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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우리는 왜 이건희회장 학위수여에 반대했나?

등록 2005-05-04 17:50수정 2005-05-04 17:50

2일 이건희 저지 시위를 벌였던 ‘다함께 고려대모임\' 소속 학생 10여명이 4일 오후 학교 후문에서 자신들의 시위가 정당했다며 학내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박종찬 기자
2일 이건희 저지 시위를 벌였던 ‘다함께 고려대모임\' 소속 학생 10여명이 4일 오후 학교 후문에서 자신들의 시위가 정당했다며 학내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박종찬 기자

[인터뷰] 고려대 시위 주도한 ‘다함께 고대모임’ 서범진씨

개교 100돌을 맞아 대규모 기념행사를 잇따라 열 계획인 고려대의 ‘웅대한’ 구상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명예철학박사 학위수여식 저지시위 후폭풍에 휘말렸다.

지난 2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릴 예정이던 이건희 삼성 회장의 학위수여식을 일부 학생들이 저지한 데 대해 고려대 보직교수들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이례적으로 집단사퇴서를 냈으며 어윤대 총장은 이 회장에게 사과문을 전달했다.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에 대해 언론들은 “예의가 없고, 열린 사고와 거리가 멀고, 폭력적”이라며 학생들의 ‘버릇없는’ 태도를 질타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홈페이지에는 이번 시위를 주도한 세력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시위 학생들 4일 학내선전전
“시위는 정당했다. 징계시도 철회하라”


2일 ‘이건희 저지 시위’에는 고려대 학생운동 단체인 ‘다함께 고려대모임’과 총학생회, 수여식에 반대하는 학생 150여명이 참여했다.

 시위에 참여한 ‘다함께 고려대모임’ 등은 4일 오후에 고려대 후문에서 자신들의 시위가 정당했으며 학교쪽이 시위 학생들을 징계하려는 것이 부당하다는 선전전을 벌였다. 학생들은 “노동탄압 범죄자에 학위수여 철회하라”, “이건희 경영철학 납치·감금, 폭행·협박, 핸드폰 위치추적, 이건희는 노동탄압 박사다”, “이건희 저지 항의 시위 정당하다. 징계시도 철회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 고려대 시위를 주도한 서범진 ‘다함께 고대모임’ 대표. 그는“노동탄압의 대표적인 기업가인 이건희 회장이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으러 오는데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들어가 자랑스럽게 학위를 받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시위를 벌였다”고 말했다. 박종찬 기자
<한겨레>는 이건희 회장 저지 시위를 주도한 ‘다함께 고려대모임’ 서범진(22·철학과 4년) 대표를 만나 이들이 비난을 무릅쓰고 시위에 나선 이유를 들었다.

서 대표는 자신들이 이건희 저지 시위에 나선 이유를 조목조목 밝히면서 “학교당국과 보수언론 등이 우리가 왜 시위를 했는지 본질적인 문제는 이야기하지 않고 시위 방식의 폭력성만을 문제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 대표는 “노동탄압의 대표적인 기업가인 이건희 회장이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으러 오는데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들어가 자랑스럽게 학위를 받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시위를 벌였다”며 “이건희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있고 이건희가 탄압한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노조를 모조리 박살내, 노조를 만들 수 없게 만든 ‘피의 경영’ 이었고, 폭행, 납치, 감금, 핸드폰 위치추적 등의 방법이 동원되었다”며 “우리는 삼성의 노동탄압을 주도했던 이건희가 우리학교에서 철학명예박사학위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이 학교에 기부금을 내고 학교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학위장사를 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현재 진행되는 기업의 대학투자는 기업의 이윤을 늘리기 위해 대학과 학문을 종속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대표는 폭력을 행사했다는 부분에 대해 “이건희 회장을 물리적으로 폭행할 계획이 없었다”며 “오히려 학교당국이 교직원과 운동부 학생들을 불러다가 행사장 주변에 위압적 분위기를 조성했고 우리의 뜻을 강력하게 알리려는 과정에서 우발적인 몸싸움이 벌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몸싸움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쪽은 오히려 학생들이었다. 한 여학생은 귀가 찢어졌고 학생 4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자제를 요청하던 학생 대표는 학교 직원들에게 얼굴을 얻어 맞았다”며 “이번 일을 폭력사태로 매도하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정치적 의도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서 대표는 보직교수들의 사퇴와 총장의 사과에 대해 “학생들이 모여 집회를 할 때는 꼼짝도 하지 않더니 이건희가 한번 기침하니 뒷꽁무니를 빼는 것이냐”며 “대학이 기업에 종속되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학생들 반응“이건희에 반대할 수 있으나 폭력은 안돼” 

