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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기고]진정한 ‘프로’를 위하여

등록 2005-05-05 19:44

검사들끼리 서로를 (성씨를 앞에 붙여서) ‘○ 프로’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검사를 영어로 프로시큐터(prosecutor)라고 하니까 편의상 줄여서 ‘김 프로’, ‘박 프로’ 한다는 설명이었다. 검사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라는 사실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그런 프로의 초년생에 해당하는 평검사들이 2년 만에 입을 열기 시작했다. 평검사들은 법무부 장관이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과 협의해 내놓은 형사소송법 조정안이 ‘국민의 참여가 배제된 일종의 타협에 불과하므로 그 절차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개정안 다양한 전문가 참여

정말 사개추위의 형소법 개정안이 자기 멋대로 한두 달 만에 그것도 어떤 저의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일까?

사개추위의 전신인 사법개혁위원회의 활동을 포함하면 2003년부터 몇십 차례의 회의, 공청회, 모의재판 등을 거쳐 확정한 사법개혁의 주요 골자가 바로 배심 또는 참심 형태의 시민참여 재판이다. 그리고 직업 법관이 아닌 시민이 재판을 하게 되면 현행 제도로는 도저히 재판을 진행할 수 없어 그 틀이 되는 형사소송법을 새로 만들게 된 것이다. 개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법원, 검찰, 변호사, 학계, 시민단체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했다.

그런데도 이러한 개정안과 이를 한 걸음 양보한 조정안을 ‘국민의 참여가 배제된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정말 ‘생뚱맞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실제 수사를 해야 할 평검사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면, 정작 그 화살을 검찰 내부에 돌려야 하지 않았을까? 또 검찰이 지적하듯이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수사력의 약화를 가져온다면 실제 수사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 그 가운데서도 엘리트라 할 수 있는 경찰대학 출신들이 이번에는 왜 저렇게 입을 다물고 있는지 한번 냉정히 돌아보기 바란다.

평검사들은 또 양형기준법, 유죄협상제도(플리바기닝), 참고인 구인제도가 국민 사법참여 제도 도입에 필수적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배심원들을 위해 양형의 기준 내지 지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양형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그 기준을 법률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유죄협상은 재판의 비용과 시간을 줄이기 위한 것이지 시민참여 재판의 필요조건이 아니며,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경미사건 처리절차나 간이공판 절차가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을 수행할 것이다. 또한 죄도 없는 참고인을 강제로 수사기관에 불러들이지 않더라도 필요한 경우 현행법상 증거보전이나 판사에 의한 증인신문과 같은 제도를 통해 참고인 구인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오히려 그런 논리라면 사법참여에 더 필수적인 것이 피고인 신문제도의 폐지이고 조서재판의 탈피인 것이다.

시민이 재판을 주도하고 피고인의 절차적 권리를 보호하면서 재판이 진행되어 검찰이 제구실을 다할 수 없었고, 그래서 시민들이 피고인의 손을 들어주었다면 이 결과 또한 우리 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결과보다 절차의 정당성이 더욱 강조되기 때문이다.

이제 검찰이 결단내릴 차례

이번 개정안 가운데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들이 검찰에 의해 과대포장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재판이라는 고유권한을 시민들에게 내놓은 법원처럼, 이제 검찰이 결단을 내려야 할 차례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가운데 하나가 ‘프로는 숲을 보지만 아마추어는 나무만 본다’는 것이다. 정말 현 사태를 ‘검찰권’이라는 나무로만 바라보고 ‘시민 참여를 통한 법조의 신뢰회복’이라는 큰 숲으로 보지 못한다면 진정한 프로가 될 수 없다. 그리고 프로는 집단의 위력이 아니라 개인의 전문성을 통해 그 힘이 드러나야 한다. 신양균 전북대학교 교수·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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