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렉 보웬이 부인과 함께 연천군 구석기 축제에 온 유치원생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주먹도끼 복제품을 보여주면서 발견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연천/유신재 기자
“27년전 흥분 되살아나”
1977년 봄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한탄강변을 젊은 주한미군 병사(당시 상병)가 한국인 여자친구와 함께 거닐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탄강의 주변의 풍경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끔 발끝으로 돌을 차거나 허리를 숙여 돌덩이를 집어들었다. 그러기를 한참. “이것 봐! 내가 뭘 찾았는지 보란 말이야!” 그는 집어든 돌을 여자친구 눈앞에 흔들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그 유명한 전곡리 주먹도끼였다. 경기 연천군 전곡리 구석기유적(7~8만년에서 30만년 전으로 추정)을 처음으로 발견한 미국인 그렉 보웬(54)이 27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4일 연천군 구석기축제에 참석한 그는 “이곳에 다시 오니 처음 주먹도끼를 발견했을 때의 흥분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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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 여자친구와 한탄강변 거닐다
구석기 유물 발견 고고학자에 알려
이듬해 서울대 발굴조사 사적 지정
미국 캘리포니아 빅터밸리 대학에서 2년 동안 고고학을 공부하다 학비를 벌려고 군에 입대한 그는 74년부터 한국에 파견돼 동두천 미군기지에서 근무했다. 부대 주변 한탄강에서 오래된 충적지를 발견한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말마다 한국에서 사귀기 시작한 여자친구와 함께 한탄강변을 쏘다녔다. 주먹도끼를 발견한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이곳을 더욱 샅샅이 뒤져 아슐리안형 석기 여러 점을 추가로 발견하고는 발견지점을 지도에 기록했다. 그는 막사에서 틈틈이 작성한 보고서를 세계적인 고고학 전문가인 프랑소와 보르도(프랑스) 교수에게 보냈고, 보르도 교수는 1978년 4월 서울대 고고학과를 소개해줬다. 서울대는 곧바로 전곡리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작했고, 전곡리 구석기 유적은 그 이듬해 국가 사적 268호로 지정됐다. 보웬의 발견은 기존 고고학계의 학설을 뒤엎은 커다란 사건이었다. 당시 고고학계는 유럽·아프리카와는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지 않아 찍개류의 석기문화만 존재한다는 모비우스 교수의 ‘구석기문화 이원론’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보웬의 발견 이후 동아시아에서 본격적으로 구석기 유적이 발굴되면서 이 이론이 수정됐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이선복 교수는 “보웬이 전곡리 유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경지정리를 하면서 중요한 유적이 모두 사라질 뻔했다”며 “보웬의 발견 이후 한강 이북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돼 임진강 유역에서 60여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보웬은 1978년 군에서 제대한 뒤 미국으로 돌아가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고고학 공부를 계속했다. 81년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미국 곳곳의 발굴현장을 뛰어다녔다. 88년부터 애리조나주 나바호 인디언보호구역에서 발굴책임자로 일한 그는 98년 악성 관절염에 걸려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다. 위대한 발견을 함께 한 여자친구 이상미(51)씨는 그의 아내가 되었고, 애리조나주 투산에서 외동딸 섀넌(21)과 함께 살고 있다. 보웬은 “한국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 두 가지를 줬다”며 “그것은 전곡리 구석기 유적과 나의 아내”라고 말했다. 연천/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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