하지만, 시위 학생들의 선전전을 지켜보는 동료 학생들의 생각은 복잡해 보였다. 학생들은 이건희 회장에 명예철학박사를 준 학교 당국의 태도에 찬반이 엇갈렸다. 그러나 학생들은 시위 학생들의 주장이 정당할 지라도 “초대받은 손님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무례한 행위”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원생이라는 이명수(27)씨는 “우리나라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시위 학생들이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탄압한 이건희 회장에게 철학명예박사를 주는 것을 충분히 반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씨는 “평화적으로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었음에도 폭력적인 방식을 써 100주년을 맞는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킨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운동권 출신이라는 졸업생 엄아무개(30)씨도 “대학생들의 도덕기준은 민간인보다 훨씬 엄격해야 한다”며 “푹력적인 방식은 문제지만 시위 학생들이 이건희 회장의 노동탄압과 학위 수여에 문제제기하는 것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평화적 100주년 행사·폭력 규탄 1인시위도
학교 이미지·취업 걱정 우려하기도

 
▲ 시위 학생들이 선전전을 벌인 맞은 편에서 평화적인 100주년 행사를 바란다며 1인시위를 벌인 이승준(25·국문과 3년)씨는 “주장할 자유는 있지만 폭력시위는 절대 안된다”고 주장했다. 박종찬 기자
시위 학생들이 선전전을 벌인 맞은 편에서 평화적인 100주년 행사를 바란다며 1인시위를 벌이던 이승준(25·국문과 3년)씨의 주장도 비슷했다.

 이씨는 “이건희 회장을 좋아하지도 않고 400억원을 기부한 대가로 명예박사 학위를 준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폭력적인 방법은 절대 안된다. 조용히 피켓시위만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알리면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학년들은 이번 시위가 학교의 이미지와 자신들의 취업에 미칠 영향을 좀더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최승진(21·전기공학과 2)씨는 “삼성에 고대생들이 많이 취직을 하고 있는데 시위 학생들은 취업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며 “삼성에 근무하는 고대 선배들이 숨죽이고 있다고 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씨는 삼성의 노동탄압과 관련해서도 “세상에는 빛과 그늘이 있는 법”이라며 “이회장과 삼성이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위수여·기부도 문제될 것 없어”

 김 아무개(24·생명과학대 4)씨는 “시위를 벌인 학생들은 고대생 가운데 5%도 되지 않은 소수에 불과한데 그들이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왜곡되고 있다”며 “대부분의 고대생들은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박사를 준 것에 대해서도 학교가 기업의 기부금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학교가 기업의 기부금을 받아서 좀더 좋은 환경에서 경쟁력을 강화한다면 학교와 기업, 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다”며 “그런 것을 시위학생들처럼 싸잡아 신자유주의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래는 ‘다함께 고대모임’ 서범진 대표와 인터뷰 전문이다.


“이건희에 철학박사라니 인문학을 액세서리로 보나”

▲ 고려대 시위 주도한 서범진 ‘다함께 고대모임’ 대표. 박종찬 기자
-왜 이건희 저지 시위를 벌였나?
=이건희는 폭력적 방식으로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온 대표적인 기업가이다. 그런 사람이 우리 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 그가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들어가 자랑스럽게 학위를 받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시위를 벌였다. 이건희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있고 이건희가 탄압한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왜 이건희가 고려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으면 안된다는 말인가?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노조를 모조리 박살내 노조를 만들 수 없게 만든 ‘피의 경영’ 이었고, 폭행, 납치, 감금, 핸드폰 위치추적 등의 방법이 동원되었다.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줄 수 있느냐. 학교당국은 이건희가 낸 학교 기부금 400억원에 대한 보답으로 학위 장사를 하려는 것이다. 이건희에 철학박사 학위를 준다는 것에 문과대 학생들이 가장 반대를 했고 어이가 없어 했다. 그날 시위에도 문과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나왔다. 인문학을 대놓고 무시하고 액세사리 취급을 하는 것이냐?

