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재판부 쟁점별 판단 이유
재판부 쟁점별 판단 이유
‘에버랜드’ 무죄, 기존 판례와 상충되는 논리 제시
SDS 배임논란도 ‘가중처벌 조항’ 피해 “시효만료”
‘에버랜드’ 무죄, 기존 판례와 상충되는 논리 제시
SDS 배임논란도 ‘가중처벌 조항’ 피해 “시효만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민병훈)는 16일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 또는 면소 판결을 내리면서 기존 판례와 상충되는 여러 논리를 제시했다. 조준웅 특별검사는 재판부의 논리를 반박하면서 항소 방침을 밝혀 이 전 회장 재판은 서울고법에서 다시 한 번 치열한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전환사채가 주주배정이 아닌 제3자 배정방식으로 발행됐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기존 주주들에게 인수권이 실질적으로 주어졌는지 여부를 유무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특검은 ‘주주배정 뒤 실권이 발생하면 제3자 배정한다’고 한 1995년 10월30일 이사회 결의를 무효로 보면서 “이건희 회장 및 그룹 비서실이 제3자 배정방식을 통해 이재용 전무에게 회사 지배권을 넘겨줄 목적으로 전환사채 발행이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룹 비서실이 이재용 전무 등에게 전환사채 실권분이 배정되도록 발행을 지시하거나 적어도 실권지시 등으로 개입했다”며 ‘그룹 차원의 경영권 승계’ 의혹을 인정했다. 하지만 “의결 정족수에 미달된 이사회의 결의엔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신주 발행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며, 주주배정이 아닌 제3자 배정방식으로 봐야 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법인주주들의 실권이 계획된 것이었음에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에버랜드의 이사들이 헐값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주주들은 이를 실권해 이재용 전무에게 배정되게 했더라도 이는 주주들이 자신의 지분 중 일부를 증여한 것으로 봐 증여세 부과로 규율할 문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인주주의 임원들이 실권으로 법인에 손해를 끼친 점은 해당 법인에 대한 배임죄가 성립할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 삼성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발행 에스디에스가 책정한 7150원의 신주인수권 행사가격 적정성이 쟁점이었다. 특검은 공소장에서 “당시 5만5천원의 장외거래 가격이 존재했음에도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저가로 책정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신주인수권부사채가 발행된 1999년 2월26일을 전후로 삼성에스디에스의 주식이 거래됐고, 거래가격이 5만5천원 정도인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주식의 유통량이 적어 회사의 가치와 별개로 가격이 정해졌을 가능성이 큰 점” 등을 들어 특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5만5천원은 서울국세청이 2000년 4월 시민단체의 고발에 대한 조사를 통해 밝혀낸 가격이자 이재용 전무가 낸 증여세부과 취소소송에서 행정법원이 인정한 가격이지만 재판부는 “형사재판의 입증 정도는 행정재판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재판부는 상속 및 증여세법의 미래수익가치를 고려한 평가방법과 주당 순이익액 및 증가율을 고려해 “주당 순이익 증가율을 연 40%로 볼 경우 44억원, 연 30%로 볼 경우 30억원의 손해가 산정됐다”며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이 아닌 업무상 배임에 해당하는 금액(50억)이며, 따라서 공소시효 10년이 이미 만료됐다”고 결론지었다.
■ 차명주식 거래로 인한 양도소득세 포탈 차명계좌를 통한 주식거래 행위가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하느냐가 쟁점이었다. 판례는 “조세의 부과징수를 불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위계 기타 부정한 행위를 말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재판부는 상장주식의 양도소득에 대한 과세규정이 신설된 1999년 1월1일을 전후로 다른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규정이 신설되기 이전의 차명 주식으로 인한 주식 양도 행위는 ‘주식의 양도와 양도소득세의 미신고’라는 행위만 있을 뿐 위계 기타 부정한 행위라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차명으로 주식을 취득할 당시엔 이를 양도하는 경우 양도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없었다”는 점도 덧붙였다.
하지만 1999년부터 차명으로 취득한 주식을 양도한 경우에 대해서는 “양도차익을 목적으로 한 경우가 아니라고 보이지만 다수의 차명계좌 이용과 계좌 사이의 연결을 차단하려는 현금입출금 거래 등을 종합하면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기소된 것보다 줄어든 탈세액에 해당하는 공소시효 5년이 적용되는 2003년 이후의 행위만 유죄로 인정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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