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지는 죄수의 마음을 데웁니다”
안이영(41·대구시 중구 남산동)씨는 사흘이 멀다 하고 담장 너머로 편지를 쓴다.
“거기도 여름 날씨죠? 지난번에 보내준 책은 재미있게 읽었나요? 저는 오늘 퇴근길에 차비를 잃어 버려 울고 있던 아이에게 돈 천원을 쥐어주고 버스를 태워 보냈습니다.”
편지에 특별한 사연은 없다. 안씨는 자신의 사소한 일상을 시시콜콜 적어 보내고, 담장 안에 갇힌 그는 그의 일상을 적어 보낸다. 올해로 12년째다. 안씨의 편지를 받는 ‘그’는 낯모르는 재소자이고, ‘거기’는 교도소다.
안씨에게 그는 14번째 편지 친구다. 20여 년 전 절친한 고등학교 친구가 소년원에 갇혔다. 그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부터 담장 안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지금까지 안씨가 전국의 교도소로 보낸 편지는 어림잡아 2천통이다. 답장은 너덧 통에 한 통 꼴로 온다. 교도소에 드나드는 스님이나 교도소 직원들로부터 재소자들을 소개 받아 편지를 보낸 뒤 답장을 보내오는 이들과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다.
4~5년씩 편지를 주고받다보면, 책이나 속옷, 용돈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어렵게 꺼내는 재소자들도 있다. 대부분 가족들과 연락이 끊어진 사람들이다. 대구 성서의 한 도금공장에 다니는 안씨는 넉넉하지 못한 월급을 쪼개 필요한 물건을 사서 보낸다. “갇혀 있는 사람이 오죽하면 낯모르는 사람에게 손을 벌리겠습니까.”
그는 어눌한 말투만큼이나 글 솜씨도 고르지 못하다. 그러나 남들이 말하는 ‘온갖 나쁜 죄’를 지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다 보니, 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헤아린다. 속내까지 다 털어놓을 만큼 친해진 이들 가운데는 출소한 뒤 안씨의 주소를 들고 찾아오기도 한다. 안씨는 출소한 뒤에는 편지를 주고받은 이들과 절대 만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저와 인연은 새 삶을 준비할 때 인연이고, 새 삶을 시작하면 새로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죠. 갇혀있는 동안 말벗이 돼주는 것으로 제 몫은 다 한 거죠.”
몇 해 전에는 경북 성주에서 여든 살 할머니가 “아들에게 편지를 써줘서 아들이 딴 사람이 됐다”는 인사를 전하러 버스를 세번이나 갈아타고 그를 찾아왔다. 안씨는 그날 할머니가 놓고 간 참외 두 개를 울면서 먹었다고 한다. “돈 3천원만 있으면 어딜 가도 마음이 든든하다”는 안씨는 “어려운 사람 심정은 어려운 사람만 안다”고 말한다. 이래서 주변 사람들은 안씨를 두고 “마음 온도가 500℃”라고 하는 모양이다. 대구/글·사진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몇 해 전에는 경북 성주에서 여든 살 할머니가 “아들에게 편지를 써줘서 아들이 딴 사람이 됐다”는 인사를 전하러 버스를 세번이나 갈아타고 그를 찾아왔다. 안씨는 그날 할머니가 놓고 간 참외 두 개를 울면서 먹었다고 한다. “돈 3천원만 있으면 어딜 가도 마음이 든든하다”는 안씨는 “어려운 사람 심정은 어려운 사람만 안다”고 말한다. 이래서 주변 사람들은 안씨를 두고 “마음 온도가 500℃”라고 하는 모양이다. 대구/글·사진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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