“오히려 학생들이 맞았다”

-학교당국은 물론 학생들도 폭력적인 방식은 문제라는 비판이 많은데?
=이건희 회장을 물리적으로 폭행할 계획은 애초부터 없었고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시위도 메이데이 행사준비에 바빠 많이 준비하지 못했다. 시위 대자보도 하루 전날 붙었다. 그런데도 150여명이나 참여한 것은 이 사안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반증한다. 우리는 이건희에 목소리를 높여 항의했고 더 가까이에서 항의하려고 이건희를 쫓아갔을 뿐이다. 오히려 학교당국이 교직원과 운동부 학생들을 불러다가 행사장 주변에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고 우리의 뜻을 강력하게 알리려는 과정에서 우발적인 몸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시위과정에서 벌어진 하나의 에피소드일 뿐이었다. 몸싸움 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쪽은 오히려 학생들이었다. 한 여학생은 몸싸움 과정에서 귀가 찢어졌고 4명이 부상을 당했다. 자제를 요청하던 학생 대표는 학교 직원들에게 얼굴을 얻어 맞았다. 오히려 폭행을 당한 쪽은 학생들이다. 그런데도 학교당국과 보수언론이 이번 일을 폭력사태로 매도하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정치적 의도일 뿐이다.

-어윤대 총장은 이번 일을 외부세력과 연계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외부세력이 있었나?
=시위 참가자들은 다함께 고대모임 회원과 자발적으로 나온 고대생이 전부다. 다른 학교 학생은 한명도 없었다. 노동자는 딱 1명 있었다. 연대발언을 하기 위해 삼성 에스디에스 해고 노동자가 참여했다. 외부세력이 개입되었다는 총장의 발언은 완전히 왜곡됐다.

“보직교수 사퇴는 오버, 자본에 굴종 보여주는 것”

-보직교수들이 사퇴하고 시위 학생들에 대한 징계 이야기도 나오던데…
=보직교수들이 사퇴한 것은 완전히 오버다. 학생들 이야기 듣지도 않더니 이건희가 한번 기침하니까 뒷꽁무니를 빼는 것이냐. 우리 사회 대학이 기업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또 보직교수들의 사퇴는 학생들에 대한 징계의 전 수순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약 그렇게 진행된다면 이는 학교의 수치다.

-삼성이 학교에 기부금을 줬을 때는 어떤 행동을 취했나?
=학교는 삼성 기부금을 쥐도 새도 모르게 받았다. 전혀 공개되지 않았고 뒤늦게 알았다. 학교가 기부금 내역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안다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이건희가 명예박사학위를 받으러 온다고 하기에 시위를 벌인 것이다.

“기부금 받아 학생들에 혜택 돌려줬나”

-재정이 열악한 대학의 입장에서 기업의 기부금이 학교운영에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는 것 아니냐?
=기부금으로 혜택을 본다고 넙죽 아무 돈이나 받을 수 있느냐? 그런 태도는 지성인으로서 어떤 성찰도 없는 것이다.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등록금도 오르고 기업 기부금도 받는데 이에 비례해서 교육환경은 왜 개선되지 않는지 따져봐야 한다. 학교는 기부금을 받아 공개하지도 않고 마음대로 관리한다. 추상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기부금이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오고 있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삼성 이건희=노조탄압’이라는 등식이 어느 정도 설득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삼성을 초일류라고 추켜세우는 것은 기업의 경영과 성장이 노동자 탄압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논리를 인정하는 꼴이다. 설령 노동탄압이 초일류기업의 전제조건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옳지 못한 것이 사실이 아니냐? 노조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협박하고, 해고시키는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할 것이 아니라 고치라고 사회적으로 삼성과 이건희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맞지 않나?

“우린 ‘민족 고대’ 자존심을 지켰다”

-이번 시위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오히려 우리의 시위는 학교의 이미지를 더 높였다. 이건희가 레드카펫을 밟고 올라가 오케스트라 연주의 환호속에 자랑스럽게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민족고대의 수치다. 4.19부터 민주화를 이끌었던 고대의 전통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 [한토마 논객글]이번 시위에 가담했었던 학생입니다(R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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