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 창립 100돌 김승곤 회장
한글학회 창립 100돌 김승곤 회장
건물 세 받아 근근히 학회운영…정부·민간 도움 절실
젊은회원 참여 확대…“영어몰입, 우리말 죽여” 일침
건물 세 받아 근근히 학회운영…정부·민간 도움 절실
젊은회원 참여 확대…“영어몰입, 우리말 죽여” 일침
여든 한 살의 김승곤(사진) 한글학회장은 요즘 나이를 잊었다. 의욕에 넘친다. 할일도 많다. 창립 100돌이 된 한글학회를 새로 일으키는 일이다. “이 회관(신문로 한글학회 건물)이 5층인데, 1층부터 4층까지 세를 줘서 학회를 운영합니다. 민간학술단체이다 보니 수입이 따로 없거든요. 연구 활동은 물론이고 학회 운영도 힘듭니다.”
김 회장은 한글 기념관을 새로 지으려 한다. 그곳에 한글도서관과 연구 공간을 마련하는 게 꿈이다. 정부와 민간에 걸친 도움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 “한글을 만든 것은 세종대왕이지만, 우리 문법을 만든 것은 주시경 선생입니다. 그가 만든 국어연구학회(한글학회의 전신)에서 내로라하는 한글학자와 국어학자들이 배출됐지요. 그 전통을 잇고 싶습니다.”
한글학회를 둥지 삼은 학자들은 광복 이후의 국어학계를 이끈다. 일제 강점 아래서도 우리 말글을 지키려다 고초를 겪은 ‘조선어학회 사건’, 사상 첫 국어사전인 <큰사전> 발간 등은 모두 한글학회의 업적이다. 다만 그 위상이 예전 같지는 않다. “한글학회는 순한글 전용을 주창했지요. 그런데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분들이 60년대 이후 국내 학계의 주류를 형성했습니다.” 김 회장의 어깨가 무거운 것도 그 때문이다. 한글학회의 활성화는 순한글전용의 정신을 되살리는 일과 맞물려 있다. 그는 순우리말과 한글을 쓰는 일이 더 확산돼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말글이 공용어로 널리 쓰인 것은 광복 이후 63년밖에 안 됐습니다. 자기 말과 글을 오랫동안 사용한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그는 우리 말글 확산의 핵심을 ‘어휘’에서 찾는다. 김 회장이 보기에 우리 말글의 어휘는 턱없이 빈약하다. 1957년 한글학회가 펴낸 <큰사전>의 어휘 수준에서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다. “해방 전후의 혼란스런 상황에서 우리 학자들이 어휘 수집을 충분히 하지 못했어요. 이제라도 해야지요. 옛말 사전, 방언 사전, 외래어 사전, 속담 사전, 남북 지명 총람, 국어학 사전 등도 펴내야 하고요.” 그는 언어 교육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이른바 ‘영어 몰입교육’과 같은 정책이 우리말을 죽인다는 것이다. “우리말을 잘 모르는 초등학생이 외국어부터 배우면 우리 어휘를 쓰지 않게 됩니다. 쓰지 않으면 언어는 죽습니다. 우리 말글부터 철저히 가르치고 난 뒤에 외국어를 하는 게 당연합니다.”
현재 한글학회에는 600여명의 정회원이 있다. 주로 교수나 학위 소지자들이다. 정회원이 되려면 기존 회원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입회 심사도 거친다. “저는 더 많이 개방했으면 좋겠어요. 일반인들에겐 한글학회의 문턱이 높거든요. 교사나 문인, 젊은 사람들이 학회에 활발히 참가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고 싶습니다.” 깐깐한 학자들이 모인 한글학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한글학회는 오는 30일 건국대에서 창립 100돌 기념식을 연다.
글 안수찬, 사진 신소영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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