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3신] 4백여명 모인 추모집회…자유발언뒤 평화롭게 마무리
(최종 7일 밤 9시)
어른들의 걱정은 ‘오버’였다.
입시경쟁 교육에 희생된 학생을 위한 촛불 추모제는 어른들과 교육당국의 걱정과는 달리 평화롭고 질서정연했다. 7일 밤 8시께 행사장과 주변의 인파는 어느새 4백여명(주최쪽 추산)으로 늘었다. 마찰이라면 학생들이 근접 사진을 찍으려는 취재진에게 외친 “사진 찍지 마세요. 우리들을 보호해주세요”라는 발언 정도였다.
문화공연에 이어 자유발언대가 이어졌다. 학생들은 입시로 억눌려왔던 생각을 쏟아냈다. 이들의 구호는 “억압과 ‘학생바보시대’에 종말을 선포하자”였다.
여교사 “학생들의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끝내선 안돼”
영등포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은형 교사가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김 교사는 전교조 조합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 교사는“우리의 친구이자 동생이자 아들, 딸들이 입시경쟁, 학벌사회의 희생양이 되었다”며 “20여년 넘게 교육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전교조 교사로서 자괴감을 느낀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교사는 “학생들의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개죽음으로 끝내서는 안된다”며 “교사와 학생들이 똘똘 뭉쳐서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잘못된 내신등급제를 고치고 지옥같은 입시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또 이날 집회에 대한 어른들의 우려에 대해 “청소년은 정의와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완성된 인격체”라며 “금권만능주의, 황금만능주의, 출세에 눈이 어두운 청소년이 아니라 소외받는 장애인과 불우이웃에 손내밀 수 있는 따뜻한 사회인으로 교육하고 싶다”고 말했다. 촛불을 든 학생들은 김 교사의 말에 환호성을 질렀다. 학생들은 사회자의 선창에 “우리가 주인이다. 청소년이 사회의 주인”이라고 목놓아 외쳤다. 추모제 분위기는 한층 고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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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학생들이 일제히 촛불을 들어 올리며 내신등급제 반대를 외치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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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여학생 “우리가 그렇게 무시할 만한 존재인가”
이어 학생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가슴에 담아온 이야기를 어른들과 세상을 향해 호소했다.
가장 먼저 ‘고3’ 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학생이 마이크를 잡았다. 여학생은 “우리가 그렇게 무시할 만한 존재냐? 우리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자”며 “어른들과 다른 청소년들의 문화가 무엇인지를 오늘부터 확실하게 보여주자”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학생은 “우리는 어른들에 억눌려 사육당했다. 두발교육에 대해 학교에 의견 전달해 본 적 있느냐. ‘발 모양 양말’은 안돼, ‘귀밑 머리 3센티’ 도대체 누가 정한 교칙이냐, 학교의 주인은 누구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학생의 외침에 추모제 행사장은 떠나갈 듯 환호성이 터졌다. 학생들은 통쾌하다는 듯 “학교의 주인은 우리”라고 합창했다.
여학생은 “어른들에게 숨죽이고 속박당하는 삶은 싫다. 오늘 이 자리에서 억압과 학생을 바보로 만드는 시대에 종말을 선포하자”고 당당하게 외쳤다.
재수생 “나도 옥상에서 뛰어내리고픈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어 재수생이라고 소개한 남학생이 무대에 올랐다. 그는 “나도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가 먼저 뛰어내렸어야 하는데, 먼저 가신 분들께 진심으로 조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죽은 학생들에게 ‘너희들이 능력이 없기 때문에, 너희가 바보, 멍청이기 때문에 죽었다’고 조롱하는 세상에 나중에 뭔가 보여주기 위해 끝까지 살아남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처음으로 이렇게 집회를 열었으니, 우리는 후배들에게 모범이 될 것”이라며 “가장 멋진 모습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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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가 학생중에는 교복을 입고 온 학생도 상당수 였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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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한 학생들의 어머니 “너희들은 절대로 그런 생각 하면 안된다” 당부
이어 학교폭력과 성적비관 등으로 자살한 학생들의 어머니들이 자유발언에 나섰다. 한 어머니는 “어머니들의 마음은 식물인간이 되어도 좋으니 살아 숨쉬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며 “우리 학생들은 절대로 자살같은 나쁜 생각을 하면 안된다”고 말해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이에 학생들은 “어머니 힘내세요”라고 화답했다.
