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00일을 말하다]
촛불이 지핀 민주주의 논쟁
촛불이 지핀 민주주의 논쟁
“거리정치론 민주주의 발전안돼” 반론도
촛불 100일의 뜨거운 촛농은 학계에도 떨어졌다. 민주주의를 화두 삼아 새로운 학문적 상상력을 펼쳤다.
시민사회 분야를 연구해온 사회학자들이 촛불에 가장 먼저 주목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엔지오학) 등은 촛불 초기부터 ‘새로운 주체’의 등장을 높게 평가했다. 시민사회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운동 주체, 즉 ‘이성적 군중’의 시대가 왔고, 이들이 정당보다 더 강력한 민주주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발 더 나간 학자 집단도 있다.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조정환 다중지성 상임강사 등의 ‘탈근대론자’들이다. 이들은 ‘탈주’ ‘다중’ 등 탈근대적 개념을 빌어 위계와 중심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개인의 가능성에 주목해 왔다. 탈근대론은 촛불 시민의 ‘집단 지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논리로 새롭게 각광을 받았다. 제도화된 권력을 불신하고 개인의 직접 행동을 강조하는 이들의 논지는 직접 민주주의 주창자들의 사상적 바탕을 이뤘다.
비판적 지식인들이 ‘이성적 군중’을 발견하는 동안, 보수적 지식인들은 ‘우매한 군중’을 경계했다. 소설가 이문열,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 등이 대표 인물이다.
진보-보수 학자들의 대대적 논쟁은 전개되지 않았다. ‘촛불 시민’에 대한 인식차가 워낙 커서 마주 앉을 중간지대가 없었다. 대신 새로운 접점이 형성됐다. 촛불이 최고조에 다다른 6월 중순,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논의에 뛰어들었다. 그는 ‘거리의 정치’가 아니라 ‘제도의 정치’에 기초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가 보기에 촛불 집회는 정당이 아닌 운동에 의한 정치였고, 민주주의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는 제도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자들과 닮았지만, 법이 아니라 정당의 역할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것이기도 했다.
촛불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던 7월부터 이에 대한 본격적 비판이 시작됐다. 젊은 지식인 집단인 ‘지행네트워크’의 논지가 두드러졌다. 단체의 주축인 하승우 한양대 교수, 오창은 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 문학평론가 이명원 등은 “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시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는데, 그들에게 대의제로 다시 돌아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최 교수를 비판했다.
8월 들어 잦아든 촛불에 대해 보수 논객들은 ‘정상적 민주주의’가 다시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반면 비판적 지식인들의 최근 논의는 ‘직접 민주주의의 제도화’로 모여지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새로운 시민 연대가 표출한 정치적 열망을 실현할 정치세력과 제도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