖아. 그런 분을 기리는 표석이 더러워졌으면 닦아주는 것이야 당연하지. 갑자기 왜들 이리 호들갑인지 모르겠어.”
서울 중구 명보극장 앞에서 신문가판대를 운영해온 이정임(69) 할머니는 매일 아침 출근 뒤엔 물수건을 들고 가판대 옆에 세워진 충무공 이순신장군 생가 기념표석을 찾는다. 밤새 행인들과 동물들로 인해 더러워진 표석을 닦기 위해서다. 낮에는 쓰레기를 버리고 표석에 올라앉는 젊은이들을 나무라는 일에도 열심이다.
인근 상인들 사이에서 ‘이순신 할머니’로 통하는 이씨의 이런 선행은 지금부터 20년 전인 1985년부터 시작됐다. 출근길에 살펴본 표석은 매일 아침 새들의 배설물과 술 취한 사람들의 구토물로 더럽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충무공 사랑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충무공이 탄신일인 4월 28일이면 고기와 과일 등을 싸들고 와서 표석 앞에서 제사도 지냈다. 주변 상인들도 제사 때면 1~2만원씩 정성을 보탰고, 제사를 마친 뒤에는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했다.
“보통 아침 7시에 제사를 지내는데, 올해는 좀 일찍 서둘러야겠어. 7시에는 명동 지하철 역에서 무료신문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야 되거든. 내가 좀 바빠 조금 일찍 제사를 치르는 것인데, 할아버지도 이해해 주실거야.”
할머니의 이런 선행이 알려지자 1998년 충무공의 후손인 덕수 이씨 종친회는 할머니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매년 충무공 탄신일 행사에도 초대하고 있다. 중구청도 올해 충무공 탄신일 기념식을 준비하면서 이 할머니에게 표창장을 주기로 결정했다.
최근, 독도 문제와 교과서 왜곡 문제를 만들어낸 일본에 대해서는 “정치인들이 문제이지 젊은 일본 청년들이야 뭘 알겠냐”고 답한 할머니는 “적어도 가판대를 내가 운영하는 날까지는 할아버지 표석 청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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