학생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행사장 주변에는 쪽지함이 돌았다.
사회자는 “이 쪽지함에 여러분들의 요구사항을 담아서 교육부장관에 보낼 것”이라며 “우리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반드시 책임있는 답변을 얻어 내겠다”고 말했다.
자유발언이 이어진 뒤 이날 촛불 추모제는 8시20분께 청소년 노래그룹인 엑기스의 ‘청소년이 주인이다”는 노래공연을 끝으로 평화롭게 막을 내렸다. 주최쪽은 “오늘 집회에 대한 사회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며 평화롭고 질서있는 해산을 당부했다.
추모제를 마친 학생들은 주변에 쓰레기를 줍고, 질서있게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 등으로 흩어졌다. 무대 정면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집회 해산 이후에도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한겨레> 박종찬 이형섭 기자
pjc@hani.co.kr
[현장2신] 서울 광화문 입시경쟁 희생자 촛불추모제 (오후 7시30분)
7시10분 현재 300여명 모여 질서있게 집회 개최
“어른들이 매일 자살했다면 이렇게 무관심했을까”
“중간고사 기간 동안 매일 학생들이 목을 매 죽어갔습니다. 과연 어른들이 이렇게 매일 자살을 한다면 사회에서 얼마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겠습니까. 하지만 학생들이 죽어가는 것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7일 오후 6시40분 시작된 ‘입시 경쟁 교육에 희생된 학생을 위한 촛불 추모제’의 개회사를 하는 ‘희망’의 이근미 사무처장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입시경쟁에 희생된 학생들의 생각이 나서일 것이다. 이 사무처장은 “이 행사를 열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여러 곳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전해들었다. 하지만 우리마저 행사를 취소하면 청소년들이 너무나 외롭게 자신의 주장을 외치게 될까봐 포기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학생들이 우리 사회 한 구성원으로서 질서있게 자기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함께 할 수 있었다”며 “여러 학생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여기서 풀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7시10분 현재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는 300여명(경찰 추산)의 고등학생과 행사 주최 자원봉사자들이 모여서 촛불 추모제를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이 계속해 도착하는 바람에 행사시작 시간은 애초 예정된 6시를 훨씬 넘긴 6시 40분에 시작됐다.
경찰 “학생들이 많이 늘어날 것 같지 않다” 안도
○…행사장에 도착한 학생들은 하나하나씩 촛불을 손에 잡고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현재도 학생들이 계속 도착하고는 있지만 경찰 관계자는 “학생들이 많이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며 생각외로 학생들이 적게 모였다고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행사장 주변에는 가끔 학생 지도를 나온 것으로 보이는 교사들과 자원봉사자들간의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교육부 공무원 40여명도 행사장 주변에 배치돼 사고가 일어나자 않을까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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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학생이 들고 있는 촛불에 의지해 선전물을 읽고 있다.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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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진 사진 취재에 “찍지 마세요” 학생들 요구
○…학생들과 희망의 자원봉사자들은 학생들의 얼굴이 촬영되는 것에 극도로 거부감을 보이며 취재진과 마찰을 빚었다. 학생들 얼굴이 보도되게 되면 학교에서 징계를 받을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은 계속해서 “찍지 마세요~”를 외치며 기자들의 카메라를 손으로 막기도 했다.
○…행사장 주변에는 학부모들의 모습도 종종 보였다. 학생과 함께 나온 학부모도 눈에 띄였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학부모라는 김아무개(45)씨는 “우리 아이가 중간고사에서 2문제를 틀리고 집에 돌아와서 펑펑 우는 것을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학교에서도 경쟁이 너무 심해 친구를 제대로 사귈 수도 없다더라”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 아이가 혹시 이 행사장에 나왔을까 해서 나왔는데 생각 외로 질서정연하게 집회가 진행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후 7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리기로 예정됐던 자유청년연대의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촛불 집회’는 참여자가 거의 없어서 제대로 시작되지 않고 있다.
<한겨레> 사회부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현장 1신] 서울 광화문 입시경쟁 희생자 촛불 추모제 (5월7일 오후 6시)
“4월 한달만 10명이 성적을 비관해 자살했어요. 이런 교육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나요.”
“우리는 등급으로 나누는 돼지고기가 아니잖아요. 친구랑 적이 되기 싫어요.”, “내신등급제 없어질 때까지 투쟁할 거예요.”
7일 오후 5시 30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 ‘21세기 청소년 공동체 희망’이 주최하는 입시경쟁 교육에 희생된 학생을 위한 촛불 추모제를 열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교보문고를 바라 보고 설치된 무대차량 주변으로 집회에 나온 고교생들과 취재진, 학생들의 집회를 지도하기 위해 나왔다는 일선 학교 생활지도과 교사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뤘다.
무대차량 바로 앞에는 지난 2월부터 성적비관 등을 이유로 자살한 14명 학생들의 넋을 기르는 공동 분향소가 차려져 있었다. 추모제에 나온 일부 고교생들은 집회가 시작되기 전 분향을 하며 먼저 간 친구들의 넋을 위로하기도 했다.
이날 촛불추모제의 자원봉사활동을 나온 대학생 김아무개(21)씨는 “4월 한달만 10여명의 학생들이 입시경쟁에 내몰려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이것이 정상적인 교육이라고 할 수있느냐”며 “자살한 학생들을 추모하고 살인적인 입시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열리는 후배들의 촛불 추모제에 자원봉사를 자청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어른들은 촛불 추모제에서 사고라도 날까 우려하는데 오늘 집회는 평화롭고 질서 정연하게 치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추모제에 참가한 ㄱ중학교 3학년 박아무개(15)양은 “우리가 돼지도 아닌데 왜 등급을 매겨 우리를 평가하느냐”며 “내신등급제를 항의하고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나왔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박양은 “등급제가 고1들의 문제가 아니다”며 “벌써 반 아이들은 ‘고등학교 가면 우리들의 우정에 금이 가는 것 아니냐’, ‘너랑 적이 되어야 하느냐’고 걱정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양은 “학교와 선생님들은 촛불시위 나가면 징계하겠다고 겁을 줬지만 우리들의 절실한 처지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징계도 무릎쓰고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 ㄴ고 1학년 이아무개(16)양은 “학원 수업으로 바빠서 집회에 참가하지 않을려고 했는데, 성적비관으로 자살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양은 “예전같으면 친구들끼리 노트도 주고 받고 했는데 이제 서로 경쟁자로 느끼고 있다”며 “등급제로 친구들 사이에 우정도 필요없게 되었고 혼자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학교가 되어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양은 “우리의 처지가 이렇게 절박한데 어떤 어른들은 시위한다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더라”며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 촛불 추모제 행사장 주변에는 서울시내 고등학교의 교장, 교감과 생활지도 교사들이 나와 학생들의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교사들은 가슴에 녹색 딱지를 붙이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집회장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다.
서울 혜성여고 김덕규 생활지도교사는 “학생들이 행사를 마치고 안전하게 귀가하기 위해 서울시 교육청 차원에서 지침을 받고 각 학교 생활지도 교사 등 학교마다 5명정도씩 집회현장에 나왔다”며 “그 이상의 의미는 없고 학생들의 행사를 방해할 생각은 더욱 없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서울시교육청이 언급한 학생들의 징계방침에 대해 “집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징계를 할 수 없지만 폭력 등 불미스런 사건에 연루되는 경우 징계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아무개(60) 교사는 “등급제나 학생들의 자살 등 학교 현장의 분위기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나 언론에서 지나치게 왜곡하고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며 “일부 학생들의 주장만 언론이 일방적으로 담아 오늘처럼 촛불시위를 부추기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 교사는 “폭력이나 불미스런 사건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며 “학생들이 평화롭게 집회를 마치고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사를 주최한 희망 관계자는 “오늘 집회 참석자들이 1000여명 정도될 것”이라며 “8시까지 평화롭게 촛불 추모제를 치룬 뒤 해산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추모제 주변에 21개 중대가 넘는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고 돌발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한편 대구 대전 제주 등 주요 지방도시에서도 같은 취지의 촛불집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교사 등의 설득으로 집회가 열리지 않았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